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3]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48회>: 올림픽과 미인대회, 그리고 돌출입 수술

올림픽과 미인대회, 그리고 돌출입 수술

10여년 전 쯤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을 감탄하게 만들만큼 수술솜씨가 좋으셨던 한 선배님은,

-수술 경연대회가 있다면 내가 나갈텐데...

라고 말하시곤 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그 선배님의 나이가 되었고, 그 선배님에게 기본을 배운 돌출입 수술을 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은 수술 방법도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내겐 참 고마운 분이다.

마침 요즘 런던올림픽을 하고 있다. 이 무더위에 시원한 수박을 베어 먹으며 한국선수들의 선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 유독 한국선수들이 당한 애매하고 불합리한 판정 때문에 속상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모든 대회가 그렇지만 순위는 정해져야 하고, 그 순위를 정하는데 심사위원이나 심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채점이나 판정의 공정성과 기준이 문제가 된다.

얼마 전에 모 미인 대회에서 입상한 여성의 성형 의혹이 불거지면서, 과연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이 입상을 하는 미스코리아 대회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런 식의 상이라면, 수술을 한 성형외과가 상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이어졌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올림픽처럼 세계 성형외과 의사들의 축제이자 경연장인 성형올림픽이 열린다고 가정해보자.

각국의 성형외과 의사와 숙련된 간호사들로 구성된 선수단이 자국의 국기를 들고 대학병원의 대학 캠퍼스에서 성대한 개막식을 연다. 한국은 성형 강국인만큼 선수단의 규모도 가장 크다. 개막식이 끝난 후, 수상 욕심이 있는 의사들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환영 파티에 나온 최고급 술도 마다하고 숙소로 향하고, 간호사들은 실전에서 쓸 수술기구의 체크리스트를 강박적으로 챙기고 미리 소독을 해둔다.

다음날, 쌍꺼풀, 코, 가슴, 얼굴뼈 수술 등 종목에 따라 각국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시합장으로 쓰이는 임시진료실에 각각 배정된다. 진료실로 들어가서 처음 대면하는 수술대상 환자를 제한시간동안 진찰하고, 잠시 후 수술실로 들어가서 성형수술에 들어간다.

이윽고 대회가 종료되고, 수술 결과를 포함한 심사항목을, 권위있는 국제 성형외과 학회 임원과 대학병원 교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채점해서 최고의 3인에게 금, 은, 동메달을 수여한다.

이런 대회가 있다면 정말 나가보고 싶다. 펜싱 종목에 에페나 사브르가 있듯이, 얼굴뼈 종목 중에서도 돌출입 수술 경기에 나가보고 싶다.

하지만, 사실상 이런 성형올림픽은 개최가 불가능하다.

우선 윤리적으로 문제다. 아무리 환자가 자의로 이러한 행사의 수술에 자원했다고 해도(아마도 수술비가 무료일 것이다), 일반적인 진료환경이 아니라 의사가 대회에서의 입상을 위해 압박감과 시간제한에 쫓기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어떤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기능올림픽이나 수학 경시대회라면야, '아 이번에 기계 조립을 실패했어' 라든지, '두 문제는 잘못 풀었어' 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성형올림픽을 끝낸 의사가 '아, 이번 수술은 엉망이 되고 말았어' 라고 말한다면 비윤리적이고 치명적이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진료행위를 경연대회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진료행위의 신성함과 의사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아...그렇다면 내가 품위 없는 상상을 한 것이 되겠지만...)

심사도 문제다.

심사항목부터가 애매하다. 수술 결과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정확한 진단능력, 수술의 테크닉과 정확도, 수술 소요시간, 안전성, 수술 팀웍, 환자의 만족도 등도 평가한다고 치자.

우선, 수술 결과를 도대체 수술 후 몇 개월이나 있다가 평가해야할 지가 애매하다. 성형수술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또한 수술 결과를 놓고 봤을때, 그 사람이 정말 예쁜 것에 점수를 더 줄 것인지, 그보다 덜 예쁘더라도 수술전에 비해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것에 점수를 더 줄 것인지도 모호하다. 더구나, 환자나 의사나 심사위원 모두 인종도 달라서, 심사위원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도 각기 다를 수 있다.

내가 수술할 환자가 입만 빼면 다른 곳은 완벽에 가까운 미인형이라면 돌출입 수술 후에 더욱 엄청난 결과가 나오고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 경우라면 입이 들어간 후에 그냥 평범하거나 수수한 외모가 되어 심사에 불리할 수도 있다.

수술의 테크닉이나 정확도등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나보다 돌출입 수술을 훨씬 안해본 심사위원이 내 수술을 평가하기 위해 평가지를 들고 옆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편파판정도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 아이비 리그 의대 출신인 심사위원 닥터 로저가 모교출신 의사에게 후한 점수를 줄 지도 모른다. 어떤 한국의사는 브라질 모 대학병원에 연수를 갔을 때 자주 집에 초대를 해서 같이 한국음식을 먹던 인연으로 브라질 심사위원 닥터 로드리게스에게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심사위원의 사위나 친척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경우도 생길 것이고, 수상을 위해 막후에서 로비가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내가 나이가 들어 손이 떨리기 전에만 열린다면 난 대회에 나갈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성형올림픽은 열릴 가능성이 전무하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만약 인간의 뼈와 살과 신경과 혈관을 그대로 재현한 인형을 만들어 대회를 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인형이 있으면 먼저 의학 교육에 활용하는 편이 낫겠지만...)

성형올림픽에의 출전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지만, 사실 나의 병원 수술장에서는 따로 초빙한 심사위원 하나 없는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양악 수술이 성대할 것 하나 없이 일상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의 환자들이 곧 심사위원에 다름 아니고, 그들이 내게 주는 환한 웃음이 금메달보다 더 소중한 것 아닐까?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