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1] [뉴스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34회>: 세종대왕님 죄송합니다 [1편]

세종대왕님 죄송합니다 [1편]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닐때 국어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짓다, 건(建), build, 이 세가지는 모두 같은 개념인데, 각각에서 나온 명사인 집, 건물, 빌딩을 놓고 보면 순우리말인 ‘집’은 한두층짜리, 한자로 된 ‘건물’은 오육층짜리, 그리고 영어인 ‘빌딩’은 팔구층 넘는 것쯤을 가리킨다고 지적하시면서 이것은 일종의 문화 사대주의라고 경고하셨다.

요즘 때마침 <뿌리깊은 나무>라는 사극이 인기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둘러싼 암투를 그린 동명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한글은 참으로 과학적인 언어임에 틀림없다. 컴퓨터 자판에서도 왼손 오른손이 자음과 모음을 각각 담당하게 되어 어떤 언어보다도 편리하다. 글자가 없는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문용어로서의 한글은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멋진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께 늘 죄송하다.

성형외과에서 쓰는 용어를 몇가지 살펴보자.

성형외과에서 다루는 선천성기형의 하나인 구순열은 선천적으로 입술이 갈라져서 태어나는 질환이다. 구순열의 순 우리말은 언청이다. 그런데 언청이의 사전적 의미는 입술갈림증이 있어서 윗입술이 세로로 찢어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순우리말인 언청이의 위상이 안타깝다.

주걱턱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의학용어로는 하악전돌증인 주걱턱의 사전적의미는 주걱모양의 턱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역시 순 한글 우리말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일례다.

돌출입 수술보다 전방분절절골술이 더 그럴듯해보이고, ASO(anterior segmental osteotomy;전방분절절골술)라고 하면 더 유식하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양악수술이라는 용어도, 사실은 양쪽 턱을 모두 수술한다는 간단한 뜻인데 한자의 뜻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뭔가 아주 어려운 전문용어처럼 보여서 일반인들에게 더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양악수술의 효과가 과장되는데에도 일부 기여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돌출입수술, 양악수술을 위해 필자를 찾는 환자들에게 수술방법을 이야기할 때에도 이와같은 문제에 부딪힌다.

-돌출입수술은 앞으로 튀어나온 잇몸뼈를 톱으로 잘라서 뒤로 옮기고 철심과 나사를 박아 단단히 묶어놓는 수술입니다.

라고 하면 환자들이 잘 알아듣긴 하겠으나 못배운 의사같고,

-전방분절절골술은 전방으로 돌출된 치조골을 절골용기구로 절골하여 후방으로 이동한 후 금속판과 스크류 장치를 적용하여 강성고정하는 수술입니다.

라고 하면 환자들이 알아듣기 어렵지만 유식하고 권위있는 의사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필자의 경우, 돌출입수술, 양악수술 환자들을 계속 진료해 오면서 이제는 환자가 잘 알아들으면서 너무 무식해(?)보이지도 않는 적절한 용어들을 잘 섞어서 사용하고는 있지만, 늘 마음 속에는 왜 순우리말로 하면 덜 전문가적으로 보이는 것일까하는 뿌리깊은 의문이 남는다.

세종대왕은 드라마 속이긴 하지만 궁궐의 대신들 앞에서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욕설을 한다. 물론 순한글이면 비속어나 욕설도 듣기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문용어에 순한글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다분히 안타까운 일이다.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