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29회> : 어느 수험생의 소원

어느 수험생의 소원



대학 입학 시즌이 돌아오면 항상 생각나는 잊지 못할 환자가 있다.

꽤 심한 돌출입을 가진 환자가 어머니와 같이 필자를 찾아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대입 수험생 환자가 꽤 많았으니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학생만큼은 특별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부 대학은 이미 합격자 발표가 나고, 일부 대학은 아직 발표가 나지 않은 상황.

돌출입 상담을 하다가 불현듯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금기와도 같은 질문을 했다. 대학입시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랬더니 돌아온 놀라운 대답은, 이미 최상위권의 대학, 학과에 합격을 해놓은 상태였다. 내 자식도 아닌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출입 상담은 잠시 멈추고,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했냐고 물었다.

대입에 성공한 사람에게 필자가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했냐?”고 묻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필자도 ‘왕년’에는 공부 꽤나 했으니, 가볍게 S대 의대 정도 들어가는 공부법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를 포함해서 필자의 의대 졸업동기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요즘 같은 수능 제도에서 다시 S대 의대를 갈 자신은 없단다.

과거에는 수험생 숫자는 많았지만, 그 중에 대학 진학은 쿨하게 포기하고 공부에 손을 놓은 학생이 반 정도 되었고,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내신등급 좀 망치거나, 학원 안다니고 독학해도 대입 시험 한 방으로 만회할 수 있었으며, 수학을 잘 못하면 대신 영어에서 점수를 보충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반면 요즘은 수험생의 숫자는 줄었지만 포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이 누구나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려고 하고, 각 과목에서 고르게 점수를 따내야만 하며, 한 문제 실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고 한다. 최상위권의 의대 쏠림 현상도 심해져서, S대 공대와 지방대 의대 중에 의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여하튼, 공부를 어떻게 했냐는 필자의 질문에 어머니는, 따뜻하지만 어딘가 애처로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찬찬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애는 그냥...정말...열심히 했어요. 독서실도 학원도 안다니고 집에서 공부했어요. 필요한 건 인터넷 강의 듣고요. 거의 집에 오면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책상에만 앉아 있었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애가 엄마 자기 소원이 하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뭐냐고 물으니, 마루에 책상 하나만 더 놔 달라는 거였어요.

저희 형편이 넉넉지 못해, 집이 너무 좁거든요. 아이가 좁은 방에 가득 들어찬 책상에서 꼼짝 않고 공부를 하니 너무 답답하다고...자기가 너무 힘들면 마루에 나와 다른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요...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필자의 눈물샘이 폭발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남몰래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은 있었지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치열하게 산 적이 있었던가? 학창 시절에 졸음과 싸우며 공부했던 기억은 이미 아득하고 희미했다. 집이 아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방이 비좁아 답답했던 적은 없었다. 아마 알량한 공부 좀 한답시고, 집에다가 이런저런 유세도 떨었을 것이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이 훌륭한 학생의 소박한 소원이 날 부끄럽게 했다. 우리는 얼마나 부족함을 견디지 못하고 소유와 편리를 당연시하며 살아왔던가?

착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환자에게 아름다운 외모를 선물해주는 일은 산타클로스가 된 것처럼 기쁜 일이다.

* * *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은 그 학생이 다음날 퇴원할 때였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거울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요.

-네, 아주 좋네요. 대학 합격한 것도 다시 한 번 축하해요.

-아...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직 발표가 나지 않은 곳도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S대에도 원서를 넣었는데 발표가 제일 늦다고 한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필자의 친구들은 다 원하는 대학 합격해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즐기던 그 때, 다음 해 1월 4일이 되어서야 나오는 S대 발표를 앞두고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유독 추웠던 어느 겨울날, 그 학생이 돌출입수술 후 2주 째 병원에 왔다. 치료실에 누운 환자의 입안 실밥을 뽑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참, S대 발표 났어요?

-네에...원장님, 저 원장님 후배 됐어요~!!!

순간 소름이 돋으며 눈물이 다시 글썽여졌다. 뭐지? 왜지? 내가 왜 이러지?

핸드폰은 커녕 삐삐도 없던 30여 년 전 어느 겨울 아침 S대 관악캠퍼스에서, 공중전화에 떨리는 손으로 10원짜리 동전 몇 개를 넣고 집에 전화 걸었었다. “아빠 나 S대 의대 붙었어!”라는 말에 “어, 그래, 잘했다”며 그야말로 엉엉 우시던, 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 날 새벽 침대에서 홀연히 사라진 나를 찾으러 집을 나선 어머니는 어디쯤인지 연락할 길이 없었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만나기도 하고 연락도 하며 살았다는 게 신기하다.

필자의 후배가 된 그 학생이 꼭 하고 싶었던 소원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적은 용돈이지만 자기는 공부하느라 쓸 곳도 없어서 한 푼도 안 쓰고 모을 테니, 원하는 대학 학과에 합격하면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단다. 그것도 나중에 꼭 갚겠다며...

그런데, 정작 좋은 대학에 합격해 놓고 S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여행을 포기하고 그 대신 그 학생이 선택한 것이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는 것이었다.

그 학생이 남학생이었는지 여학생이었는지, 필자의 후배가 되었다는 게 S대에 들어왔다는 것인지 S대 의대에 들어왔다는 것인지, 몇 년 전쯤의 일인지는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생인 그 환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목소리에 행복함이 묻어났다. 쓸데없는 촉이 가동되었다.

-혹시...캠퍼스 커플 되지 않았나요?

-헐...원장님, 어떻게 아셨어요?

얼마 전 SMS로 다른 어느 환자의 온라인 청첩장을 받았다. 같은 종목 운동을 하다가 알게 된 그는, 대학생 때 내게 돌출입수술을 받았었다. 청첩장 속에 신랑, 신부가 마주보고 있는 대문사진을 보고, 축하의 말과 함께 답장을 보냈다. “옆모습이 예술이네!” “ㅎㅎ 원장님 덕분입니다. 시간 되시면 꼭 오세요.”

마루에 책상 하나만 더 놔 달라던 첫 번째 소원과,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다음 해외여행 대신 돌출입수술로 바뀐 두 번째 소원은 남김없이 이루어졌다. 앞으로 어떤 소중한 꿈이든 꼭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언젠가는 병원으로 S대 후배의 청첩장이 날아들 것이다.

강의실, 도서관, 직장, 결혼식의 주인공, 육아에 잠을 설치는 부모의 자리, 힐링의 여행지, 그 어디에 있든, 필자가 찾아내드린 숨겨졌던 아름다움이 그를 더 빛나게 해줄 거라 믿는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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