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9]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19회> : 실수

실수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실수와 실패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발명가 에디슨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Scheiternist die Mutter des Erfolg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발명을 하다가 실수를 하고 그로 인해 실패를 맛본다면, 실패한 결과물은 버리고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만큼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직업도 드물 것이다. 의사의 실수, 치료의 실패는 모두 환자의 건강과 생명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 밀리그램(mg) 를 투약해야 하는데 실수로 100 그램(g) 을 투여하라는 잘못된 처방 지시가 내려졌다고 치자. 이것이 약제과와 간호사의 이중 확인(double check)에서도 걸러지지 않는 실수까지 보태지면, 결국 환자는 필요한 양보다 1,000배의 약물을 투여 받게 될 것이다. 무슨 약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용량의 약물은 장기 손상을 줄 수도 있고,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물론 안전장치는 있다. 거의 모든 주사 약물은 한 번에 다 투여해도 될 만큼의 양이 병에 담아져서 나온다. 위에 예로 든 경우에서도, 예를 들어 200 mg씩 담겨있는 약병을 500개 까서 모두 환자에게 준다는 것은 어느 단계에서 제동일 걸릴 것이고,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한편, 성형외과에서 ‘환자’라고 일컫는 사람들은 사실상 그 어디도 아프지 않다. 건강한 사람들이다.

가령, 눈의 망막이 광범위하게 박리되어실명위기가 왔는데 안과 집도의가 수술과정에 어떤 실수나 과실이 있어서 결국 실명을 막지 못하고 실명에 이르게 된 것과, 멀쩡하게 잘 보이는 건강한 눈인데 예뻐지려고 쌍꺼풀 수술을 하다가 성형외과 집도의의 실수로 실명에 이르게 된 것과는 극명한 온도차가 있다. 양쪽 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성형외과 전문의의 실수는 상대적으로 더 큰 재난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20년간 돌출입수술과 광대뼈, 사각턱수술에 집중해 온 필자가, ‘실수’를 통해 현재의 정제된 수술법으로 발전되어 왔다면 깜짝 놀라실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제대로 수술을 하지 못하고 실수했던 시절의 환자들을 ‘마루타’ 삼아서, 현재는 수술을 더 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오인하실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통해 배운다.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한다. 그러나, 의사에게 실수를 통한 학습과 발전은 허용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필자를 더 발전시켜 준 실수들이란 무엇일까?

첫 번째, 중력

아시다시피 중력은 모든 시간, 모든 것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우리가 익숙해서 잘 못 느낄 뿐이다. 얼굴살이 늘어지는 것도, 무릎이 아픈 것도 사실 중력이 작용한다. 필자가 환자의 돌출입을 수술하는 동안에도 중력은 끊임없이 모든 물체에 작용한다.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 의료진끼리 돌출입수술을 하는 도중에는 아주 드문 일이지만, 우연히 손끼리부딪힌다든지 장갑에서 미끄러져서 수술기구가 바닥에 떨어질 수 있다. 열심히 수술에 집중하는데 수술기구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게 별로 유쾌하지 않은데다가, 문제는 당장 필요한 기구가 바닥에 떨어져 오염이 되었으니 그 기구를 못 쓰게 된다. 이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떨어져 버린 기구와 비슷한 다른 기구를 사용하든지, 아니면 무균 소독이 미리 되어있는 여분의 세트를 풀어 동일한 수술기구를 꺼내 쓰게 된다.

10여 년 전쯤, 수술 조수를 서던 한 간호사가 상악 돌출입수술시 점막을 젖히던 1구 스킨훅(single prong skin hook; 갈고리가 한 개 있는 견인기)을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필자는 잘 쓰지 않던 2구 스킨훅(double prong skin hook: 갈고리가 두 개 달린 견인기)으로 대체하고 수술을 진행하기로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수술시야가 미세하게 더 넓어져서 수술이 더 편해졌다. 견인 지점이 두 군데로 분산되어 점막도 더 잘 보호되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한 간호사의 조그마한 실수 이후, 필자는 현재까지도 돌출입수술시 2구 스킨훅을 쓰고 있다. 이런 작은 차이가 더 완성도 높은 수술결과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물론, 수술은 기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 하는 것이지만, 가장 최적의 환경과 시야에서 수술해야 수술솜씨도 빛을 발한다.

두 번째, 재고 소진

10여 년 전 돌출입수술을 할 때였다. 상악전치부를 잘 후방이동시키고 고정을 할 차례였다. 핀과 나사, 그리고 치간(齒間)철사를 사용한다. 철사를 달라고 하자, 수석 간호사가 머뭇거린다.

