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1] [뉴스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44회>: 예선 탈락

기사입력 2012-01-10 16:18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44회>
 
예선 탈락
 
 
예선탈락이라는 말처럼 허무한 단어를 찾기도 힘들다. 본선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는 것은, 그게 어떤 게임이든 허탈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예선탈락이란 말은 수모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가 월드컵 예선탈락 위기라는 벼랑 끝에 서있다고 말한 바 있다.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2002년처럼 4강에 들어갈 날이 언제 다시 올는지 모르지만, 예선탈락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얼마전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아온 A양은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여대생이었다. 어머니와 딸이 같이 상담을 오게 되면 그 집안의 가풍이나 가족간의 친밀도가 직접 느껴진다. 화목함이 향기처럼 전해지는 가족들도 있고, 반대로 불편해보이는 가족들도 있다. 돌출입, 양악수술에 반대를 하는 부모가 같이 온 경우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A양과 어머니는 참 좋아 보였다. 서로간에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났다. A양은 어머니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쓰면서도 항상 밝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A양의 존대말은 강압적인 교육의 결과라기 보다는 진심에서 묻어나는 애정과 존경의 표시로 느껴졌다.
 
알고보니 A양의 어머니는 필자의 대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이면 안된다지만 그건 공적인 상황에서 이야기이고, 사적으로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했었다는 사실에 친근감이 드는 건 인지상정인 듯하다. 한국인의 병폐라고들 하지만 사실 외국 생활을 오래한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어디에나 학연, 지연이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어디가나 사람이 별로 다르지 않나보다.
 
어머니는 자신도 돌출입인데, 딸만은 꼭 수술을 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장차 A양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칼럼에도 썼듯이 맞선을 100회 넘게 본 필자도 제법 해줄 이야기들이 있었다. A양은 아직 여대생이니 결혼을 서두를 것은 없지만, 연애는 해보고 싶은 나이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불쑥 나온 이야기가 필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어떤 과 오빠가 저한테 이러더라구요. 넌 예선 탈락이야.”
 
A양은 이 말을 하면서도 역시 밝게 웃었다.
 
그래서 필자의 마음이 더 아팠는지도 모른다. 진정 남자들은 아름다운 영혼보다 그 위에 덧 씌운 아름다운 육체와 외모에 더 열광하는 것인가?
 
어떤 어머니든 자신이 배 아파 낳은 딸은 금쪽 같겠지만, A양의 착하고 바른 천성은 그녀의 어머니가 ‘보증’했을 뿐만 아니라, 잠시 상담했을 뿐인 필자에게도 전해져왔다. A양이 들은 ‘예선 탈락’이란 모진 말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너는 참 좋은 사람이어서 본선에만 진출하면 누구나 인정해줄텐데, 그냥 첫 눈에 남자들이 예선탈락 시켜서 참 안타깝다’ 는 뜻일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대놓고 숙녀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이제 필자가 A양에게 해 줄 일이 생겼다. 아직은 돌출입수술만 할지, 다른 윤곽수술까지 동시에 할지, 이번 방학에 다 할 것인지 결정된 바는 없다.
 
밝고 착한 A양이 돌출입, 윤곽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을 한 뒤에, 공부에 바쁜 와중에 많은 훈남들의 대시를 받고, 그 중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서, 현명한 아내로, 유능한 의사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필자가 쓰고 싶은 시나리오다.
 
돌출입이나 양악수술 대상인 환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는 상상 이상이다. 대인관계에서의 자신감 결여, 닮았다고 하면 듣기싫은 연예인이나 듣기 싫은 별명, 가만히 있어도 화났냐고 묻는다든지 성격이 나쁜 것으로 오인 받는 일, 자신있게 활짝 웃을 수 없는 고민, 헤어스타일의 제약, 사진찍기 싫은 스트레스 등은 필자가 누구보다도 많이 접해보고 이해하고 있다.
 
예선탈락이란 말은 A양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그녀에게 본선진출, 아니 결선진출을 하는 삶을 선물해주고 싶다.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