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0]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49회>: 돌출입 수술을 한 세 커플 이야기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 돌출입 수술을 한 세 커플 이야기

 

모르긴 몰라도, 내가 돌출입 수술을 해서 남녀관계의 역학이 바뀐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혼사건은 절대로 맡지 않는다고 선언했던 변호사 친구 한명은, 이혼하러 온 여자 의뢰인을 상담해주려고 자리에 앉으면, 첫마디가 ‘대학교 때였습니다’ 로 시작한다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대학교 시절 이야기부터 언제 그 사연을 다 들어주냐는 것이다.

그만큼 남녀관계는 제각기 사연도 많고 복잡하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소위 말하는 ‘팔자 고치는’ 인생이 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오늘은 여자가 내게 돌출입 수술을 받았던 세 커플의 이야기를 엮어보려 한다.

첫 번째 커플 이야기는 사실 비교적 흔했던 케이스다.

결혼 사진을 찍을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혼을 앞 둔 커플이 날 찾아와 진료를 받고는 꼭 물어보는 것이, 사실은 결혼 사진을 9월 쯤 찍는데 그 때 예쁘게 나올 수 있겠냐는 식의 질문이다.

 사실 결혼과 같은 인생의 큰 일을 앞두고는 몸조심을 하라고 하는데, 돌출입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올라선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는 대단한 용기일 것이다. 물론 필자의 입장에서야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라는 것이 별반 다르지는 않다. 정말이지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이 환자는 예비신부니까 더 예쁘게 해줘야지‘라는 식의 압박감은 추호도 들지 않았던 듯 하다. 그만큼 돌출입 수술은 내게 친숙한 수술이고, 뭔가 더 잘해주어야지 하는 ’사심‘이 없이 평상심으로 하는 수술이 더 훌륭한 수술이 된다.

 돌출입 수술이 끝나고 6주가 되던 날, 예비신랑과 병원을 찾은 그녀는 이미 아름다운 신부였다. 예비신랑 입장에서는, 신부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필자는 청첩장이 있으면 하나 주십사 했다. 11월 11일에 동그라미가 쳐 있는 달력이 큼지막하게 그려있는 독특한 청첩장이었다. 필자는 진심을 담아 약소하지만 축의금을 건넸다.

 내 손으로 더 아름다운 신부를 만들어준 결혼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도 자기 작품이 콜렉터에게 팔려갈 때 비슷한 느낌을 느낀다고 한다. 제 자식 시집 보내는 부모 마음까지는 아니겠지만, 뭔가 벅차고 뿌듯한 느낌, 좋은 일 한 느낌이 든다. 평생 사랑받고 사는 신부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두 번째 커플 이야기는 안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필자가 예비신부에게 돌출입 수술을 해준 그 커플은 결국 이혼했다. 돌출입 수술이, 아니 돌출입 수술로 예뻐진 얼굴이 모든 인생을 질곡없이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 두 사람에게는 이혼을 한 것이 둘 다를 위해 더 행복하고 발전적인 일이었다고 여겨진다.

 이래저래, 수술을 한 신부와 당시 신랑의 소식을 필자는 접하고 있는데, 여자는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예쁜 아기를 낳았고, 남자는 좋은 학교에 편입해서 남들 부러워하는 훌륭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예쁜 얼굴이 되어 한껏 높아진 여자의 자존감이 둘 사이의 상황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다 잘 된 일이라고 믿고싶다.

 가끔 남편이 집을 나갔는데, 돌출입 수술을 해서 남편의 마음을 돌려야겠다는 식의 2차적인 목표를 가지고 수술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돌출입 수술은 돌출입 수술일 뿐이다. 돌출입 수술을 통해서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 인생에 플러스 요인인 것은 맞지만, 요술지팡이처럼 다른  상황을 조정하거나 지배할 수는 없다.

세 번째 커플이야기다. 나이차이가 두세살 정도였던 그 평범한 커플은 여자환자의 돌출입 상담을 하러 와서, 앉아서부터 병원 문을 나설때 까지 한번도 손을 놓지 않았다. 피검사를 할때에도 남자가 옆에서 손을 잡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는 심한 돌출입이었다. 웃을 때 잇몸이 보이는 정도가, 잇몸 많이 보이는 것으로 시청자들을 경악케하는 모 남자개그맨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 남자는 여자의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여자는 예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는 거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여자들도 잘생긴 남자에 열광한다. 예쁘고 멋진 이성에게 이끌리는 것은  생물학적인 팩트이다.

아마 그 남자의 눈에는 여자친구의 튀어나온 돌출입이나, 웃을 때의 잇몸같은 것은 아예 보이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콩깍지가 씌웠다는 것이 그런 것이겠지. 그런데 필자 입장에서는 이 여자 환자를 돌출입 수술하는 것이 이 남자에게도 의미있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 여자의 지금의 모습이 바뀌어버리면 남자의 콩깍지가 떨어져나가 버리면 어쩌나?

다행히 그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다. 사실, 자기 여자친구가 예쁜 걸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 돌출입 수술 후에도 여전히 둘은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훈훈한 커플이다. 둘이서 영원히 예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던가? 예뻐진 여자의 사랑이 영원히 움직이지 않기를 바란다. 수술 전부터 사랑을 주었던 멋진 남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