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1] [뉴스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47회>: 남자 가슴을 가진 돌출입 여자 환자

남자 가슴을 가진 돌출입 여자 환자

삼십대 초반의 의사였을 때, 필자는 평생 가슴수술만 하는 성형외과 의사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유행하던 식염수 보형물은, 겨드랑이를 단 2~3 센티미터 정도만 절개해도 식염수 백을 돌돌 말아 쏙 집어넣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양쪽 가슴을 보면서 식염수를 주사기로 주입하면, 차츰차츰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수술 중 가슴이 예뻐지는 과정을 목도하는 셈이다. 의사도 간호사도 감탄사가 나올만한 가슴이 되면 수술이 완성된다.

베이글녀가 대세인 요즘, 동안 얼굴과 함께 자신감 충만한 가슴은 글래머의 필수조건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가슴확대 수술은 특히 가슴이 빈약해서 고민인 여성들에게는 아주 보람찬 수술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물론 가능한 부작용들도 있으니 신중한 선택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가슴수술만 하고 싶었던 필자의 희망은 빗나갔다. 대신 필자의 천직이라고 깨닫게된 돌출입, 양악수술, 광대뼈, 사각턱 수술만 하며 살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를 찾아온 환자들이 미리 차트에 체크한 수술종목은 거의 예외없이 돌출입, 양악(주걱턱), 사각턱, 광대뼈 중 한두가지다.

그런데, 얼마전 필자를 찾아온 B양의 차트에는 돌출입과 가슴에 각각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돌출입은 확연히 수술의 대상이었다. 안면계측 엑스레이를 찍어 분석을 해보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돌출입 수술과 턱끝수술이 필요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가슴을 진찰했다. 사실 가슴을 진찰하는 것은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선량한) 의사라면 여성환자의 ‘부끄러운’ 부위를 진찰하는 게 아무렇지 않다. 실제로 의사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 오히려 무딘 편이다. 개그맨 최효종씨는 ‘남자는 다 검은 동물입니다’라고 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의사가 수술이나 처치를 할 부위를 진찰하는 것은 산부인과나 성형외과나 모두 업무의 연장선상이다.

여하튼 B양의 가슴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가슴이 빈약한 여성이라도 약간의 볼륨은 있게 마련인데, 그녀의 가슴은 아예 없다고 해야 옳았다. 게다가 마른 몸매로 갈비뼈가 드러나서 측은해보이기까지 했다. 가슴만 놓고 보면, 남자의 흉곽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B양은 필자에게 돌출입수술과 함게, 가슴확대 수술을 받기를 원했다. 그녀는 필자에게 정말 가슴수술까지 맡기고 싶었을까?

네트워크의 발달로 요즘 환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알아볼만큼 알아보고 병원을 찾는다. 물론 검색창에 어떤 수술명을 치면 전문병원이라고 하는 곳이 너무 많긴 하다. 어쨌든 요즘은 무작정 지나가다가 이 병원은 어떨까 하고 들르는 환자는 거의 없다. 그만큼 요즘 의료소비자들은 나름대로의 검증을 통해 병원을 선택한다.

한편, 필자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수술을 다 하는 만능 성형외과 전문의를 자처했다. 즉, 당시에도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눈, 코, 가슴, 지방흡입 등 다른 수술도 모두 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솔직히 이제는 하나 둘씩 더 이상 하지 않는 수술이 생겨 버렸다. 눈, 코, 가슴 수술은 여전히 하고 있지만. 예를들어 지방흡입은 더 이상 필자가 하고 싶지 않고, 하지 않고 있다.

B양도 가슴확대 수술을 거의 가슴만 수술하는 다른 의사에게 맡기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필자는 가슴수술만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B양이 내게 가슴수술까지 맡긴 것은 어찌보면 무한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었다.

수술 날이었다. 돌출입 수술이 잘 끝나고 연이어서 가슴수술에 들어갔다. 코히시브겔 백을 한쪽에 먼저 삽입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백을 넣고 보니 모양이 필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B양의 유방실질 조직은 생각보다 더 적었고, 가슴근육도 거의 두께가 없이 너무나 얇았다. 그런 이유로 일반형의 납작한 백을 근육 하에 넣으니, 없던 가슴이 조금 생기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볼륨과 모양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필자가 한 선택은 그 백을 다시 꺼내버리고 더 구(球) 형태에 가까운 특수형 백을 쓰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꺼낸 백은 그냥 버려야 한다. 사실, 이렇게 포기한 백에 대한 부담은 필자가 하게 된다. 즉, 일반적으로 가슴확대 수술 환자에게 두 개만 쓰면 되는 백을 B양에게는 세 개를 쓴 셈이 된다. 필자를 믿고 맡겨준 환자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돌출입과 가슴수술을 동시에 한 후 6주가 되어 B양이 병원에 왔다. 성형외과 전문의로 개원한 이후에 케익, 커피, 차, 쵸콜렛, 술, 홍삼 등 별별 선물을 다 받아봤지만, 환자로부터 유가증권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선물받은 것은 처음이다. 가슴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백 세 개를 썼노라고 생색을 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와야 할 가슴은 나오지 않고, 나오지 말았어야 할 입이 돌출되었던 B양은 필자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수술이 그녀에게 좋은 선물이었고 삶의 큰 변화였다고 한다. 변화된 그녀의 삶, 제 2막 1장을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