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24회> : 외국과 외국인

<외국과 외국인>


남해에 다녀왔다.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 바다, 산과 들이 한 눈에 어우러지는 장관이 펼쳐지자, 누군가에게서 ‘와~ 여기 외국 같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누구나 낯선 풍경, 경험해보지 못한 멋진 풍광을 바라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외국 같다’라는 말이 ‘이국적’이란 뜻의 영어 단어 exotic에 준하는 한국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겠지만, 나는 여행을 할 때 누군가 ‘외국 같다’라고 하면 한편으로 좀 서글프다. ‘외국 같다’가 멋지다-라는 뜻이라면 단순 논리로 ‘우리나라 같다’란 뜻은 별 볼일 없다는 뜻이 되어 버린다.

친구네 집들이를 가서 ‘외국 같다’ 라고 하는 것도 아마 긍정적인 코멘트일 것이다. 새로 꾸민 집이 북유럽 느낌이든, 베르사이유 궁전 같은 느낌이든 칭찬인 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한편, 친구의 배우자를 보고 ‘외국인 같다’라고 하면 어떨까? ‘인’자 하나 더 들어갔을 뿐인데, 이번에는 실언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 외국인이라는 게 오대양 육대주의 어느 나라 사람과 닮았다는 것이든지 관계없이 다 그렇다.


특히 한반도의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한민족(韓民族)으로서는, 우리 민족과는 다르게 생겼다는 것은 심정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다. ‘외국인 같다’라는 말이, 코카시언(소위 백인), 동북아시아인(몽고계), 아프리카인, 동남아시아인, 아메리카/태평양/오세아니아 원주민 등의 인종 중 그 어느 인종, 어느 나라 사람과 닮았다는 말일지라도, 외국인처럼 생겼다는 코멘트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대체로 환영 받기 어렵다.

‘요즘 문화는 다문화입니다’라는 계몽주의적 공익광고가 나오고,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와 같은 공공기관이 존재하는 것 자체도, 어찌 보면 다르게 생긴 것을 어색해하는 한민족의 정서에서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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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필자의 병원을 찾은 여성 A씨는 한국으로 귀화한 분이고 한국말이 유창했다.

활짝 웃을 때 잇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녀는 돌출입수술을 하고 싶어 했다. 너무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는 내가 스크루지가 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사연이 있는 환자들을 다 무료수술을 해줄 수도 없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 20대의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된 그녀의 한국인 남편은 장성한 자식이 있고 아내를 사별한 나이 많은 남자였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어린 아내를 위해 남편은 12시까지 사전 펴가며 같이 한국어를 공부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들은 이혼을 하게 된다. A의 말에 의하면,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미 자식들은 장성했고, 더는 새 아내로부터 아이를 낳지 못할 형편이었으므로, 외로워하는 아내에게 독립해서 새 삶을 살도록 놓아주었다고 한다.

여자는 법적으로 이혼한 후에도, 일을 해 꼬박꼬박 적지 않은 생활비를 전 남편에게 부쳤단다. 남편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남편이 심장병도 있고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인데다가, 자식들도 연락을 하지 않고 너무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한다.

남 경황 봐줄 처지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자기가 정이 많아서 그렇다면서, 그래도 자기는 전 남편에게 고맙다고 한다. 자신을 때리지 않아서 고맙고, 한글 가르쳐주고, 자기에게 나쁘게 한 적 없어서 고맙고, 자기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고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 전 남편이어서 고맙다고 한다.

뭔가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녀의 결혼과 이혼에 대하여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열불을 내기도 했을 텐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상황에서 좋은 점만 보고, 자신이 오히려 도울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하다니...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날개 없는 천사인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랬던 그녀, A가 최근 다시 필자를 찾았다.

전 남편이 자신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급 받는 돈으로 충분하니, 생활비를 그만 보내라고 만류를 했고, 그 이후부터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3년 전 못한 돌출입수술을 하겠다는 것이다. 환자가 돈을 모아서 다시 왔다고 할 때에도 역시 스크루지가 된 느낌이 재현된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그녀가 한국에서 더 아름답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위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의 수술을 최대한 배려해서 행해주는 것이다. 그녀가 모은 돈을 다 수술비로 받으면 그녀는 수술 후 쉬지도 못하고 또 바로 일터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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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찾아와서 돌출입수술을 받고 싶어 하는 한국인 환자들 중 꽤 많은 수가, 외국인으로 오해받곤 하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한다.

