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20회> : 고졸의 학원 강사

<고졸의 학원강사>



누구를 가르치는 일은 참 어렵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공부 잘하게 만드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다. 축구를 가장 잘했던 사람이 최고의 축구 코치나 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영어를 배우거나 축구를 배우려면, 가르치는 선생님이 영어와 축구를 못해서는 안되는 게 당연하다. 자신도 못하는 걸 남에게 가르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초심자 골퍼들끼리 서로 해주는 원포인트 레슨만큼 한심하다.


대입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누가 가르쳐야 할까? 당연히 알만한 대학에 합격한 대학생이 과외를 하거나, 소위 명문대를 나온 강사들이 두텁게 포진해있는 것이 현실이다. 버스 옆면에 소위 스타 강사들의 얼굴, 이름, 과목이 대문짝만하게 적힌 광고를 보면 참 신기하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광고가 있을까?



* * *



돌출입수술을 하고 싶다는 23세의 남자는 현직 학원 강사였다.


학원 강사 치고는 많이 젊다고 생각했는데 첫 대면에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봉투를 내밀었다. 꽤 두툼한 편지였다. 대 여섯 장의 깨알 같은 손편지를 환자 앞에서 읽었다.


요약하자면, 자신에게 두 가지 소원이 있는데, 하나는 서울대 의대 진학, 하나는 돌출입수술이라는 것이었다.


환자의 말에 따르자면, 편지 속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중학교 때까지 ‘막 살았다’고 한다. 공부는 전혀 하지 않다가 고등학교 들어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피나는 노력 끝에 지방대 의대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학교 등록금을 내줄 형편도 되지 않는데다가, 본인의 목표인 서울대 의대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의대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재수를 하면서 돈도 벌어야 했기에, 학원에서 보충학습을 봐주는 보습 선생님으로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로 학원에서 만난 몇몇 학생들에게 과외를 해주게 되고 과외 받은 학생의 성적이 기록적으로 향상되면서, 일이 점점 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2-3년간 대입 강사로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누가 고졸인 저에게 공부를 배우겠어요...


그는, 최종학력이 고졸인 자신이 다른 학생을 가르친다는 사실로는 신뢰를 주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컨텐츠를 입증하기 위해 영어 교재를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영어 참고서를 집필한 것이다. 인쇄하고 제본해서 만든 방대한 분량의 영어 교재를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이과생임에도 입시 때 수학보다 영어에 자신이 있었던 필자 눈에 훌륭하게 잘 만든 교재로 보였다.


그가 지방대 의대를 포기한 장면은 안타깝다. 집에서 도와줄 수 있었다면, 입학해서 다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여러 대학 의대에 입학한 1학년생 중 상상 이상으로 많은 숫자가 소위 ‘반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워낙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져 단 한 두 문제 차이로 대학이 결정되니, 억울해서 그대로는 못 다니겠고 한 번 더 시험을 치러 보겠다는 것이란다. 이 상황 역시 안타깝다. 차라리 입시 제도에서, 수능을 세 번 정도 봐서 평균을 내든지, 난이도를 높여서 변별력을 확보하든지 해야 이런 불합리한 에너지의 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초과학 같은 학문에 쏟아 부으면 좋을 아까운 지적(知的) 에너지가 재수, 삼수하는 수능 공부에 낭비되고 있다.


어떻게든 환자를 돕고 싶었다.


검색해보니, 서울대 의예과 등록금은 2020년 기준 614만 4000원이다. 같은 2020년 기준 사립대학교 의대 중에는 천만원이 넘는 경우가 흔하고, 고려대 의대가 1241만원 대, 경희대 의대가 1240만원, 연세대가 1210만원 대로 각각 1, 2, 3위다. [자료출처 2020년 11월 5일 데일리메디. ‘전국 의대 3년간 등록금 동결, 인하’ 제하의 기사]


필자는 환자를 그날 처음 봤지만, 처음 만난 성형외과 원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그 환자의 능력이다. 서울 의대에 꼭 들어와 필자의 후배가 되고 싶다는 꿈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간 환자가 자신의 입시 공부는 잠시 미루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등록금의 일부는 마련했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도 응원하는 의미에서 장학금을 미리 후원한다는 생각으로 수술을 계획했다.


중등도 이상의 돌출입을 가졌던 환자는 이렇게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수술하고 나면, 긍정적인 사람이 더 빨리 회복되고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더 빨리 회복되니 더 긍정적이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긍정적인 사람은 빠진 붓기[표준어는 부기]에 행복해한다. 20%의 붓기가 남아있는데도 이미 빠진 80%의 붓기에 행복해한다. 아직 붓기가 남아 있다고 말해주면, 여기서 더 빠지냐며 좋아한다. 단지 심리적 요소뿐만 아니라, 행복 호르몬인 엔돌핀 등 여러 호르몬이 항염 작용이나 회복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회복이 더디든 빠르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걱정 없이 행복해하고 잘 웃는다.


