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5]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73회> : 딸은 돌출입수술 못하게 하고, 자신은 수술하러 온 비정한 엄마


<딸은 돌출입수술 못하게 하고, 자신은 수술하러 온 비정한 엄마>



살다보면 별 희안한 이유로 필자와 ‘만나게’ 되는 환자들이 있다.

얼마전 필자에게 돌출입 상담을 받으러 온 50세의 여자환자는, 문인 아니면 화가가 쓸만한 벙거지 모자를 쓰고 오셨고, 입은 전형적인 돌출입이었다.

그런데, 우리 병원을 오게 된 이야기를 하는데 기가 막혔다. 2년 전 자기 딸이 내게 돌출입 상담을 받으러 왔었다고 한다. 앞뒤가 안맞게 느껴질수도 있어서, 번호를 매겨 적어본다.

1. 2년전쯤 딸이 서울제일 성형외과를 방문. 돌출입수술과 광대뼈수술 대상이 맞고, 좋은 효과를 볼 수 있겠다고 듣고 감

2. 딸이 어머니에게 돌출입수술을 하겠다고 함

3. 어머니는 절대 안된다고 결사반대

4. 딸은 어머니가 설득이 되지 않자, 포기하고 치아교정을 시작

5. 딸의 발치교정이 2년 정도가 되어 거의다 끝남

6. 딸의 치아는 가지런해졌으나, 돌출입의 개선이 미미하고 긴 무턱이 그대로 남음

7. 이것을 본 어머니가 자신의 돌출입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

8. 딸이 어머니에게 서울제일성형외과에 가보라고 함

9. 어머니가 필자에게 진료를 받으러 와 돌출입수술을 할 예정

이렇게 해서 필자를 찾아온 어머님이 딸 이야기를 하였고, 필자는 지난 차트에서 딸의 얼굴을 찾아보았다. 휴우...한숨이 절로 나왔다. 돌출입수술을 했다면 ‘미녀’ 의 반열에 올라갔을만한 좋은 조건(사실은 심한 돌출입일수록 더 좋은 조건일수도 있다)과 예쁜 눈을 가진 꽃다운 나이의 환자가, 2년 넘게 교정하느라 비용과 시간, 치아 4개를 모두 잃고, 돌출입과 무턱은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놓고도 착하게, 엄마에게는 서울제일 성형외과를 가보라고 하다니...효녀 심청이 따로 없군.

필자는 50세의 어머니에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웃으며...

-아니, 지금 딸은 돌출입수술 안시켜주고 본인은 수술하시겠다는 거예요? 따님이 정말 꽃다운 20대인데, 아름답게 지낼 수 있는 그 소중한 청춘을....

말하다 보니 정말 속으로 울컥했다. 순간, 놓쳐버린 내 청춘의 시간도 서글펐나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세상에 이런 비정한 엄마가 다 있냐고 일갈했다.

그리곤 예고없이 어머니에게 선언했다.

-어머님, 저 오늘 홈페이지에 글 하나 쓸겁니다. 제목이 딱 떠올랐어요.

‘딸은 돌출입수술 못하게 하고 자신은 돌출입수술 받겠다는 비정한 엄마’

어머님이, “원장님 글 하나 더 읽어보게 생겼네요”..하며 웃는다.

어머니는 국문학 전공자였다. 필자의 글을 빠짐없이 재미있게 읽으셨다고 한다.

물론, 어머니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 때는 양악수술인줄 알고, 뉴스에 양악수술하다 사망한 기사 보고, 제가 절대 안된다고 했죠. 그랬더니, 딸아이가 스스로 알아보더니 발치교정을 하더라구요...근데 지금 이쁘게 안돼서...이제 돌출입수술...이제는....못하나요? 우리 딸?

어머니의 말 끝이 흔들리더니, 이내 눈물이 흘렀다. 엄마에게 둘도 없는, 눈물처럼 맑은 착하디 착한 딸임이 분명했다.

휴지 몇장을 건네 드리고나서, 이미 실패한 발치교정도 몇가지 방법으로 돌출입수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드렸다. 자기가 무지해서 그랬다고, 딸 고생시켰다고...자책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일단 저부터 할게요. 그리고, 딸 데려올게요. 원장님이 알아서 좀 해주세요.

필자의 20년 가까운 돌출입, 윤곽수술 히스토리에, 딸이 먼저 돌출입수술을 하고 어머니가 한 적도 있고, 두 아들을 하루에 돌출입수술을 시키고 어머니가 나중에 돌출입수술 한적도 있으며, 쌍둥이 자매를 같은 날 돌출입 수술한 일, 형제, 자매를 같은 날 돌출입 수술한 일, 사촌지간 일가친척을 서너명 연달아 수술한 일 등이 많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모르긴 몰라도, 딸의 돌출입수술을 반대한 엄마는 꽤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엄마가 정작 자신은 돌출입수술을 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엄마의 반대로 돌출입수술을 못해 ‘고생’ 중인 그 딸의 권유로...

드라마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나온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라는 말은 국민격언이 되었다.

어머님의 돌출입수술은 어렵지 않겠지만,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던 딸의 돌출입수술 여정은 조금 더 길고 고달플지도 모른다. 그래도 옳은 길을 찾아냈다면 뚜벅뚜벅 즐거운 마음으로 가야한다. 길게보면 어렵게 걸어서 도착한 끝에 행복이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이미 그 여정 속에 있었음을 우린 늘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