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7]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62회>: 돌출입 환자와 그 남편 눈에 눈물 맺힌 사연

돌출입수술 들어갈 환자와 그 남편 눈에 눈물 맺힌 사연


지난 주에 처음으로 진료와 상담을 받으러 온 여성분이 오늘 돌출입수술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돌출입수술과 광대뼈수술을 했다.

여성분은 아이의 엄마이자, 40대의 주부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다.

지난 주에도 남편과 아내는 나란히 진료실에 들어왔었다.

환자의 돌출입은 심각한 정도였다. 윗니가 너무 나오고 뻐드러져, 입을 닫을 수가 없었고, 아래쪽 앞니들은 윗니와 아예 닿지 않았다.

그냥 입 모양새만 봐도 이 분이 40년 넘게 외모 때문에 겪어왔을 시련이 전해져왔다.

광대뼈도 보통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입이 극도로 나와 있는 환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 분도 광대뼈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두 사람은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필자로부터 들으면서 무슨 금맥이라도 찾은냥 들떠 있었다.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저는 정말 제 튀어나온 입 때문에...다음 생애에는 이렇게 태어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남편이 거들었다.

-네, 집사람이 항상 그래요. 다시 태어나야 고쳐질거라고. 그런데 원장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생애에서도 고칠 수 있다는게, 이런 수술이 있다는게 잘 실감이 안나요.


당시에도 내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이었겠지만 마음으로 아내를 맞아 사랑해주는 남편.

튀어나온 자신의 입이 너무 싫지만 이 생애에서는 포기하고 다음 생애를 기약한다는 아내.

남편은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필자를 찾아냈고 두 사람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오늘 수술 들어가기 전 다시 부부와 마주 앉았다.

수술계획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필자가 말문을 열었다.

-지난번에, 다음 생애에서나 예쁜 입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하셨었죠. 오늘 좋은 날이네요. 제가 꼭 남은 생애를 아름답게 사시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왜 그랬는지 이 말을 하는데 뭔가 내 마음속이 꿈틀거렸다. 환자가 이제껏 품어왔던 아픔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만큼을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이 그것이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환자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남편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수술동의서를 받기 시작하는데 필자의 목이 메어와서 잠시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얼른 동의서의 14번 문항부터 읽었다. ‘수술 후 인상은 몰라보게 달라져서 주민등록증 사진을 바꿔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마 오늘부로 새장가가는 느낌이실 겁니다. 하하

실없는 농담을 했더니 분위기가 좀 나아졌다.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데, 남편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수술장 앞에 서있었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졌다.

-수술이 너무 예쁘게 잘 되었습니다.

남편은 내 어깨를 잡으며 주물러주는 동작을 했다. 난 흠칫 놀랐지만 이내 남편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원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고맙습니다. 아내의 소원이었는데...

남편의 눈이 다시 그렁그렁했다.


착한 남편...그리고 착한 아내.

아내는 이제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 자격이 있고, 남편은 그런 여자와 살 자격이 있다.

병실에 가보니, 남편은 ‘미녀가 되어 돌아온‘ 아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제 마음씨 뿐만 아니라 얼굴도 예쁜 아내와 알콩달콩 행복하시길 빈다.


에필로그)

글을 마치고 병실에 회진을 한번 더 갔다.

남편은 잠시 자리를 비웠고, 필자는 나이트 당번 간호사와 병실에 가서 환자 상태를 체크했다.

필자는 손거울을 환자의 손에 들려주고 달라진 모습을 보시라고 했다. 환자가 거울을 물끄러미 보더니, 아직 파르르 떨리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제가 떨려서 거울을 못보겠더라구요...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원장님...수고하셨...

환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환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내 눈물샘에도 신호가 왔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나이트 간호사도 눈물이 맺혀 잠시 입원실 밖으로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울지 마세요. 울면 붓습니다. 입, 참 예쁘시죠?

짐짓 이렇게 겁을 주어 달래며, 고개를 끄덕이는 환자를 안심시키고 돌아섰다.

눈물은 훔치던 간호사도 나도 멋적게 웃었다.

-병원이 눈물 바다네, 하하

필자가 일하는 병원이 그냥 수술비 받고 적당히 수술해주는 공장이 아니라는 것, 때로 아픈 마음이 낫는 곳, 감동을 줄 수 있는 곳, 눈시울 뜨거워지기도 하는 곳이라는 게 얼마나 내 스스로도 감사할 일인가 생각했다.

퇴근 길, 매서운 겨울 바람이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