반대로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회복이 느리게 느껴진다. 80%의 붓기가 빠졌더라도 남은 20%의 붓기에 집착한다. 언제 빠지냐고 걱정하고 언제 완전해지냐며 초조해한다. 잘 웃지 않는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욱 환자를 예민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잘 웃고 긍정적인 이 젊은 학원 강사는 역시나 회복이 빨랐다. 그의 소원 한 가지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화살처럼 지났다. 가끔씩 궁금했다. 자신의 수능 준비는 뒤로 미루고, 남의 수능을 도와주고 있는 이 특이한 환자는 돌출입수술 후 어떻게 지냈을까? 과연 서울 의대에 재도전을 했을까? 불쑥 연락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어느 초겨울, 병원에 택배가 한 박스 도착했다. 열어보니 최상급의 경북 상주(尚州)산 반건조 곶감이었다. 보자기를 풀자 손편지가 한통 보인다.


-안녕하세요, 한 원장님. 저는 작년 초 선생님께 수술을 받았던 ooo입니다.

(중략) 제 소원은 둘이었고, 그 중 한 가지는 선생님께서 들어주셨지요. 그 때 긴 편지를 봐주셔서 지금도 참 많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중략) 약소하지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아 다른 때보다 품질이 조금 아쉽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곶감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감사의 마음에 필자도 고마웠고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떠오르는 의문부호 하나와 느낌표 하나!

서울 의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내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나이가 되었구나!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곶감도 작황이 좋지 않으면 다른 때보다 품질이 아쉬울 수 있듯, 전국에서 가장 가기 어렵다는 서울 의대 진학도 수능 당일 컨디션이 안 좋으면 한 두 문제 더 실수해서 실패할 수도 있다.


편지 속 ‘오래오래 건강하세요‘가 칠순, 팔순 잔치에서 하는 ’만수무강하세요‘와 같은 인사말처럼 들리는 것은 어느새 중년의 뒤안길에 선 필자의 자격지심일 것이다. 가끔 40대의 환자들이 “돌출입수술을 하기에 너무 늙어서, 괜찮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면, 전혀 문제없다는 대답을 하면서 한편 부럽고, 지난 40대가 그리워진다. 한편, 필자가 돌출입수술을 해준 60대의 환자들도 적지 않다.


아직 인생의 항로를 완전히 결정하지 못한 분들, 그리고, 인생이 저물어간다고 느끼는 분들 모두에게, 진부하지만 1900년대 초 사무엘 울만이 쓴 ‘청춘’이라는 시를 소환한다. (필자주 ;영어 원문을 참조하여 기존 번역을 수정하였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그것은 장밋빛 볼, 붉은 입술, 유연한 몸이 아니라/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생기 있는 감정 상태이다/즉,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한다>


사실 우리에게 이 부분까지만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당신의 영혼이 냉소와 비관의 얼음으로 덮여 있다면 당신은 20세라도 늙었다/그러나 당신의 안테나가 낙관주의의 주파를 붙잡는 한/80세라도 청춘으로 죽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필자에게는 돌출입수술 그리고, 광대뼈, 사각턱수술과 같은 윤곽수술에 몰입하는 것이 청춘의 안테나이고 신선한 샘의 하나다. 수술하는 동안은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몰입감을 느낀다. 그 즐거운 수술이 끝나면 비로소 직업병인 목과 허리의 통증이 찾아온다. 건강 챙길 나이다. 환자가 편지에 써준 것처럼 ‘오래오래 건강’한 모습으로, 잘생긴 입매를 가지게 된 나의 환자가 또 하나의 꿈을 이루어 내기를 기다리려 한다. 꼭 필자의 대학 후배가 되지 않아도 좋고, 꿈이 바뀌어 학원 강사로 살아도 좋다. 즐거운 일에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퇴근길, 대치동 학원가 근처를 통과해야 했다. 차가 너무 막혔다. 백팩을 맨 학생들과 그들을 픽업하는 겹겹의 자동차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를 준비하는 안쓰러운 현장이다. 여름 무더위에도 꿈을 위해 장밋빛 청춘을 학원에서 보내는 많은 지친 몸과 마음들, 그리고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인 부모들에게도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사족 같지만, 외모 걱정은 나중에 해도 된다. 뇌를 업그레이드하는 수술은 없지만, 돌출입과 얼굴형은 개선이 가능하니까.


‘청년은 미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러시아의 극작가 고골의 말이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년간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