얼마 전,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 이주해서 사는 한국인 여성 B씨가, 이 코로나 와중에 돌출입수술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필자를 찾아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현지 음식점에서 미국 국적의 남편이 영어로 주문을 하면, 주문을 받는 현지인이 애타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통역해달라고 한단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라고 한다. 정작 그녀는 그 나라 말을 모르는 한국인인데, 현지인들은 그녀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다고 한다. 현지에서 현지인으로 오해받는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으로 오해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피부와 돌출입, 두터운 입술, 중안면부의 함몰감, 짧고 낮은 코, 크고 뚜렷한 콧망울[콧방울]등은, 기온이 높고 태양열이 강한 지역에서 열 발산과 체온조절에 유리하도록 인류가 선택되고 적응해온 결과라고 한다.


과학자 이종호가 더사이언스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인용한 바에 의하면, 동물학에 ‘알렌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포유동물의 종은 추운 곳에서 사는 아종일수록 신체의 돌출 부분(코, 귀, 꼬리 등)이 작아지고 둥근 체형으로 간다는 설명이다. 체적에 대한 체표 면적의 비율이 작아질수록 체온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법칙은 같은 포유류인 인간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더운 곳에서 살수록 콧망울, 귀, 입술과 같은 돌출부위의 표면적이 더 넓고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반전은 원래 동남아시아에 분포하는 남방계의 특징을 가진 얼굴은 거의 예외 없이 눈이 크고 길며 진한 쌍꺼풀이 있고 속눈썹이 길다는 것이다(출처 : 얼굴학자 조용진 교수의 <미인>, 해냄사, 2007).


따라서, 동남아의 어느 나라에서 B씨가 현지인 여성으로 오해받는 이유 역시, 돌출입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쌍꺼풀진 크고 예쁜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특히 여성에서 개구리 왕눈이에 비유되곤 하는 크고 예쁘고 쌍꺼풀진 눈, 약간 돌출된 눈은 돌출입수술을 하기에 최적화된 천혜의 조건이다. 돌출입이 개선되어서 입매까지 예뻐진다고 가정하면, 배우 한예* 이나, 김태* 처럼 마스크를 썼을 때나 벗었을 때나 변함없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얼굴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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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외국 여행을 못한지가 2년째가 되어가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 이국적인 여행지에서 얻는 힐링은 분명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에 에너지가 되어줄 수 있을 텐데, 여행도 모임도 부자유스러운 일상이 계속되면서 사람들도 지쳐간다. 해외여행 가려고 모은 돈으로 백화점 명품 샾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이제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외국에 나갔을 때 당신이 주위의 한국인을 금방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재미삼아 시험해보시길 바란다. 그들이 한국어를 하는 것을 듣지 않아도 저 팀은 한국인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하는 특징적인 생김새가 있다. 물론 인종적 유전자는 갈수록 혼재되고, 한국인에서도 남방계, 북방계 얼굴이 있으며, 평균 이상의 아름다운 얼굴일수록 더더욱 구별이 쉽지 않다.


돌출입수술, 광대뼈, 사각턱 수술을 하는 집도의로서는, 한국인의 특징,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환자들의 윤곽선과 입매를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한국인은 ‘외국인 같은’ 것을 정말 싫어한다. 돌출입도 싫지만, 서구적인 입매가 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려면 수술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야 한다. 집도의의 안목과 솜씨가 중요한 이유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사는 A, 한국에서 외국으로 나가 사는 B, 두 환자 모두 필자에게서 돌출입수술을 받았다. 이제 그들에게 돌출입으로 인한 오랜 스트레스도, 돌출입 때문에 생기는 오해와 편견도 사라질 것이다. 아름다움이 그들 자신과,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할 것으로 믿는다.


사족 같지만, ‘외국 같다’는 말이 나와야만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머지않아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고도(古都) 경주에 다녀오려 한다. 천년을 불어온 가을바람에 발걸음을 맡겨보고 싶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년간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