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6]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10회> : 키다리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



올해에 메이져 테니스 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한 오스트리아 국적의 테니스 선수인 도미니크 팀의 엉덩이를 주제로 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그런 애플힙은 아름답기도 할뿐더러, 하체단련을 위해 한계에 도전하는 처절한 노력을 보여주는 근육 덩어리로서, 그의 극기(克己)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사에 딸린 사진에서는 감추어지지 않는 그 선수의 엉덩이 곡선과 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출처 : 조선일보 기사 ; 도미니크 인스타그램 >


밑에 댓글도 다양하다. 만약 남자 기자가 여자 선수의 엉덩이 사진과 함께 비슷한 기사를 썼으면 성희롱이라 했을 것이라는 댓글도 있는 반면, 그건 아니다, 팀의 엉덩이 근육은 테니스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하다는 의견도 있다. 여하튼, 젠더 이슈는 참 예민한 문제다.


엉덩이가 애플힙이냐 아니냐는 뚜렷한 기준이 없지만, 키만큼 정확하게 측정 가능하고, 위장하기 어려운 신체조건도 없다. 솔로인 친구에게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치자. “한번 만나봐, 키도 크고 멋있어(혹은 예뻐)” 사람들은 이런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키가 크면 일단 반 정도 먹고 들어간다. 물론 아담한 키의 여성을 선호하는 남성도 있다.

애플힙은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키만큼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없다. 우유 많이 먹는다고 키크는 것도 아니고 대개 영양상태가 원인도 아니다. 결국 유전자다. 노력으로 더 커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키높이 깔창이나 굽 있는 신발, 혹은 위로 한껏 띄운 헤어스타일은 키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보여준다. 슬픈 이야기지만, 나이 들면서 키가 줄었다고 고백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동창 대여섯이 나란히 사진을 찍으면 한두 명은 몰래 까치발을 한다. 키가 168인 남성은 172 라며 어물쩍 넘어가기도 하고, 158인 여성도 160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거짓말은 귀엽다.

반면 키가 172인 여성은 168이라고 키를 줄여 말하곤 한다. 키가 평균보다 큰 사람들 이야기다. 모 의대 교수인 필자의 친구 하나는 키가 분명히 190이 넘어 보이는데, 188이라고 주장한다. 그 친구가 병원 복도에서 만난 동료 교수로부터 듣는 인사 중에 제일 싫어하는 인사가 ‘어이쿠 A교수, 키가 더 컸나봐’ 라는 인사라고 한다. 나이 50 넘어 어떻게 키가 더 크냐고 항변한다. 분명히 맞는 이야긴데, 나도 간만에 보면 그렇게 느끼는 걸 어쩌랴.


런던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한 캐더린 하킴이 쓴 <매력자본>이라는 책에 의하면, 모든 문화에서 큰 키는 (특히 남성에게) 긍정적인 특징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최고의 자리, 최고의 관리자, 경영자, 미국 대통령에 오른 사람들은 흔히 키가 크고, 키가 평균보다 작은 경우에는 그만큼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키가 큰 사람이 15-20%정도 소득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다.

키가 큰 아이들은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것처럼 취급받기 때문에 주위에서 더 지적인 방식으로 대하며, 빠르게 사회적인 능력과 자신감을 키워간다고 한다. 키가 크면 주목을 받고 주변에서 도움을 주기 쉬우며, 그를 리더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빠른 사회적, 심리학적 발달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키가 평균 이상으로 큰 여성은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를 만나기가 더 어렵고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낮다는 연구도 있다. 평균 신장의 여성은 1.7명을, 키가 큰 여성은 0.7명을 낳는다고 한다.

키는 아름다운 외모에 비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측정된다.

아름답다 아니다는 주관적일 수 있고 다르게 평가될 여지가 많지만, 크다, 안 크다는 숫자가 즉각적으로 말해준다.


* * *


얼마 전 온라인 의료상담에, 모태솔로인 자신이 키 커지는 수술과 돌출입, 무턱, 광대뼈, 사각턱수술 중에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 올라왔다. 이 질문에 답변을 달면서, 키와 돌출입(및 턱끝)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첫째, 돌출입 수술이 있듯, 키 커지는 수술도 있다.

키를 늘리는 수술이 존재한다. 일리자로프는 러시아의 외과의사로서, 원통형 외고정장치를 이용해서 하루에 1 mm 정도씩 뼈의 길이를 연장시키는 일리자로프 수술을 개발하였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다리 뼈를 연장함으로써 키를 키우는 수술이 일부 의료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S대 동문 출신 정형외과 전문의 네 명에게 이 수술에 대해 넌지시 물어봤으나 내용은 여기에 노코멘트한다.



둘째, 키와 돌출입은 둘 다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다.

눈이 정말 크고 예쁘다고 말할 때, 눈의 크기를 측정해서 평가하는 기준은 명백하지 않다.

그러나, 돌출입과 턱끝은 얼굴의 다른 부위 (눈, 코, 광대뼈, 사각턱)과 다르게 절대적인 기준선과 기준수치가 존재하고 그래서 돌출입의 정도, 턱끝의 길이와 위치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중의 길이, 입술의 두께도 기준 수치가 있다. 이런 면에서, 돌출입에 대한 평가와 키에 대한 평가는 객관성을 부여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몇 mm 정도 튀어나온 돌출입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마치 키를 자로 재서 즉각적으로 측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객관적이다. 돌출입수술의 목표도 이상적인 입매의 기준 수치를 기본으로 한다. 어느 지점의 인중, 입술, 턱끝의 위치와 길이가 아름다운지를 수치를 통해 객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환자의 취향과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다.



