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6] [절골편 사진 포함] 생활의 달인, 수술의 달인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공장에서 박스를 빨리 접는 아주머니, 비닐봉투를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규격대로 자르는 아저씨, 손가락만 담가봐도 물의 온도를 아는 사람, 성냥개비를 정확한 수량만큼 집어서 포장하는 사람 등등, 십수년간 자신의 직업에 몸담아 오면서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고 정확한 기술을 습득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걸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손이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트레이닝 될 수 있는지 놀라울 때가 많다.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돌출입수술을 워낙 집중적으로 하다가 보니 나도 나름대로 이 분야에서는 어느정도 달인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주위의 평가도 그렇다. 여러 다른 의사들의 수술을 많이 봐 온 마취과 선생님이 나의 돌출입 수술을 보고 ‘명품 돌출입 수술’ 이라고 극찬을 해주셨으니, 감사할 일이다. 또한 3년전 쯤에는, 같이 의대 학창시절을 보낸 졸업 동기 여의사와 당시 그 병원에 근무하는 여의사가 강남의 ‘유수한’ 대형 병원을 모두 제쳐두고 날 찾아와 얼굴뼈 수술을 받았으니, 이것 또한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사실, 의사에 대한 평가는 의사 사이에서 더 왜곡이 없고 정확하다. 자신의 실력, 수술테크닉, 수술케이스, 수술방법, 수술시간 등을 뻥튀기해서 일반인을 상대로 ‘허위 과대 광고’를 하는 의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사 사회에서는 ‘아 저 의사는 수술 참 못하기로 소문났는데, 환자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부풀려 선전하는 병원’ 이라는 평판을 받는 병원이 있고, 반대로 의사사이에서 수술실력을 인정받고, 또 그 실력으로 환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병원이 있다.

  의사인 내가 어디가 아프다면, 아마 그 분야의 최고실력자에게 진료를 받고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분야를 검색창에 치면 수많은 병원들이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떠들고 있다. 물론 나는 의사 사회에서 이미 인증된 실력자가 누군지를 금새 알 수 있다. 그러니, 검색창을 통해 알아보지 않아도 전화 한 두통이면 누굴 찾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

  *  *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난 어렸을때부터 그림과 글씨, 만들기에 재주가 있어서, 교내는 물론이고 전국규모의 그림, 서예 대회에서 무수히도 많은 상을 탔다. 그래서 학교친구들은 지금도 ‘한상백은 손재주가 좋으니 성형수술을 잘한다’ 고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사실 그 친구들이 내 수술결과를 하나하나 눈여겨 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손재주가 있으니, 수술은 당연히 잘 할거라고 유추해서 결론지어 버리는 것이다.

 수술하는 외과의는 손이 좋아야하는 것은 명백하다. 게다가 성형외과의사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도 가져야 한다. 미적인 눈과 재주있는 손, 좋은 성형외과의사의 필수덕목이다.

 10년 전쯤에는 돌출입수술을 하는데 어떤 편리한 기구를 고안해서 수술을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내가 내린 결론은 역시 ‘수술은 기구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손이 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이다.

  내가 그림에서 보이는 저 9개의 뼈를 잘라내는데 쓴 것은 ‘톱’ 한가지이다. ‘톱 한가지’ 라기보다는 ‘한가지 톱’이라고 해야 맞다. 톱도 여러 가지 모양 여러 가지 방향의 톱이 있지만, 난 단 한가지 톱만 쓴다.

 산 사람의 뼈를 톱으로 자른다니 경악할 일 같지만, 우선 이 톱은 인체에 사용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만들어졌고, 또 얼굴뼈에는 통증신경이 없어서 실제로 뼈를 깎는 고통은 없으니 안심하길 바란다.

 

 덧붙인 그림을 보면, 내가 그린 두개골그림 상단에 내 이름을 썼다.

여담이지만, 어느 후배병원에 놀러갔더니, 내가 그린 돌출입전후 모식도 (http://www.seoulcheil.co.kr/dol/dol05.php)

를 인터넷을 통해 허락도 없이 가져가서 그대로 환자한테 보여주며 설명을 하는데 쓰고 있었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그 그림을 잘 보면 사각턱부분에 ‘한상백2003’ 이란 싸인이 들어가 있다. 후배는 당혹스러워하며 ‘형님 죄송합니다’ 하고 그 그림을 삭제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느 병원에 가서 내가 그린 그림을 발견하거나, 내가 쓴 콘텐츠들을 베껴 쓰는 병원이 있거든 ‘신고’해주기 바란다.

