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30회> : 거짓말 2

거짓말 2



대선 정국에 날마다 신박한 뉴스가 넘쳐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정치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를 운영하고 가치를 배분하는 행위로서, 기본적으로 선(善)이다.


그리이스 민주주의와 아크로폴리스(사진출처 : 구글)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떤 사람의 태도가 정치적이라는 말은 변질되어, 좋게 말하면 지략에 능하고, 나쁘게 말하면 술수에 능함을 가리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가령, 공식석상에서 어느 유명인 A에게 “갑과 을 중, 누가 더 얼굴이 예쁘냐?”고 묻는다면, 정치적인 사람은 ‘글쎄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굳이 반드시 한쪽을 택하라고 한다면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갑입니다. 을도 물론 훌륭하고, 사람마다 미적 견해는 다를 수 있겠죠.’ 라고 대답할 것이다.

반면에 같은 질문에, 순진하거나 세상물정 모르는 B는 “갑이 확실히 더 예뻐요. 을은 못 생겼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A도 갑이 훨씬 더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B처럼 시원하게 사이다 발언을 하면 후폭풍이 거셀 것이다. ‘얼평을 했다’, ‘외모지상주의다’, ‘성 상품화다’, ‘자기 얼굴은 어떻고~’에 이르기까지 각종 비난에 시달릴 수 있다. 즉, 일부러 에둘러 슬쩍 거짓말 섞인 대답을 하는 것이 더 이롭고, 그야말로 정치적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칼럼 <거짓말>에서, 환자를 대할 때 필자의 거짓말 기술이 꽤 늘었다고 썼었다. 그 내용은, 돌출입뿐만 아니라 광대뼈, 사각턱도 튀어나온 환자에게, 돌출입수술과 동시에 광대뼈, 사각턱 수술도 해야 한다고 역설하면, 환자 측에서는 병원이 상업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다른 수술이 추가되는 것이 두렵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에, “돌출입수술만 해도 괜찮겠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선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명백하다. 실제로 그 세 가지 수술 중에 돌출입수술이 가장 큰 변화와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필자의 거짓말 기술이 시험대에 올랐다.

* * *

어느 여름, 필자를 찾아온 여자 환자 C는 눈이 예뻤다. 마스크를 내리는 순간, 늘 그렇듯이 돌출입일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유로 적잖이 놀랐다. 지난 칼럼 <결혼은 골치 아픈 것>에 결혼을 약속한 후 돌출입수술에 쓰인 핀과 나사를 제거하러 왔던 신부와 너무 닮아서다. 물론 신랑에게는 수술한 사실도, 핀을 빼러 온 사실도 비밀이었다. 당시 그녀의 수술 전 사진을 확인하고는 ‘장난꾸러기 아기공룡’같은 느낌이었다고 썼었다.

C 역시 눈이 예쁜 아기공룡 느낌이었다. 핀을 제거하러 왔던 그 신부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듯이, C 역시 돌출입수술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환자는 돌출입 보다는 광대뼈와 사각턱을 수술하고 싶어 했다. 돌출입이라는 걸 알긴 하지만 굳이 수술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는 듯 했다.

필자는 순진하게도 환자를 설득했다.

물론 세 가지 수술을 다 하면 가장 많이 개선되겠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광대뼈, 사각턱수술 대신에, 돌출입수술만 하는 것이 낫다는 취지였다. 그건 진심이고 사실이었다. 같은 비용을 내고 더 효과가 큰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게 더 양심적이라고 믿었다.

이번만큼은, “그래요, 환자분이 원하는 대로, 돌출입은 그냥 놔두고 사각턱, 광대뼈수술만 해도 괜찮겠습니다.” 라고 거짓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건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그냥 거짓말로 느껴졌다. 적어도 돌출입수술을 20년간 해온 필자 눈에는 그랬다. 비용의 차이도 없으니,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환자는 고민해보겠다며 돌아갔다.

가을 쯤 C가 다시 찾아왔다.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수술을 모두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광대뼈와 사각턱수술만 하기로 했단다.

