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10]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74회> : 새터민(탈북자) 돌출입 수술한 이야기


새터민(탈북자) 돌출입 수술한 이야기



중국에서 태어나 현재는 한국에 사시는 동포분들의 돌출입수술을 한 경험이 적지 않다. 한국어 뿐만 아니라 중국어에 능통한 환자분들 중에는, 중국인들의 한국관광 가이드로 잘 나가시는 분도 있었고, 중국에서 의사 직업으로 사시다가 한국에서 연구원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한국으로 시집온 분도 계셨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이 분들의 한국어 억양과 발음은 표준어와 조금 달라서, 몇마디 나누다가 보면 필자는 금세 알아차린다. 그런데 본인들은 고향이 타지인 것 때문에 혹여라도 불이익이 있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밝히기를 꺼려하기도 한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실제로 필자는 똑같이 대하고 똑같이 최선을 다해 수술하고 있다.

이번에도 조금 다른 억양 때문에, 조심스럽게 고향을 여쭈어보았다.

-북한에서 왔습니다.

돌출입에 대한 상담과 진료가 끝나자, 환자분은 뒤적뒤적 서류를 하나 꺼내기 시작한다.

-원장님, 제가 이런 말씀드리기 부끄럽고, 어떻게 생각하실지 좀 두려운데...부탁한번 드려보려고 합니다.

등기권리증, 즉 땅문서였다. 한국에 정착한지 10년 되었는데,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몇 년전 경기도 모처의 땅을 샀다고 한다. 대단하다.

땅문서와 함께 내민 것은, 미리 준비해온 각서였다.

각서에는, 수술 후에 할부로 수술비를 갚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땅을 넘겨주겠다는 내용이 직접 손글씨로 씌여있었다. 믿지 못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주민등록등본과 학생증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사진이 분명한 학생증은 소위 ‘명문대’ 졸업반이었다.

옛날 옛적에야, 정말 땅문서를 맡기고 노름판에서 노름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그 땅문서를 실제 손 안에 가진 사람이 땅 주인이 되는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금융기관도 아닌 병원에서, 설령 그 등기권리증을 가지고 있는다 하더라도 법적인 실효성도 없거니와, 그 땅을 ‘담보’로 할 수 있는 법적권한도 없다. 또한, 사실 땅은 법적 주인인 환자가 언제든 팔수도 있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수술비용을 떼이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나 법적인 공증이 아니고, 바로 수술, 돌출입수술이다.

수술비용은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수술하기로 한 날이 왔다.

-원장님, 이렇게 수술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이 살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흐뭇했다.

수술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나니 환자가 물어왔다.

-저어...내일 몇시쯤 퇴원할 수 있나요?

-아, 컨디션 좋으면 오전에 퇴원하셔도 되고, 더 있고 싶으시면 더 푹 쉬다가 오후에 가셔도 됩니다.

-아, 제가 내일 두시에 수업이 있어서요...

-네에? 내일 수업들으러 가신다구요?...하루 이틀은 쉬시죠. 결석처리 안되도록 소견서 써 드릴게요.

환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수업을 한 번 빠지면, 나중에 시험볼때 모르는 게 생겨서...안됩니다. 수업은 한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기어가다시피 간 적도 있어요.

-대단하시네요. 정말 열심이시군요...혹시 과에서 공부도 잘 하시나요?

-그냥 우등 정도합니다 ^^ 장학금이 필요해서요.

아...

그냥 대단하다~ 하고 말기에는, 뭔가 울림이 있는 삶이다. 치열하고 뜨겁다.

대한민국에서 살기위해 죽음과 맞닥뜨린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남보다 몇 배는 모질고 강하게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돌출입이 주는 강하고 사나워보이는 인상이 더 과장되어 보이는 순간도 많았으리라. 이제, 대학 졸업반이 된 그녀에게 필자가 해준 돌출입 수술이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서 큰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필자도 느끼는 바가 많았으니, 선물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뜨겁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다.

일찍이 시인 안도현은 이렇게 썼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