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8-21]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54회>: 와인샵 직원분 급 돌출입수술한 이야기

와인샵 직원분 돌출입 수술한 이야기
 
필자가 즐겨가는 와인샵이 있다.
가끔 그곳에서 와인을 고르고 집에서 와인한잔이 당기는 날 개봉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몇 년간 그렇게 하다 보니 단골이 되어(사실상 관리고객 명단에 올라가), 때때로 단체문자가 왔다. 선착순으로 한정판매하는 그랑크뤼 와인이라든지, 만화 <신의물방울>을 통해 유명세를 탄 와인들을 포함한 리스트와 할인가격이 그 문자의 내용이었다.
 
병원 스케줄을 비워놓은 어느 평일 오전, 비가 내려 운동 계획도 모두 취소되고 시간 여유가 생겼다. 퍼뜩 그 문자 생각이 나서 와인샵을 방문했다.
 
난 사실 그 와인어드바이서의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했다. 문자에 나와 있는 ‘**와인샵 ***입니다’를 다시 찾아 이름을 확인하고, 그 직원을 찾았다. 바로 내가 물어본 그 사람이 그 직원이었다.
 
가난한 자의 그랑크뤼 와인이라는 별칭의 5등급 와인을 몇 병 샀던 걸로 기억한다. 마침 캐주얼한 모임이 있어서 테이블 와인으로 가져갈 참이었다. 그런데, 와인을 사고 계산을 하는 내내, 그녀의 입이 내 마음에 걸렸다. 그녀의 입은 정말 심한 돌출입이었다. 조금만 웃으면 잇몸이 훤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녀의 실제 삶은 어쨌거나 그녀는 삶에 지쳐보였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삶이라는 줄을 힘겹게 잡고 억지로 버티는 것 같았다. 친절하고 성실했음에도 어쩐지 어두워보였다.
 
실례가 되는 줄 알지만 돌발질문을 했다.
-실례지만 결혼하셨나요?
-네. 했어요.
그녀는 경계심있는 미소를 지었다. 남자가 결혼했냐고 묻는 것은 싱글이면 만나자는 뜻으로 들리기 십상이니까...
 
-아 그렇군요. 이런 말 드리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사실은...싱글이시면 제가 정말 입을 예쁘게 만들어드리고 싶었거든요. 결혼하셨다면 뭐...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아...아니예요. 저 입이 많이 나왔죠? 사실 입을 너무 넣고 싶어요. 의사선생님인건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성형외과 선생님이셨어요? 이런 수술도 하세요?
 
가만히 잘 있는 사람 돌출입 가지고 트집잡은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명함 한 장 드리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고객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억지로 한 리액션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나서 정확히 5일 후, 그녀는 필자 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필자가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이후 15년동안 봐온 환자중에 가장 고민도 사전준비도 없이 수술을 택한 환자가 있다면, 주저없이 이분을 꼽을 것이다.
 
다시 와인을 샀던 그 날로 돌아가보자면, 와인샵을 나와 운전중인데 그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필자는 계산이 잘못되었다거나 착오가 있나보다 생각했는데, 그녀의 질문은 수술을 가능하면 빨리 할 수 없겠냐는 거였다. 오히려 내 쪽에서 ‘더 고민하시고 알아보시지도 않고 바로 수술하시게요?’ 하고 반문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날 병원을 찾아와 검사를 마치고 돌출입 수술 날짜를 잡은 것이다.
 
수술결과는 예상대로 드라마틱했다. 수술 다음날 그녀는 그녀대로 입이 쏙들어가 달라진 자신의 예쁜 모습에 놀라워하고 이젠 컴플렉스를 벗어버린데 감동하는 모습이었고, 필자는 필자대로 참 묘한 인연에 신기해하고 좋은 선물을 해드린 것 같아 뿌듯해했다.
 
치료받는 날, 그녀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라며 레어 빈티지의 와인을 선물해주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날 주저없이 신뢰하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가 수술하기 한 달 전쯤 그녀는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이혼이 인생의 나락인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도약이 될 수 있다.
그녀는 이혼이라는 아픔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수술하고나서 매장에서 난리가 났었다며, 모두 자길 구경하러 와서 신기해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가 아침마다 절 보시고, 너무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세요.
 
가슴이 먹먹했다.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게 무엇보다도 잘 된 일 같아요.
 
그녀는 친절하다. 성실하다. 그리고 이제는 예쁘기까지 하다.
 
필자가 ‘도를 아십니까?’ 하듯,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돌출입을 지적하고 수술을 권하지는 않는다. 그 날 그냥 와인만 사면 될 것을, 내가 왜 그녀에게 그런 말을 꺼냈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녀 역시, 그냥 흘려들어도 될 것을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끝이 좋으니, 그게 그녀의 대운이었고, 내가 그녀에게 나타난 귀인인 것으로 하자.
 
그녀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삶의 도약대에 서있다.
그녀 삶의 2막도 아름답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