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1] [뉴스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37회>: 커피 향과 앙드레가뇽

커피 향과 앙드레가뇽

현재는 개념 연예인으로 분류되는 한 미남 배우는 한 때 자신의 개인홈피에 앙드레가뇽의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햇살아래 누워있다든가 혹은 따뜻한 커피를 네 번이나 리필하며 자신 만의 여유를 한없이 즐긴다는 사진과 글을 올리면서, 허세 J씨로 등극한 적이 있다. 수많은 안티팬을 양산했지만 얼마전 모 토크쇼에서 그 때는 자신이 왜 그렇게 허세를 부렸는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인정을 하면서 다시 호감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필자도 앙드레가뇽의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허세가 아니다. 믿어주길 바란다.

앙드레가뇽을 알게된 것은, 그의 첫 앨범 <모노로그> 음반이 발표될 때부터였다. 십년도 지난 일이다. 필자가 현 제주대학교 부속병원의 전신인 제주의료원의 성형외과 과장으로 파견근무를 하고 있을 때, 모 여대 4학년 학생들이 제주에 졸업여행을 온 일이 있었다. 마침 잘 아는 후배의사의 여자친구가 그 수학여행 팀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 후배의 주도로 몇몇이서 우연치 않은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되었다.

앙드레 가뇽을 내게 알려준 것은 그 여대생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아침에 등교하면서 학교의 돌계단을 오르는 길에, 교내 방송 스피커에서 그 음악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도입부의 현악이 피아노 선율로 바뀌는 부분에서 자신도 모르게 계단 중간에 멈추어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그 당시의 말로 표현 못 할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눈물이 촉촉이 고였었다.

필자는 그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앨범의 두 번째 곡 <저녁바람;L`air Du Soir>이었다. 주말이면 양옆으로 침엽수림이 울창하던 제주의 어느 외딴 도로를 그 음악을 들으며 외로이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허세 같지만 내겐 사치스런 향유가 아니라 살아있음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암시였다. 작년 즈음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찾았던 그 숲길은 사려니 숲길이라는 안내표지가 걸린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한편, 필자는 커피 맛을 모른다. 혹자는 진짜 맛있는 커피를 못마셔봐서 그렇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커피 맛으로는 제일 알아준다는 곳에 가봐도 역시 나는 커피 맛을 모른다. 커피가 맛있다고 느낄때는 생크림이 가득한 케익과 커피를 마실 때, 혹은 달콤하고 느끼한 과자와 함께 커피를 마실 때 뿐이다. 결국 입안에서 700원 짜리 커피우유 맛이 된다.

얼마전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데, 뭇 남성을 설레게 할 만한 몸매와 스타일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필자가 찾아서 본 것이 아니다).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남자의 눈길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녀가 날 힐끔 쳐다본다. 돌출입이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 여자는 자신이 돌출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을까? 모르고 있다면 평생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살게될까? 내가 돌출입 수술에 대해 알려주면, 저 여자의 인생이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이미 돌출입 수술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무서워서 수술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돌출입이고, 나는 돌출입을 수술하는 의사라고 말하면 그녀는 화를 낼 테고 난 ‘호객행위’를 하는 셈인 것인가?

이 생각 저 생각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고,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졌다. 그 때 파란불이 켜지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모르는 사람에게 무례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나의 길을, 그녀는 그녀의 길을 갔다. 다시는 마주치기 어려운 운명일 것이다. 그녀는 평생 돌출입 수술에 대해서 모르고 살거나, 알더라도 결코 수술을 받지 않고 살지도 모른다.

필자로 하여금 커피맛을 알게 하는 방법은 이제 없어보인다. 난 그렇게 태어난 듯하다. 어느 뮤지컬 속 구세군 할아버지가 매섭게 추운 성탄전야에, 커피를 마시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아 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닌지 몰라, 이렇게 달콤한데 말이야’

하지만 필자에겐 커피 향이 달콤하지 않다. 앙드레 가뇽의 음악에는 어쩐지 진한 커피 한 잔이 어울릴 것 같은데, 필자는 앙드레가뇽의 음악을 들으며 요거트스무디를 마시는 것이 더 좋다.

커피맛을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커피를 맛보게 해도 커피를 좋아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돌출입인 것에 불만이 없거나 돌출입 수술을 받을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수술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할 재간은 없다. 사실, 돌출입이나 주걱턱을 가진 전체 인구 중에 실제로 돌출입, 양악수술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셈이다.

커피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커피맛을 모르는 필자같은 사람이 답답하듯이, 돌출입, 양악 수술을 하는 필자에게는 돌출입이나 주걱턱이면서 그냥 지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그러나, 커피 맛을 몰라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듯이, 사실 돌출입이나 주걱턱인 채로 살아도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다.

오늘은 양악수술이 있는 날이다. 앙드레가뇽의 <저녁바람>을 들으며 수술을 시작해야겠다.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