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10]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67회>: 세계 건강 전문가로 선정되셨다는 편지

<세계 건강 전문가로 선정되셨다는 편지>

야생에서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런데 성형외과 의사로서는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까?

한국이 인구 대비 성형수술 비율이 세계 1위라고 한다. 그것이 꼭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뻐지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소망이고, 그것을 과하지 않게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만 있다면 의느님 소리를 들을만 하다. 역설적으로 성형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성형외과의 의술 수준이 높은 나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과도하고 무분별한 성형, 성형괴물을 만드는 성형,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 성형은 그 자체로 ‘악’이다.

성형수술을 원하는 사람(편의상 환자라고 하자)도 많지만 성형외과 의사의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성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교수로 있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개원하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타과 전문의(예를 들어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일반외과 등등) 혹은 아예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GP;general physician)가 ‘진료과목 성형외과’로 개원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 두 부류는, 원가 이하의 의료비 수준을 고집하는 의료보험 정책 때문에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타과전문의나 일반의가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현행 의료법상 불법도 아니니, 환자로서는 더 혼란스럽다.

환자들이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릴만하다. 경쟁이 붙은 병원마다 ‘환자 모시기’에 나서 달콤하고 임팩트있는 홍보를 하니, 환자 입장에서는 결정 장애를 겪을만 하다.

병원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면, 다 잘나신 분들이고 특히 수술을 최고로 잘한다고 써있다.

학력, 경력, 연수 경력은 기본이고, 특허출원중인 수술기법 한두개는 덤이다.

**일보에서 만든 대한민국 소비자 만족 대상을 수상한 병원도 있고,

남들은 그 수술을 하는데 도통 쓰지않는 레이저나 내시경을 써서 무통, 무혈로 수술한다고 하는 병원도 있다.

지금은 다 알려진 사실이 되어 폐지되었지만 방송에서 의사를 모셔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거액의 출연료를 의사가 방송팀에 ‘내고’ 나가는 성형 변신 프로그램으로 아직 홍보하는 병원도 있다.

수술내용은 결국 똑같거나 획기적이지 않은데도 각인효과를 위해, 퀵 *** 수술이니, 원데이 *** 수술이니, 볼륨 ***수술이니, 긴곡선 *** 수술이니, 자연** 수술이니 하며, 수술명칭 차별화에도 발벗고 나선다.

(필자는 아무 이름도 없는 ‘그냥’ 돌출입수술을 한다. 정성껏 아름답게 한다. 제목이 화려한 시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다른 병원들의 홍보 기법 중에서도 필자의 의표를 찌른 것이 있었다.

그 병원 원장이 영국인가에 본부를 둔 세계인명대사전에 ***수술 분야의 전문가로 등재되었다는 내용이다. 세계인명대사전에 등재된 *** 수술 전문가라...얼마나 웹상에서 많이 홍보를 했으면, 내 눈에도 들어왔으랴. 세계인명대사전 본부 측에서 내게 왔던 편지가 어렴풋이 기억나 쓴웃음을 지었었다.

* * *

오늘 병원에 나와보니 전에 몇 번 받아본 듯한 영문편지가 와 있었다.

영국, 캠브리지에 본부를 둔 국제 기구로부터 온 편지였다.

내용은 Dr. Sang Baek Han 이 이번에 기구에서 선정한 2017년 국제 건강(의료/의학 분야) 전문가로 선정되셨으니 축하한다. 그 증명서, 명패 등을 보내드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국제 건강 전문가로 선정되기 위해 지원을 한 적이 없다.

필자가 학회지 등에서 나의 병원이름을 공식적으로 Seoulcheil 로 쓰는데, 영문편지의 주소에는 Seoul Jeil 로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한국에 있는 알바생이 성형외과 전문의나 의사협회 주소록을 입수해서 맘대로 번역 작업을 한 다음 영국으로 보낸 것 같다.

경위야 어쨌건, 선정이 되었다는데 증명서를 전달 받아서 원장 경력에 한 줄 더 쓸 수도 있는 좋은 일 아니냐고 되물으실수도 있겠다.

하지만, 두장의 편지 중 그 다음장에는, 증명서만 받을건지, 메달도 받을 건지, 명패도 받을 건지를 패키지로 하여 금액이 정해져 있다. 가장 비싼 풀패키지가 735 달러이다. (예전에는 500달러였는데 많이 올랐군..)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낯이 뜨거워서다.

내가 적정한 심사를 거친 것도 아니고, 아마도 랜덤으로 성형외과 전문의 혹은 다른 개원의들에게 이런 편지를 발송했을 것이다. 75만원을 들여 갑툭튀 영국 발 2017년의 세계를 이끄는 건강분야 전문가임을 증명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 일인가? 설령 그렇게 했다고 한들, 내가 영국에서 선정한 세계 건강 전문가라고 자랑스럽게 홍보할 수 있는 것인가?

저런 증명서를 ‘구매’해놓고 홍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아마 이 편지가 이번 여름에 일괄발송 되었을테고, 내용을 보면 9월 22일까지 늦지 않게 답장달라고 하니, 올 겨울쯤이면 모 병원 원장이 영국에서 선정한 세계 건강 전문가로 선정되었다는 거룩한 홍보를 여러분들이 보실 가능성도 있겠다. 물론 나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한국 건강 전문의'로 만족하련다.

필자가 목(경추) 안아프고 건강해야 여러분들의 돌출입을 예쁘게 만들어드릴 수 있다. 필자의 마음이 건강해야,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환자에게 꼭 필요한 수술만 아름답게 해드릴 수 있다. 돌출입을 가지신 분들도 아무쪼록 필자를 만나기 전이나, 수술을 받는 중이나, 수술 후에도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

일면식도 없는 영국 모 기구에 735달러를 보내서 받는 증명서로 돌출입수술의 대가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인가?

필자는 안전하고 아름다운 결과로 직접 보여드리고 싶다.

Dr. Han은 영국에서 선정한 세계 건강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안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