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0]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11회> : 실기 시험


실기 시험



요즘 대한민국의 의대 입시에서는 MMI(Multiple Mini Interview;다중 미니 면접)라는 인성면접 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지원자들의 인성을 더욱 철저히 검증하고자 하는 시험 방식으로 2001년 캐나다 맥마스터 의대에서 최초 도입한 후 미국의 스탠퍼드 의대에서 시행하는 등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MMI는 ‘의사가 되려는 이유’보다는 지원자의 인성과 소통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는 2012학년도부터 의대 입시에 이 방식을 도입하면서 ‘의사소통 능력과 라포(rapport ; 의사와 환자의 심리적 신뢰관계) 형성 능력이 있는 학생을 뽑고,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걸러내기 위한 시도’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수능 자연계 원점수 만점자가 서울 의대에 합격하지 못한 것도 이 MMI 방식의 면접이 원인이었다는 후문이다.

전국 의대입시는 각 고교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한데, 학생부교과나 자기소개서 등의 제출서류를 반영하는 1단계 전형의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아 사실상 2단계의 면접 결과가 당락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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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학생을 뽑을 때 소통능력과 인성을 테스트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공부만 잘하는 의사, IQ만 높은 의사가 아니라, EQ도 높고, 팀워크와 소통이 원활한 사람이 의사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의대 입시에서 미술 실기시험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의대를 졸업 후 성형외과를 하려면 미술적 능력, 미적 감각과 손재주, 손의 조절력, 공간지각력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치자.

실기시험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 중 몇 가지라고 가정하자.



1.(그리기능력) 정물 소묘

2.(그리기능력2) 주어진 얼굴사진을 보고 스케치하기

3.(공예능력) 주어진 지점토를 이용해서 모형 하악골의 모양을 빚기

4.(소근육조절 및 감각)주어진 그림자 모양과 최대한 비슷하게 백지를 가위로 오려 내기

5.(양손사용능력) 양손에 연필을 쥐고 왼손으로는 삼각형, 오른손으로는 사각형 그리기

5.(양손사용능력2) 양손 각각 젓가락질해서 땅콩 잡기

6.(공간지각력) 비대칭이 있는 얼굴에서 양쪽 크기, 높이 등의 차이를 mm 수로 예측하기

7.(공예능력2) 주어진 비누와 조각칼을 이용해 자신의 엄지손가락 모양을 조각하기

8.(그리기능력3) 주어진 그림을 모사하여 채색하기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중앙일보DB >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니다. 결국 성형수술이란, 아름다운 라인과 모양이 어떤 것인지 지각하는 눈과, 그 아름다움을 손동작을 통해 구현해낼 수 있는 손, 즉 자르고 만들고 다듬고 꿰매는 솜씨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쌍꺼풀 수술이든 뼈 수술이든 수술 시 실제로 의료용 펜으로 선을 긋고 계획하는 ‘디자인’을 하게 된다. 또한, 성형 수술이라는 것은 종이 위에 하는 2-D 작업이 아니라, 해부학적인 3차원적 구조에 하는 작업으로서 공간 지각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미술, 조형, 공간 지각력 등의 능력을 엄격하게 절대 평가하는 시험이 있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당시 필자의 S대 의대 동기 이백 명 중에 최종 합격자는 소수였을 것이다. 주위에 보면 ‘난 그림은 잘 못 그려’ 라고 쉽게 자인하는 사람들이 꽤 많고, 악필도 적지 않다. 사실, 공부라면 각 고등학교에서 최상위권이었을 동기들이 그림까지 뛰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동기 이백 명 중 단 네 명 빼고는 성형외과 아닌 다른 과 의사가 되었고, 그들에게 미술적인 능력은 아픈 환자 치료하는데 거의 아무 소용이 없으니 다행이다.

만약 S대 의대 입시에 그런 미술능력 시험이 있었다면 필자는 합격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자랑질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재수할 필요도 없이 첫 해에 합격했을 것이다.


