[2013-10-19] [칼럼]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50회>: 돌출입 수술이 갑자기 취소된 이유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50회>
 
돌출입 수술이 갑자기 취소된 이유
 
 
“오늘 수술할 환자 봅시다”
“아 원장님 오늘 수술 연기되었어요”
 
오늘 수술이 취소되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전에 언론사에 정기적으로 칼럼원고를 써서 보냈던 때에는 아무리 진료시간이 바빠도 원고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진료일정 틈틈이 글을 써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원고독촉이 없으니 사실 그 때만큼 글을 열심히 쓰지 않게 된다. 아무튼, 오늘 수술이 없으니 시간이 많은 하루가 되고 말았다. 점심을 먹다가, 오늘은 글이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수술이 취소된 것은 ‘가족의 반대’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60세가 조금 넘은 환자가 돌출입 수술을 위해서 날 찾아온 것은 열흘쯤 전이었다. 평생 입이 튀어나온 것이 한이라는 환자는 자기 나이에도 돌출입 수술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 수술이 가능했다. 안전하게 그리고 예쁘게 수술을 해드릴 자신이 있었고, 60의 나이가 되어도 예뻐지고 싶은 여성의 마음을 필자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으며, 평생 컴플렉스였던 돌출입에서 해방시켜 드리겠다는 사명감과 함께 벌써부터 내 마음은 뿌듯했다.
 
필자는 돌출입 수술에 매진해온지 10년이 넘어간다. 17세 소녀의 돌출입도 수술해봤고, 환갑의 나이인 분 돌출입도 수술해봤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치과의 분석결과에 의존해서 17세든, 60세든 분석결과 그대로 수술을 했었지만 현재는 나이와 살성을 고려해서 입을 집어넣는 양을 한번더 보정하고 조절한다는 것이다.
 
62세의 환자분도 나이만큼 피부가 늘어져있었기 때문에 입을 넣을 양을 조절해드릴 계획이었다. 이미 일주일 전에 교정치과 원장이 보고 엑스레이 분석을 한 결과 수술이 필요하고 또 가능한 것으로 확진된 상태였고, 수술계획표와 웨이퍼도 이미 제작되어 있었으며, 게다가 혹시 술후치아교정을 못하게 될 상황을 대비해서 환자가 직접 보철전문 치과에도 들러서 수술 후 보철로도 가능하다는 판단까지 마친 상태였다.
 
문제의 발단은 어제 오후에 시작되었다.
기분좋게 돌출입 수술을 하나 끝내고 나왔더니, 간호사가
“내일 수술할 환자분 따님이 전화와서 보호자 동의가 없는데 수술을 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항의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성년자나 금치산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일에 대한 법적책임은 자신이 진다.
만 20세가 넘으면 부모의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듯이, 만 20세가 넘으면 가족이나 친권자의 동의없이도 자신이 받는 수술이나 전신마취 등 모든 법적인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바쁜 와중에 환자 따님 전화번호라고 간호사가 건네준 쪽지를 보고, 내가 직접 전화를 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딸의 요지는 보호자 동의도 없이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을 하는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성형외과 의사가 돈을 벌 목적으로 60먹은 노인네에게 치아를 4개나 빼고 뼈를 자르는 큰 수술을 권했다면서 양심이 없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일면식도 없는 의사에게 자신의 판단으로 양심을 운운하는 것은 굉장히 인신공격적인 일이다. 나는 나를 찾아온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해드린 죄밖에는 없는 사람이다. 목소리로는 갓 스물 정도로 느껴지길래 연배가 어떻게 되시냐고 정중히 물었으나, 그게 중요하냐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결국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세상에는 정말 진실과 진심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돌출입 수술만 10년 넘게 해오면서 쌍둥이, 모녀, 모자, 형제, 자매를 둘다 돌출입수술한 적도 많은데, 그 가족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 이번에 도대체 이 환자가 내게 돌출입 수술을 하기로 한 것이 그 가족들 눈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그리고, 자기 엄마가 수술받는 게 위험하다고 느껴지고 못마땅하면 어머니를 설득해야지, 담당의사를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어머니가 고집을 꺽지 않으면, 같이 병원에 와서 의사 이야기도 들어보고 어떤 수술인지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이런 딸의 행동에 대해 정작 환자본인은 필자에게 미안해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은 딸들이 반대해도 꼭 수술하겠노라는게 어제의 전화 내용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다시한번 죄송하다면서 수술을 연기하겠다고 했다. 아마 딸 성화에 못이겼을 것이다.
 
환자는 62세 어느 겨울날 드디어 돌출입이 예뻐질뻔 한 기회를 잃었고, 딸은 엄마가 평생의 한을 풀 기회를 박탈했으며, 수술장은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로 올스톱이 되었고, 필자는 수술했어야 할 시간에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필자의 자부심 중 하나는, 환자를 돈버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술을 가능한 한 많이많이 해야만 경영이 되는 경제구조의 대형병원이 아닌 것도 한 이유다. 필자는 나의 진료철학과 양심을 걸고 이제까지 한번도 ‘과잉’ 진료를 통해 불필요한 수술을 한 적이 없다고 맹세할 수 있다. 그런 필자가 느닷없이 ‘양심없는 의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가슴에 상처가 된다.
 
그 62세의 환자가 결국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받건 안받건 그 분의 인생이고 운명이겠지. 필자는 그 환자분에게는 어떠한 서운한 감정도 없다. 합리적이신 분이다. 언제 날 다시 찾아와도 난 수술을 잘 해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젠가 병원을 다시 찾을 때에는 그 따님분도 같이 와주길 희망한다. 환자분의 딸은 수술 전에는 반신반의 할 것이고, 수술 후에는 내게 미안해하겠지.
수술은 분명 잘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