 

  여하튼, 이번에 내가 그린 두개골그림 한 장과 내가 자른 뼈조각 9개가 무엇인지,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1번 뼈조각

 1번은 옆광대를 줄이기 위해 각각, 한쪽 광대뼈에 두 번의 평행 절골을 해서 그 가운데를 ‘저며낸’ 뼈 조각이다.

 

 2번 뼈조각

 이것은 상악의 돌출입수술 시에, 상악을 후방으로 뿐만 아니라 상방으로도 3차원이동을 하기위해 돌출입분절의 상방을 저며낸 것이다. 사진에서는 눕혀져 있지만, 두께가 1-2 mm에 불과하기 때문에 톱의 방향이 조금만 잘못되면 사진속의 뼈조각처럼 예쁘게 ‘A’ 모양이 나오지 못한다.

 2번 뼈조각 두 개의 크기가 왜 다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두개골의 그림에서도 보듯이, 치아의 크기와 위치, 콧구멍의 안쪽뼈의 모양도 누구나 약간씩 비대칭이다. 따라서 그림에서 노란색으로 표시한 2번 영역의 크기도 조금씩 다르다.

 

3번 뼈조각

이것은 하악의 돌출입수술시에 4번치아를 발치한 공간을 통해 세로방향의 절골을 한 것이다. 절골한 뼈조각을 보면 4번치아의 뿌리가 박혀있던 부분이 검게 보인다.

 

5번 뼈조각

 4번뼈조각을 설명하려면 먼저 5번을 설명해야 한다. 5번 뼈조각은 턱끝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샌드위치 절골술을 한 뼈조각이다. 돌출입수술을 하면 얼굴이 길어진다는 논리는 사실이 아니며, 턱끝의 길이를 이와 같이 조절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90%가 넘는다. 따라서 나는 턱끝수술을 돌출입수술의 일부로 포함해서 생각하고, 턱끝수술의 비용도 따로 받지 않도록 하고있다.

 

 4번 뼈조각

이 뼈조각을 잘라내는 과정이 소위 'V라인' 수술에 해당한다. 보다 갸름한 턱끝모양을 위해서 이러한 절골을 하고 있다.

두개골 그림에서 보면 초록색의 5번 뼈조각을 빼내고 아래쪽 턱끝뼈를 위로 올려붙인다고 했을때, 딱 4번 만큼의 계단상 뼈모양이 튀어나온 모양으로 남게 된다. 돌출입수술 초창기에는 나는 이 뼈를 그냥 두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수술에서 이 뼈를 잘라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완벽에 가까운 곡선을 만들어주고 싶은 나의 완벽주의적인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들어낸다. 좋은 결과는 환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며 나는 이것이 기쁘고, 이런 데서 보람을 느낀다.

 사실, 샌드위치 절골의 양, 즉 턱길이를 줄이는 양이 2 mm 이하로 적으면 이 계단부분도 작게 남기 때문에, 이것을 그냥 놔두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샌드위치 절골량이 많아지면 이 계단부분을 절골해주는 것이 훨씬 좋다. 갸름한 턱선을 위해서다.

 그런데, 이 작은 뼈조각을 잘라내는 일은 매우 난이도가 높다.

 4번으로 표시한 영역 위쪽에는 바로 턱끝신경이 지나가고 있어서 4번 모양으로 같이 뼈를 자르려면 굉장히 좁은 공간으로 정확하게 톱날을 집어 넣어 예리하게 필요한 계단모양 부분만 잘라내야 한다. 외과의사의 손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실 쉬워보이지만, 1-2 mm 두께의 사람 얼굴뼈 조각을 대칭적으로 필요한만큼만 정확히 절골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톱이 조금만 엇나가면 두께가 다르게 절골이 되거나 중간에 뼈조각이 부러지게 되어 온전한 하나의 뼈조각으로 예쁘게 나올 수가 없다. 톱으로 대충 자르고, 좀 덜잘리면 또 갈아내고 한번 더 자르고, 이러다 보면 수술은 점점 힘들어지고 수술시간은 길어지고, 환자의 얼굴은 점점더 부어오르게 된다.

 의사의 손이 미련하면, 환자가 고생을 한다.

 명품 돌출입수술, 그것은 솜씨있는 손, 정확한 절골 능력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고, 자기가 지금 몇 mm 를 어느방향으로 자르고 있는지 정확히 지각하는 예술적이면서도 냉철한 눈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절대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 올랐다라는 말이 있다. 난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손에 물이 올라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만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매 수술마다 기도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수행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내가 한시간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느 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압박감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 이것이 손만 달인이 아니라 마음까지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독자의 편의를 위해 같은 그림을 하단에 하나 더 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