필자의 학창시절에 가장 많이 받은 상은 우등상이지만, 두 번째가 미술관련 상이다. 지금도 학창시절 받은 상장을 빠짐없이 모두 가지고 있는데, 세어보니 교내외의 미술, 서예(붓글씨), 사진 관련 상이 삼십 개 정도 된다. 초등학교 때 받은 상은 차치하고, 중학교 때인 1980년 한국-일본 아동화 교환전시회 금상(일본 보화청년회의소 이사장/한국 서울청년회의소 회장), 1981년 문화공보부 후원 제 16회 전국청소년 미술대회 우수상(한국 청소년미술협회 이사장), 1982년 중부교육구청 미술대회 판화 특선(예원학교장), 1982년 제 18회 국제전 선발 및 전국청소년 미술대회 최고상(한국 청소년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수상했었다. 그 이후로는 붓 대신 연필을 들고 공부 좀 했다. 그림 그리는 것보다 공부가 더 재미있었다면, 물론 거짓말이다.


의대 입시에 미술 시험을 치르는 것은 넌센스겠지만, 적어도 성형외과 전공의(레지던트)를 뽑을 때는 이런 미술능력 시험이 좀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소통능력이 부족한 학생을 MMI로 걸러내 의대생으로 뽑아주지 않듯이, 조형, 조각, 미술, 미학적 능력이 없는 까막눈이나 흙손을 성형외과 레지던트로 안 뽑는 게 이로울 수도 있다. 수술하는 의사는 결국 손이 좋아야 한다. (의료계 속어로, 수술 못하는 손을 쌍디귿으로 시작하는 *손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흙손으로 대신한다.)


요즈음은 성형외과 전공의 선발 면접 시에 (모형)피부 봉합, 봉합사 수기 매듭(hand-tie)과 같은 간단한 실기 시험을 보는 곳도 있다는데, 아마 당락을 결정할 정도의 비중은 아닐 것이다.

필자가 성형외과 레지던트를 하던 시절에는 학부 및 인턴 성적, 필기시험, 면접은 있었지만, 실기 시험은 없었다. 그러니까, 성형외과 레지던트 업무를 해나가면서 비로소 그의 손이 어떤지 미적 감각이 어떤지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도제 시스템인 (성형외과 등의) 외과의사 교육에서, 어떤 전공의가 수술하는 장면은 수술방 안에서 생중계되는 것과 다름없다. 교수가 보고, 선후배 레지던트가 들여다보고, 간호사가 보고, 마취과 의사, 지나가던 타과 의사도 본다. 병원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고 곧 평판이 된다. 숨을 수도 숨길 수도 없는 구조다. 메인 수술은 교수가 이미 다 끝낸 직후에 그까짓 입안 절개하나 봉합하는데, 조수(assistant)로 열심히 돕는 1, 2년차 후배 레지던트들에게 소리 지르고 격노 하면서 정작 봉합은 흙손이던 당시 치프(chief; 4년차) 레지던트에 대한 평판은 그의 일생동안 유령처럼 그를 따라 다닌다.


사실, 외과의(surgeon)으로서 흙손인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해도 활로는 있다. 가령, 기초의학적인 연구에 매진하거나, 번뜩이는 머리로 참신한 논문을 쓰거나, 바이오 벤처 개발에 재능을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 작업에 가까운 수술을 주로 하는 페이닥터(봉급의사)가 될 수도 있다. 흙손이 대표원장이 되어 주로 홍보와 경영, 상담만 하고, 수술은 페이닥터를 고용해서 하도록 하는 게 차라리 차악인 경우도 있다. 최악은, 흙손으로 (주로 미용) 수술을 열심히 해서 환자에게 악결과를 만드는 경우, 그리고 입으로만 수술하는 경우 즉 수술은 많이 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데 이론과 철학만 청산유수인 경우다.