셋째, 키가 큰 돌출입보다는 키가 작은 아름다운 입매가 낫다.

물론 이것은, 얼굴뼈 수술이 직업인 필자의 주관적 견해이다.

만약 키를 키우는 수술과, 돌출입 수술이 둘 다 성공적일 수 있다면, 키가 작으면서 돌출입인 사람은 고민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한국 영화계에서 수많은 굵직한 작품의 주인공을 소화한 배우 이**의 경우도 큰 키는 아니다. 그의 카리스마는 큰 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의 얼굴과 눈빛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의 얼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입매다. 그의 입매는 특히 남자로서 이상적이고 턱끝이 잘 발달되어 있다. 그것만으로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같은 느낌도 주고, 느와르 영화의 비정한 보스 같은 느낌도 준다. 키다리가 아니라도, 아름다운 거인인 것이다.

멜로영화나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한국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던 배우 송**의 경우도 작고 아담한 키에 속한다. 그녀 역시 아주 이상적인 입매를 가지고 있다. 눈, 코와 피부가 예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입이 돌출입인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이미 그녀가 아니다).


넷째, 돌출입수술과 턱끝수술을 할 때, 키를 반영해야 한다.

20년간 돌출입수술에 집중해오면서 심미적인 관점에서 키와 돌출입수술에 대해 경험적으로 체득한 것 중 하나는, 키에 따라서 앞턱끝의 길이를 몇 밀리 정도 다르게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키 170인 남자의 앞턱끝과 키 185인 남자의 앞턱끝의 길이감은 조금 달라야 한다. 또한, 남성과 여성에서 아름다운 턱끝 위치와 길이도 차이를 보인다. 다만, 입매와 턱끝길이, 위치를 정할 때, 환자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다섯째, 키와 턱끝도 묘한 공통점이 있다.

어려서부터 키가 크면 나이가 많은 것으로 인식되는 것과 비슷하게, 턱끝의 세로길이가 길고 강할수록 역시 성숙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신생아는 예외없이 작고 짧은 턱을 가지고 태어난다. 턱끝 뼈는 얼굴뼈에서 비교적 늦게까지 성장을 하게 되며, 턱끝이 잘 발달되었다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남성에서 안와상 융기나 강한 턱뼈는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턱끝이 강한 것은 약간 남성적인 인상을 준다.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이 유독 높다는 통계가 나오는 남성 정치인은, 필자의 눈으로 볼 때 거의 예외없이 잘생긴 입매와 강한 턱끝을 가지고 있다. 피플지가 선정한 섹시한 남자로 등극한 두 남자, 조지 클루니와 그리고 BTS의 멤버 역시 각각 서구적이고 동양적인 시각에서 이상적인 입매와 훌륭한 턱끝이다.

아이돌 그룹의 리더, 즉 맏언니, 맏형 역할을 하는 멤버는 거의 예외 없이 키가 크거나, 턱끝이 잘 발달되어 있다. 턱끝이 강하다면 언니나 형같은 느낌을, 턱끝이 아담하고 귀엽다면 막내같은 느낌을 준다.


여섯째, 키든 돌출입이든 밸런스가 중요하다.

키가 큰데 너무 마른 체형은 오히려 볼품이 없어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입매에 있어서도, 돌출입 개선의 정도, 인중의 길이, 입술의 볼륨감, 턱끝의 길이 등을 전체적인 얼굴과 밸런스가 맞도록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 *


우리나라에서 ‘키다리 아저씨’는 익명의 후원자,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사람을 뜻하는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여류소설가 진 웹스터가 1912년에 발표한 라는 원제의 성장소설인 <키다리 아저씨>는 지루샤 애벗이라는 고아소녀가, 한 익명의 후원자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사랑하는 스토리이다. 주인공은 후원자의 기다란 그림자만 보고,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여성에게 구애하려는 남성은 누구나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 혹은 키다리 오빠(혹은 친구 혹은 동생)가 되고 싶어 한다. 남성에게 구애하는 여성 역시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능력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키는 노력으로 바꿀 수 없거나 바꾸기가 어렵다.


다행스러운 것은, 키가 크고 모델 포스를 가진 ‘신계’의 배우들이 많았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옆집에 꽤 괜찮은 형이나 건넌집에 꽤 귀여운 여동생 같은 친근한 외모의 ‘인간계’ 배우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배우나 연예인처럼 생겨야한다는 취지는 아니고, 외모로 볼 때 저 정도면 훌륭하다라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통념이 적잖이 친근한 쪽으로 영점 조정되었다는 뜻이다.


키도 그렇고 입매도 ‘인간계’가 득세하고 있다.

키 172의 남자배우, 키 158의 여자배우가 적지 않고, 입매도 과거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서구적인 입매보다, 약간 더 동양적이고 미세한 돌출감이 있는 입매가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는 더 트렌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마침 크리스마스이브다. 산타클로스는 키다리 아저씨보다는 배불뚝이 아저씨로 묘사되곤 한다. 배 나온 아저씨지만 입매는 절세의 미남일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산타의 입 주위에는 항상 수염이 덥수룩해서 돌출입인지 아닌지는 잘 알 수가 없는데다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마스크도 쓰게 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돌출입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었던 필자는, 2020년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또 하나의 돌출입수술을 하러 수술장에 들어간다. 남자 환자다. 그에게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돌출입과 작별하는 날이 될 것이고, 필자는 평생 잊지 못할 그의 산타가 될 것이다. 산타클로스가 그려진 수술 모자를 쓰고, 조용한 캐롤을 틀어야겠다.

코로나로 지친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년간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 경력



출처 :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