-저...원장님. 저희 쓰던 와이어(철사)가 다 떨어졌어요. 한 치수 더 가는 철사밖에 없는데 어쩌죠. 미처 준비를 못해...죄송합니다

이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한 치수 더 가는 철사는 신의 한 수였다. 고정하는데 부족함 없이 견고했으며, 더 다루기 쉽고, 치간을 더 잘 통과했다. 매듭도 더 잘 만들어지고, 제거할 때 환자가 거의 아파하지 않게 되었다.

세 번째, 잘못 꺼낸 봉합사(실)

광대뼈수술은 거의 입안으로 진행되지만, 구레나룻 부분에도 작은 절개가 들어간다. 이 부분을 성형외과적으로 봉합할 때 20년 전 초창기에는 나일론(의료용 실의 브랜드 중 하나) 5번 봉합사를 사용했었다. 간호사가 실수로 나일론 6번 실을 준비해놓은 적이 있는데, 그냥 그 실을 사용해보니 미세하지만 더 정교하게 봉합이 가능했고 봉합한 흉터도 더 깔끔했다. 그 이후로는 주욱 6번 봉합사를 사용해오고 있다. 물론 필요할 때는 7번을 같이 사용하기도 한다. 의료용 봉합사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 가늘고 더 비싸다.

사람의 머리카락 두께가 보통 0.1 mm이하 정도다. 5번 나일론 봉합사가 0.1mm 두께이고, 6번 나일론 봉합사가 0.07mm 이니 사실 두 가지 다 머리카락만큼 가는 실이지만,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된다면 기쁜 일이다.

네 번째, 환자의 고집

필자는돌출입과턱끝수술을 할 때 환자가 원하는 바를 결과에 반영하려고 노력해 오고 있다. 그런데, 오래 전 한 남자 환자가 ‘입을 덜 넣어 달라’는 요구를 했다.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였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40대의 필자는 환자를 만류했다. 이왕 돌출입수술을 하는데, 굳이 돌출입의 느낌을 남기면 아쉬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속으로는 환자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환자는 강경했고, 결국 환자의 고집대로 입을 덜 넣기로 했다. 수술을 하는 중에도 필자는 계속 아쉬웠고 환자를 설득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물론 동시 턱끝수술로 커버를 하긴 했지만, 최종적인 수술결과는 사실 필자의 눈으로는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정작 환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바로 이것이라며 아주 만족해했다. 실수라고 여겼던 환자의 선택을 통해, 환자가 원하는 목표의 다양성을 더 폭넓게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환자에게 맞춤 성형수술을 해줄 수 있는 유연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물론 이런 뚜렷한 요구를 하는 환자는 드물고, 방대한 분석 자료와 수술 경험을 믿고 돌출입 개선 정도를 필자에게 맡기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필자가 알아서 누구나 아름답다고 인정할만한 얼굴형이나 입매를 만들어 준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유연하게 다양한 환자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해주고자 하는 노력은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

은사이신 서울 의대 교수님의 퇴임사에 ‘대과(大過) 없이 정년을 맞게 되어 영광’ 라는 표현을 기억한다. 평생 다양한 환자를 봐 오면서 큰 실수, 큰 허물이 없었다는 것만 해도 참 다행스럽고 영예로운 일인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악결과를 내는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 한 사람의 환자도 잘못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의사로서의 기본이며 사명이다.

그러나, 지금 기억나는 몇 가지 예, 그러니까 바닥에 떨어진 수술기구, 재고가 떨어진 철사, 잘못 준비한 봉합사와 같은, 환자에게 해악이 없고, 조그마한, 만회할 수 있는 실수들을 통해 조금씩의 변화와 발전이 있어온 것이 맞다면, 그런 긍정적인 실수들을 운좋게 빨리 겪었기에 지금의 개량된(refinement) 수술법이 존재한다. 물론 큰 줄기는 변하지 않았겠지만, 일찌기 겪은 작은 변화들이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현재 필자에게 돌출입수술과, 광대뼈, 사각턱수술과 같은 얼굴뼈 윤곽 수술법은 정제될(refinement)만큼 정제되어 뺄 것도 넣을 것도 없게 된지 오래다. 실수나 변화를 통해 더 발전시킬 부분은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고 느낀다. 과연 앞으로 누군가의 우연하고 고마운 실수로 더 변화할 여지가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만일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는 똑같은 실수를 조금 더 일찍 저지를 것이다(If I had to live my life again, I’d make the same mistakes, only sooner).‘ 미국의 배우였던 탈룰라뱅크헤드(Tallulah Bankhead)가 남긴 말이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년간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