금손을 자처해도 문제다. 팩트와 평판은 그렇지 않은데 스스로 금손이라고 믿으면 사고치기 쉽다. 환자에게 악결과를 만들어도,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고 환자가 이상하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복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가 수술 후 열나고 아프고 힘들다고 호소하는데, 금손인 자신의 수술이 그럴 리 없다고 믿다가 정말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편, 레지던트라는 것은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기간이다. 흙손이었던 1년차도 4년차쯤 되었을 때는 수련받은 만큼 성장해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성형외과는 타고난 예술적인 달란트를 넘어서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예술적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 일단,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나서도, 의대 성적, 인턴 시험, 전공의 선발시험, 전문의 시험, 석, 박사 논문까지 첩첩 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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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면서 프로 혹은 아마추어 화가, 작가를 겸업하는 분들도 계실진대, 중학교 때 받은 알량한 미술 상 몇 개가 필자의 수술솜씨를 담보해주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래도 죽어라 공부하면 S대 의대를 들어갈 수 있는 머리에, 남 못지않게 그려내고 만들어내는 손재주까지 덤으로 주셨으니, 환자들에게 해악은 끼치지 않고 살아 왔다. 그걸 20년째 하다가 보니, 적어도 얼굴뼈와 돌출입에 관한 한 최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눈으로 그리고 손으로 빚어내는 게 큰 즐거움이 되었다. 언젠가는 다시 이젤을 펴고 붓을 잡는 즐거움도 누려보고 싶다.


의사의 덕목 중에 ‘최소한 환자에게 해는 끼치지 말아라(Do no harm)’라는 것이 있다(며칠 전 TV프로 ‘유퀴즈’에서, 6개 의대 동시 합격한 경력을 가진, 아끼는 S대 의대 후배가 이걸 언급했다). 항암제를 쓰다보면 환자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해악도 있지만, 암이라는 질병을 이겨내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이 약을 쓰는 것이 의사로서의 판단이고 사명이다. 그런데, 성형수술은 어차피 질병이 없는 건강하고 멀쩡한 환자에게 시행된다. 안전은 기본이고, 결과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이 곧 해악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아름다움을 알고, 보고, 느끼고,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윤광준은 <심미안 수업> 이라는 책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을 사는데 필요한 물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어차피 물건과 함께 뒹굴고 살아야 한다면 좋고 아름다운 물건으로 채워야 한다’ 면서, ‘일상이 아름다우면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같은 논리로, 산다는 것은 매일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어차피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함께 뒹굴고 살아야 한다면, 아름다운 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이든, 체형이든, 뇌든, 마음이든, 아름다움은 우리를 기쁘고 풍요롭게 한다. 내 주변을 아름다운 디자인의 물건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아름다운 얼굴형과 돌출입이 아닌 아름다운 입매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성형외과학의 비약적 발전이 가져온 크나큰 선물이다. 물론, 합병증의 가능성에 신중해야 한다.


사랑에 목말라하거나, 평생의 반려자가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마이클 라이언의 저서,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에 의하면, 모든 동물 및 인간의 뇌가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는, 지금 앞에 나타난 이성으로부터 온 감각 자극을 통합하여, 아름다운 배우자에 대한 우리의 성적 미학에 얼마나 부합하는 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스캔은 그(녀)를 보는 순간, 순식간에, 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요즈음은 마스크를 벗기 전과 후로 2단계 스캔을 하게 되었다.

눈만 봐도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그(녀)가 마스크를 벗는다.

만약 돌출입이라면 어떨까? 환하게 웃는데 시뻘건 잇몸이 드러나 보인다면?

혹시 금세 사랑이 식었어도 자책하지 마시길.


모 샴푸광고 카피의 ‘키스하고 싶은 머릿결’처럼, 키스하고 싶은 입매도 존재한다.

아름다움의 힘에 굴복하는 우리의 뇌는 무죄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년간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 경력



출처 :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