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1] [뉴스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40회>: 징크스 이야기

징크스 이야기

징크스(jinx)란 재수 없고 불길한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적 믿음을 가리킨다고 한다.

자신에게 징크스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시합 전날 면도를 하면 경기에서 진다고 하는 운동선수도 있고 시험보는 날 아침 머리를 감으면 시험을 망친다고 믿는 수험생도 있다. 돌출입, 양악수술 날짜에 병원에 오는 환자들 중에도 나름대로 수술의 성공을 위해 뭔가 자신만의 징크스를 피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흉악했던 징크스는, 대입시험 날 아침에 일어났다. 이과생인데도 늘 수학보다 영어를 더 잘했던 필자가 고 2 때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수학공부에 열을 올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애착이 가는 필기도구를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시간에 쫓기며 수학시험을 보던 경험을 살려, ‘흔들어 샤프’ 하나를 샀다. 말그대로 흔들면 되는 샤프였다.

그런데 이 샤프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문제를 푸느라 손에 땀이 차면 금속성의 손잡이가 손에서 미끄러지는 단점이 있었다. 뭘 만들기를 좋아했던 필자는 다른 샤프를 하나 사서, 꺼끌꺼끌한 손잡이 부분을 분해한 다음 그것을 나의 흔들어샤프에 끼웠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필자의 보물인 ‘땀나도 안미끄러지는 흔들어 샤프’ 가 탄생하였다.

필자는 이 샤프로만 수학공부를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 녀석을 손에 잡으면 ‘마법의 성’ 노래 가사처럼 용기와 지혜가 샘솟는 것 같았다. S대 의대에 입학하는 꿈이 머지 않아보였다. 이 샤프펜슬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희열, 졸음과 싸우면서 밤을 샜던 순간, 반복해서는 안될 실수들을 조목조목 기억해주는 나의 동반자이자 비밀병기와도 같았다.

이 보물같은 샤프가 대학입학시험 당일 아침 6시에 두동강이 났다. 당일 아침에 한 문제라도 더 보겠다고 그 샤프를 손에 쥔 채 우왕좌왕 하다가 난간에 샤프가 부딪히면서 반으로 뚝 부러지고 만 것이다.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2년 동안 잠자는 시간 빼고는 늘 나와 함께한 보물이 ‘마지막 콘서트’를 앞두고 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징크스란 없다고 외치고 싶었다. 아무일도 아닐거라고 되뇌었다.

그러나 난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 샤프를 대체할 어떠한 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시험장에 도달했다. 그걸 안 건 수학시험이 시작된 다음이었다. 문제를 풀 빈 종이를 따로 꺼내서는 안된다는 감독관의 엄포에, 나는 굵은 수성싸인펜으로 시험지의 빈 공간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문제를 풀었다. 나중에는 어떤 문제를 어디다 풀었던 것인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한두개를 틀려도 아쉬웠을 수학시험 중 5개를 틀렸다는 걸 알고 난 실패를 직감했다.

징크스는 빗나가지 않았다. 나는 S대 의대에 낙방했고 대신 치대에 합격했지만 오기로 재수를 선택했다. 나만의 흔들어샤프가 두동강 났던 기억, 시간에 쫓기며 시꺼먼 수성싸인펜으로 문제를 풀다가 빈공간 없어 쩔쩔 맸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징크스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흔들어샤프가 두동강난 사건이 분명 심리적으로 필자를 압박하고 평정심을 깨뜨린 것은 사실이다.

병원에서 하는 수술에도 징크스가 있을까?

필자는 이제는 수술할 때의 징크스를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오랜동안 돌출입, 양악수술을 해왔다. 머리를 감았든, 면도를 했든, 전날 밤 술을 한 잔 했든, 그 날 아침을 굶었든 필자의 수술에 지장을 줄만한 징크스는 없다. 또한 환자가 필자의 조카든, 부모든, 잘나가는 연예인이든 환자 몸에 메스를 대는게 일상인 필자로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의사들 사이에 속어로 ‘VIP 신드롬’이라는 믿기 어려운 용어가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VIP 신드롬이란, 내내 괜찮다가 VIP를 수술하면 뭔가 문제가 생기더라는 흉흉한 징크스같은 것이다. 그 신드롬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문제가 유독 VIP에게 생기면 더 미안하고 더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기억이 남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만약 정말 VIP에게 유독 문제가 잘 생기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의사의 평정심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정말 특별히, 남달리 잘해줘야 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안하던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더 잘해주기 위해서다.

이 논리대로라면, 돌출입, 양악수술을 준비하는 당신은 VIP가 되어서는 안된다. 과하게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의사의 평정심을 깨뜨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의사의 ‘내공’이 높다면 문제될 것이 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필자에게는 필자를 찾아 수술받으러 온 환자들이 모두 다 VIP다. 아니, 모두 그냥 평범한 환자들이다. 다 똑같은 평정심으로 수술해야, 하던 대로 할 수 있고 그게 최선이다.

강철로 만든 톱이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수술날, 수술용 톱이 두동강이 난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의료기 업체에 전화만 하면 똑같이 생긴 톱을 금방 가져다주니까 말이다.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