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4]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69회>: 짜증나요

<짜증나요>


차가 막혔다.

환자가 감기에 걸려 수술이 전격취소된 오늘, 5분쯤 지각해서 병원에 들어오는데 낯익은 얼굴이 대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최근에 돌출입수술 동영상을 촬영한 주인공 김정재(가명)씨의 쌍둥이 형제같은 남자였다.

알고보니, 김정재씨의 친동생이었다. 쌍둥이가 아니고 1년 터울이었다.

키는 좀 작았다. 5 밀리미터 작았다. 김정재씨가 186 cm이었으니, 동생은 185.5cm!

참, 복받은 체형이다.

김정재씨가 우리 치과에서 교정치료를 받으러 오는 날, 동생도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다.

역시 돌출입 상담이었다.

이런 상담은 즐겁다.

상담하는 시간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항상 ‘신뢰’의 문제이다.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사실 의사들의 책임이다. 어디선가 성형수술로 망친 얼굴을 보고, 어디선가 성형수술을 하다가 사망한 환자의 뉴스를 접하고 온 환자들은, 의사를 무한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의사를 무한의심한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에게 fact 를 설명하는 상담시간 동안 환자는 방어적이기 마련이다. 이 병원이 나에게 불필요한 돌출입수술을 권하는 것은 아닌지, 돌출입수술을 해서 합죽이가 되거나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지 계속해서 의심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김정재씨처럼, 눈에 보이는 돌출입수술의 드라마틱한 결과를 이미 옆에서 목도한 친동생과의 상담-그것도 필자의 작품인 김정재씨가 동석한 자리에서-은 즐겁고 유쾌할 수밖에 없다. 환자가 의사를 100%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생은 형보다 입이 덜 나와 있었지만 돌출입수술 대상은 확실해보였다.

동생은 형동생이 돌출입수술을 결심한 이유가 재미있다.

형의 말.

-얘는 나처럼 많이 나오진 않았어요. 안해도 되는데..사실..

동생의 말.

-저는 사실 돌출입수술 생각도 안했어요. 아..근데 형이 이거 수술하고...느~무(경상도 사투리를 상상하시라) 잘나가는거예요. 뭐랄까, 느~무 바빠요. 장난 아니예요. 자신감이 뭐....

필자의 말.

-하하하. 혹시...형이 수술하기 전에는 누가 더 잘 나갔나요?

동생의 말

-제가 더 잘나갔죠. 아....짜증나요!!!!!!!!!

결국, 짜증나서 수술하기로 한거다. ㅋㅋ

연년생 형제면 어렸을때부터 비교를 많이 당하면서 커왔을 것이다.

게다가 키도 186, 185로 크니 어디가면 눈에 띄기도 했을 것이다.

형이 돌출입수술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입이 덜 나온 동생이 형보다 더 인물이 좋다는 평을 들었을 것이고, 더 인기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형이 필자를 만나 돌출입수술을 한 이후로, 동생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친척들이 모이면 인물이 훤하다는 칭찬이 형에게로 가버리고,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 가장 예쁜 여자아이의 전번을 형이 따고 있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자신감이 충만해서 여자들에게 ‘나쁜 남자’가 되면, ‘나 싫으면 가라’고 해도 여자는 가지 않는다. 밀당의 법칙이다.

동생의 짜증나요라는 말 한마디에, 김정재씨와 필자는 속된말로 빵 터졌다.

동생도 웃었다.

진료실에서 필자를 포함한 세 남자의 웃음은 각각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또 한명의 ‘가족 돌출입수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