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3] [뉴스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28회>: 수능의 추억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28>

수능의 추억

2011-11-11 오후 4:10:51

우선 수고 많았던 수능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예비고사, 본고사, 학력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이름은 바뀌어왔지만 교육열과 대학입학률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 시험은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연례행사가 분명하다.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명절 대이동과 대학입시를 아주 신기한 이벤트로 생각한다고 한다.

필자는 재수를 한 관계로 대학입시를 두 번이나 치렀다. 널뛰듯 바뀌는 입시제도 덕분에 한번은 선시험 후지원이었고 두번째는 선지원 후시험이었다. S대 치대에 합격하고도 재수하던 나에게 재수생 친구들은 속 편하게 재수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속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선지원이었던 두번째 시험은 S대에 가서 치렀다. 시험을 치르고 나와서 재수생 친구들과 대충 답을 맞춰보는데 가장 자신있던 영어의 주관식 문제 답들이 나만 달랐다. 처음엔 나만 맞혔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정답을 듣고 절망했다. 친구들이 맞았고 난 틀렸다.

난 실패를 직감하고 밤새도록 울었다. S대는 합격자발표를 늦게 하기로 유명하다. 따라서 기다림의 고통도 길었다. 발표 날 새벽같이 집을 나와 S대로 향해 근처를 몇 시간이나 방황했다. 피울 줄 모르던 담배를 샀다. 집에서는 내가 가출을 한 줄 알고 난리가 났다. 실패를 인정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 석자가 있었다. 난 정말 길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고통과 희열로 뒤범벅이 된 눈물이었으리라.

어제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여. 잘 봤다고 미리 축배를 들지도 말고 못 봤다고 미리 좌절하지도 말길 바란다. 승리에 도취된 왕의 검에 새긴 현명한 글귀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였다고 하지 않는가?

이글을 본 수험생이라면 시험에 단번에 붙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이 다 시험이고 선택이다. 이번 시험이 인생의 끝이 아닌 것이다. 운 없게도 이번 수능에 떨어진다손 치더라도 재수라는 건 스무살에 한 번쯤 해볼만한 일이다. 재수할 때 만난 친구는 역경 속에서 만난 친구여서 그런지 필자와 평생지기 친구로 남아있다. 재수하다가 평생 배필을 만난 경우도 적지 않다.

웹상담게시판에는 수능이 끝나면 바로 돌출입, 양악수술을 받고 싶다는 학생들이 많다.수능 전날에도 병원 게시판에 ‘내일이 수능이네요. 수능끝나고 꼭 병원에 갈게요’ 하는 글이 올라왔다. 내일이 수능인데 지금 병원 게시판에 들어와서 이런 글 남길 때냐고 야단을 쳐주고 싶었다.

필자는 부끄럽게도 ‘당일치기’ 스타일이어서 대학입시 전날에도 뭔가를 열심히 외우고 적고 문제를 풀고 했던 것 같다. 심지어는 시험장에서도 1교시가 끝나면 재빨리 2교시 과목 책들을 꺼내서 쉬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줄치고 외웠던 것 같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수능 직후는 사람들이 돌출입, 양악수술이나 얼굴뼈 수술을 많이 받는 시기 중 하나이다. 그 이외에도 대학재학 중 결혼이나 취업을 준비할 때, 그리고 2세를 다 낳은 후 마지막으로는 50대에 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분포한다.

50대 쯤 받는 수술은 소위 ‘한풀이’ 돌출입 수술이다. 평생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를 늦게나마 극복하려는 것이다. 50대의 어머니와 수능 본 딸이 동시에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수능을 본 딸 때문에 병원에 오셨다가 덩달아 용기를 얻으신 경우다.

수능직후에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은 것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수술했다’라는 입방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잇점도 작용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가면서 전혀 다른 사회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굳이 이런 잇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자신있는 모습으로 변신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번 수능에는 내 조카 중 한명도 시험을 치렀다. 필자는 누이가 많아 조카도 많다. 그런데 수능을 본 그 조카가 다름 아닌 돌출입이다. 중·고등학교때 이미 누이는 내게 조카의 치아교정이나 돌출입 수술에 대해 의논을 해왔었고 나는 공부나 열심히 하다가 수능끝나고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었다. 벌써 그 날이 왔다.

여담이지만 돌출입 환자에게서 ‘원장님 가족이라도 돌출입 수술 하실 건가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질문의 요지는 이 수술이 정말 가족이라도 해 줄만큼 안전하고 권장할만한 수술이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사실 돌출입 수술, 또는 의사에 대한 잠재된 불신이 숨어 있다. 돌출입이나 양악 수술을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여 환자들에게는 수술해 주지만 정작 자기 가족한테는 위험하거나 불필요한 수술이므로 안 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미 나의 가족 중 한명에게 돌출입 수술을 했었고 이번에 수능을 본 조카가 아마 가족 중에 돌출입 수술을 받는 두 번째가 될 것 같다. 자기 가족한테는 먹일 수 없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이 패륜이듯이 자기 가족한테 못할 수술을 다른 사람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 당연하다.

수능을 보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시기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임에 분명하다. 프로스트는 <가지않은 길>이란 시 속에서 갈림길에 서서 두 길을 다 갈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미련이 남지 않는 선택이란 없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대학이든 학과든 사랑고백이든 쌍꺼풀 수술이든 돌출입, 양악 수술이든 결혼이든 말이다.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