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23회> : 두 자매

<두 자매>


자매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팔짱을 꼭 낀 언니와 동생은 우애가 참 깊어 보였다.

돌출입수술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여동생이었다. 돌출입 수술을 20년 동안 해온 필자가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상급의 돌출입이었다. 돌출입이 약 7 mm 이상이고 꽤 심한 편이라고 하자, 언니가 동생의 입매를 더듬어 만져보고는 두 사람 다 유쾌하게 웃는다. 사춘기 소녀들 같았다. 크게 웃을 때 두 자매 모두 잇몸이 많이 보였다. 돌출입에 자주 동반되는 이런 증상을 거미스마일(gummy smile)이라고 한다.

동생을 바라보는 언니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언니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걸을 때 동생의 팔짱을 꼭 끼는 것도, 동생의 돌출입을 손으로 만져보는 것도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병실에서 언니는 동생의 충실한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그 동안 보이지 않는 앞길을 인도해준 든든한 동생이 줄곧 보호자 역할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6개월 쯤 지나, 두 자매가 역시 소녀들처럼 환하게 웃으며 진료실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언니가 돌출입수술을 받겠다는 것.

몇 년 전 필자는 청각장애우인 A양에게 돌출입수술을 해주고 나서, 그녀가 진료실 키보드로써 준 ‘예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필자는 이렇게 썼었다. ‘사실, 아름다움이란 눈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사실 A양은 듣고 말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만약 시각이 자유롭지 못했다면 돌출입 수술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이었음을 이제 깨닫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언니에게는 사실 아픈 사연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꽃다운 20대의 청춘을 보낼 때까지는 그녀는 앞을 잘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안과적 질환이 중증으로 악화되면서 30대에 들어서 양쪽 다 실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더 이상 거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아상(self image), 돌출입과 거미스마일에 대한 컴플렉스,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망들을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우애가 남다른 두 자매가 이렇게 필자로부터 같은 돌출입수술을 받음으로써, 이제는 입매의 아름다움까지 쏙 닮은 자매가 되는 셈이다. 삼십대인 그녀들의 사춘기 소녀 같은 환한 웃음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웃음은 그 자체로 긍정 에너지이지만, 수술을 통해 과도하게 보이던 잇몸이 적당한 정도로만 보이면서 한층 더 웃음이라는 미학적인 완결성에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인 김영훈 교수는 베이비트리라는 육아칼럼에서, 자매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언니는 동생을 보살펴주는 동시에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심리가 있다. 반면에 동생은 언니를 닮고 싶어 하지만 언니보다 더 예뻐지려고 하거나 언니의 물건을 빼앗고 싶어 하기도 한다.’


동생이 돌출입수술을 하려는데 극구 말리는 언니, 언니가 돌출입수술로 예뻐지고 나서 집안에서 평생 지켜온 미모의 순위가 역전되어 스트레스 받는 동생, 자신은 어디 더 예쁘게 수술할 곳이 없냐면서 샘을 내는 자매들에게는 이런 질투와 시샘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와는 달리,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연속해서 맡긴 두 자매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버팀목일 뿐만 아니라, 그 둘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울림이 있다.




봄의 생기발랄함, 두 소녀의 사랑스러움, 젊음의 활기, 꽃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영롱하게 빛나는 <두 자매: 1881, 캔버스에 유채>는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의 역작이다. ‘행복한 인상주의자’로 불리는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에게 그림이란 유쾌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에는 불쾌한 것들이 이미 많은데 그런 것을 굳이 더 그려낼 필요가 없다(To my mind, a painting should be something pleasant, cheerful, and pretty, yes pretty! There are too many unpleasant things in life as it is without creating still more of them).’

필자에게 수술 역시, 유쾌하고 즐겁고 아름답다.

그렇다.

아름다워야 한다.

다만, 망치면 덧칠이 가능한 그림과 달리, 수술에서는 매 순간 합병증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안전과 아름다움은 성형수술이 착한 수술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누구나 아픔 하나쯤 간직하고 산다. 몸이 아프고 불편한 사람도 있고, 마음이 아프고 힘든 사람도 있다. 눈이 밝아도 마음이 어두운 사람도 있을진대, 눈이 어둡지만 마음이 밝은 언니와 환하게 잘 웃는 그 동생 모두, 안전하게 아름다워진 예쁜 모습으로 세상을 밝게 만드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축원한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년간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