이때 필자가 능수능란한 사업가이고 정치적이었다면, “아,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광대뼈와 사각턱만 개선되어도 많이 예뻐질 겁니다.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수술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주었어야 한다. 여기서, 최선을 다해 수술해드리겠다는 건 진심이지만, 광대뼈와 사각턱만 개선되어도 ‘많이 예뻐질’ 거라는 건 상대적으로 거짓말에 가깝다. 돌출입수술이 더 많이 예뻐지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입이 튀어나온 장난꾸러기 아기공룡을 상상해보자. 귀엽긴 하다. 그러나 하이틴 로맨스 만화의 주인공감은 아닐뿐더러, 어리니 귀여운 것이다. 중년공룡이 되면 그나마 귀엽지도 않다.

입이 튀어나온 공룡, 개구리, 유인원들은 특히 입매에서 그들만의 유사성이 있다. 아마 동물원 원숭이들의 증명사진을 본다고 해도, 사육사가 아닌 한 그들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돌출된 입이 다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구글 및 Yukari Archive

그런데 엉뚱한 가정을 해보자. 유인원들도 얼굴형이 다 다를 것이다. 두상과 사각턱이 더 큰 수컷도 있고, 광대뼈가 더 넓은 암컷도 있을 것이다.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만약 그 유인원에게 광대뼈와 사각턱수술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 유인원 특유의 외모가 사라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돌출입의 특징이 남아 있는 한 광대뼈, 사각턱이 개선된다고 해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게 된다.

물론 사각턱, 광대뼈수술은 하나마나란 이야기는 아니다. 입매가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는데 광대뼈, 사각턱이 크고 돌출되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당연히 광대뼈, 사각턱이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수술이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수술은 합병증 가능성이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결국 C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녀는 수술을 아예 취소해버리고 말았다. 수술을 포기한 것이다.

필자가 순진하게도 돌출입수술이 더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게 수술이 취소된 날, 모든 것이 정지된 텅 빈 수술장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 부자 되긴 글렀다.

환자가 수술비를 들고 와서 어떤 수술을 하고 싶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네 그러세요.”해야 부자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얼굴에 손대지 마시라고 돌려보낸다든지, 별 효과 없을 테니 수술하지 마시라든지, 지금 광대뼈, 사각턱이 문제가 아니고 돌출입을 수술해야 많이 예뻐진다든지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환자가 하고 싶다는 수술이라면 두말 않고 해주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득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못하겠다.

둘째, 환자는 왜 수술을 취소하게 되었을까?

사실 환자 생각이 정 그렇다면 (필자가 재차 돌출입을 언급했을지언정), 광대뼈와 사각턱만 수술해달라고 내게 ‘선언’하면 될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최종 결정이 나면, 필자는 광대뼈, 사각턱수술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주었을 것이다. 의사는 결국 환자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수술을 해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굳이 전격 취소까지 한 이유는 뭘까?

되짚어보면, 자신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또, 이 병원 원장은 돌출입에만 관심이 있고 광대뼈, 사각턱에는 무심하다는 걱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필자가 손쉬운 수술로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치아를 네 개 빼고 하는 돌출입수술이 광대뼈, 사각턱수술에 비해 훨씬 더 엄두가 안 나고 큰 수술로 느껴졌을 수도 있으며, 자신이 별로 돌출입에 불만이 없거나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다.

알고 보니 거짓말은 환자 C가 했을 수도 있다. 수술을 포기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돌출입수술에는 관심이 없는, 광대뼈, 사각턱 전문이라는 어떤 병원에 수술 예약을 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에게 C가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눈앞에 뻔히 보이는 돌출입을 놔두고, 광대뼈와 사각턱만 해도 많이 예뻐질 거라는 새빨간 거짓말은 차마 못하겠는데 어쩌랴.

필자의 거짓말 기술은 아직 멀었다. 아니, 형편없다. 더 늘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환자 입장에서는 거짓말 잘 못하는 의사가 더 믿을 수 있고 필요한 의사일 거라고...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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