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1] [뉴스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31회>: 옵세, 짱돌 그리고 대박

어느 사회에나 집단에서 통용되는 속어들이 있다. 의대를 다닐때, 그리고 의사가 되어 대학병원에 전공의로 근무할 때 자주 쓰던 속어 중에 특히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옵세, 짱돌, 그리고 대박이 그것이다. 물론 병원마다 학교마다 속어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옵세란 영어 옵세시브(obsessive;강박적인)의 앞 두글자를 딴 것이다. 강박장애, 즉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라는 정신질환에도 이 옵세시브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반복해서 손씻기, 보도블럭 금 안밟기 등의 강박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질환이다.

의대에서 통용되던 옵세란 말은 주로 심히 강박적으로 공부나 과제, 암기, 실험 등에 사로잡혀 몰두하는 성향의 사람을 가리킨다. 사실 의대에 들어온 친구들은 대개 고등학교 때는 다 옵세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옵세들 중에 다시 또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옵세가 생긴다.

누구나 인정하는 옵세 옆에 가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고의 옵세가 ‘과톱’을 하지는 못한다. 정작 S대 의대를 1등 졸업한 친구들은 강박적으로 공부할 내용을 머리에 우겨넣는다기 보다는, 공부할 내용을 뇌 속에 체계적으로 보관한다는 느낌이 든다. 애초에 뇌 구조가 다른 모양이다.

돌출입, 양악 수술을 주로 하면서 요즘 내가 약간 이 수술의 옵세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돌출입 수술시간이 1시간 벽을 깬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수술시간이 조금 늘었다. 조금이라도 더 환자의 요구에 가깝게 만들거나 더 아름다운 입을 만들기 위해서다.

일종의 강박적 완벽주의에 빠진 셈인데, 사실 필자도 살짝 괴롭다. 이를테면 환자에게는 완벽한 대칭은 맞추어줄 수 없다고 이미 말해놓은 상태로 수술에 들어가 놓고도, 정작 수술할 때는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대칭에 가깝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환자가 기뻐하는 것이 필자의 보람이기 때문에 이런 괴로움은 감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짱돌은 대충 예상하셨겠지만 일을 어떤 근거나 정당성 없이 엉터리로 또는 억지로 처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짱돌 인턴으로 낙인찍히면 삽시간에 병원 내에 소문이 돌고, 나중에는 나쁜 평판 때문에 그 병원에서 원하는 과를 택하기는 거의 어려워진다.

사실 짱돌이란 말은 이상한 환자나 보호자에게도 쓰인다. 환자나 보호자는 기본적으로 아픈사람이고 약자가 맞지만, 이를테면 응급실에 와서 배가 너무 아프니 마약성 진통제를 놔달라는 환자라든지, 만취상태로 응급실에 와서 당장 링거를 놓으라며 소란을 피우는 환자 등은 짱돌 환자가 된다. 옆에서 심장발작 환자가 죽어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와중에 감기 걸린 자기 아이는 언제 봐줄거냐면서 소리를 지르는 보호자도 짱돌 보호자로 분류되곤 했었다.

필자는 이제까지 수많은 돌출입, 양악수술 환자와 만나왔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돌출입과 주걱턱을 가진 환자와 만날 것이다. 의사와 환자 모두 짱돌 환자, 짱돌의사를 만나지 않는 것은 아주 큰 복이다. 의사와 환자로 만나는 것도 인연인데 해피엔딩이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대박이란 단어는 더 흥미롭다.

적어도 내가 다닌 병원에서 전공의 사이에서는, 대박 환자란 대단히 어렵고 힘들고 문제가 많은 환자이다. 또, 전공의 사이에서 ‘이번 주말 대박이야’는 설레는 약속이 있다는 뜻이 아니고, 밤새 일하고 당직을 서야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병원 밖에서는 어느순간부터 대박은 주로 좋은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대박 나세요’는 좋은 일 많이 생기고 돈 많이 버시라는 뜻이 되었고, 영화가 대박났다는 것은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는 뜻이 되었다.

요즘 양악수술이나 돌출입 수술로 소위 대박을 노리는 환자들이 많다. 연예인들의 수술 공개와 매스컴의 보도로 수술 전후의 극명한 변화가 많이 알려진 이후에 돌출입이나 양악수술 한 방으로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문의가 더 많아지는 추세다. 연예인이 된 다음 꼭 갚을테니 무료수술을 부탁한다는 메일도 받아보았다.

그러나, 양악수술, 돌출입 수술은 로또같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에서 탈출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돌출입, 양악수술을 하면 다 연예인이 되거나, 인생이 술술 풀릴 거라는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한 순간의 대박을 염두에 두고 돌출입, 양악 수술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돌출입, 양악 수술을 통해 대박이 난 환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대박은 오히려 현실감있는 기대를 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찾아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