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1]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58회> : 대소(大小)와 강약(强弱)

 대소(大小)와 강약(强弱)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는 장치에는 대개 대(大) 또는 소(小) 표시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한 산문집에서 그게 좀 불만이라고 썼다. 대신에 강(强), 약(弱)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완전 동감이다.



<출처 : 배우 백봉기와 두여자가 사는 집 블로그>


한, 중, 일 3국은 모두 대변(大便), 소변(小便)이라는 같은 한자를 쓰고, 다르게 읽는다. 그러니까, 물 내리는 장치에 쓰여 있는 대(大)와 소(小)는, 마치 ‘나는 당신이 방금 한 일을 알고 있다’와 같다. 무심하게 넘어가자면 대수롭지 않겠지만, 굳이 그 버튼에 방금 그 사람의 몸에서 나온 배설물의 종류를 구분해서 써놓는 것은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음모론자들은 인간의 배설물에 관한 통계를 어느 비밀 정보기관에서 수집하고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 양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소변을 보면 소(小)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는 강제규정 같은 것도 없는데, 굳이 배설물 종류와 버튼을 짝지어 놓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배설물의 종류가 아니라 물의 세기를 강(强), 약(弱)으로 표기하는 게 더 합리적이고, 왠지 사생활을 더 보호받는 느낌까지 든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 어디를 가도 강, 약으로 표시된 화장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새로 리모델링한 한 호텔에 가족과 투숙했다가 신박한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대(大)와 소(小)라고 쓰여 있어야 할 물내림 버튼에, ‘6리터’, ‘4.5리터’ 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 강, 약보다 한 수 위였다. 한번 물을 내릴 때, 꽤 많은 물이 버려진다는 경각심도 환기시켜주니, 물 절약과 환경보호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사설(辭說)이 길었지만 일반적으로는 큰(大) 것이 강(强)하고 작은(小) 것이 약(弱)하다. 물론 큰 목재보다는 작은 쇠붙이가 더 강하고, 그러니 작은 쇠톱이 큰 나무를 벨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일반적 통념으로는 크기가 큰 것이 더 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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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뼈, 사각턱, 돌출입, 양악수술과 같은 얼굴뼈 수술을 할 때, 절골한 뼈를 고정하기 위해 티타늄 재질의 금속판과 나사를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핀과 나사로 단단히 고정하는 것을 강성(剛性)고정이라고 한다. 티타늄은 생체 적합성(biocompatibility)이 극히 높아서, 부식되거나 이물(異物)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뼈에 골융합(osteointegration)이 일어나는 이상적(理想的)인 물질이다. 평생 가지고 사는 치아 임플란트의 인공치아뿌리도 결국 이 티타늄 나사다.





얼굴뼈의 재수술을 하다가 보면, 환자가 기존에 어디선가 수술 받은 얼굴뼈에서 당시 사용되었던 금속판과 나사를 제거할 일이 생기는데, 그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첫째, 그 금속판과 나사의 크기에 놀란다. 필자는 마이크로 플레이트(micro-plate)와 마이크로 나사(micro-screw)를 쓴다. 이 금속판은 두께가 0.5 mm (1 mm의 반이다!) 정도이고, 나사는 직경이 1.2 mm 정도이다. 이에 비해, 재수술 때 자주 만나는 두툼한 금속판과 나사는 내가 평소 쓰는 것보다 두세 배는 두껍고 긴 미니 플레이트(mini-plate)와 나사다. 나름 작게 만들었으니 ‘미니’라고 칭하는 것이겠지만, 내가 쓰는 ‘마이크로’보다는 꽤 부피감이 있다.

이왕이면 튼튼하게 좀더 큰 핀과 나사를 쓰면 좋은 것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껍고 큰 금속판과 나사는 겉 피부에서 더 잘 만져지기도 할뿐더러, 그것 자체의 부피도 무시하기 어렵다. 필자는 종종 완벽한 결과를 위해, 예를 들어 방금 고정했던 턱끝을 다시 풀어서 단 1 mm만 더 전진시킨 후 고정하기도 하는데, 이 때 턱끝 뼈를 1 mm 더 전진시키고 나서 그 위에 고정하는 금속판과 나사가 2 mm 부피를 차지한다면 정말 넌센스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게 이런 것이다. 핀과 나사가 작을수록 적은 부피를 차지하므로 수술결과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얼굴뼈를 덜 손상시키고 덜 만져진다.



둘째, 금속판과 나사가 그렇게 두껍고 큰데도 골유합은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경우를 보면 놀랍고 안타깝다.


물론 이것은 선택의 오류(selection bias)일 수 있다. 골유합이 제대로 안되고 결과도 나쁘니 재수술을 하러 온 것이어서 편향적인 케이스들만 수집되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두껍고 큰 핀과 나사를 쓴다고 해서 뼈가 더 잘 붙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사실, 뼈와 뼈가 밀착하면 아주 적은 힘으로도 잘 지탱이 된다. 두꺼운 책을 벽에 밀착시키면 손가락 하나로 밀고 있어도 책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그 책과 벽 사이에 살짝만 간격이 있어도, 그 높이에서 공중부양한 채 지탱하려면 꽤 큰 힘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절골한 뼈끼리 밀착이 잘되었다면 상대적으로 얇고 약(弱)하고 조그마한(小) 핀과 나사로도 충분히 견고하게 강성고정이 된다.

역설적으로, 불필요하게 두껍고 큰 금속판과 나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튼튼하게 고정하고야 말겠다는 불안과 강박일 수도 있고, 혹은 견고하게 고정했다는 자기최면일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렇게 고정된 얼굴뼈는 금속판과 나사 힘으로 평생 버티는 것이 아니다. 뼈끼리 밀착된 채로 3-4주만 잘 잡아주면, 뼈와 뼈 사이가 마치 생체 본드로 붙인 것처럼 골유합이 되므로, 더 이상 핀과 나사의 힘은 불필요하게 된다. 그러니 더더욱 고정하는 물질이 두껍고 커야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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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머리에 썼듯이, 일반적으로 큰 것은 강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 얼굴뼈수술은 큰(大) 수술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왠지 얼굴뼈를 고정하는데 꽤 두껍고 크고 강(强)한 물질이 필요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별로 그렇지 않다. 돌출입수술, 얼굴뼈수술은 특히 필자에겐 더 이상 큰 수술도 아니고, 1 mm의 반밖에 안 되는 두께의 금속으로도 충분히 교과서적인 강성고정이 가능하다.

성형외과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필자는 부드러운 연부조직이 아니라 딱딱한 골조직을 수술하며 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딱딱한 뼈를 고정할 때 상대적으로 좀 더 부드럽고 얇고 작은 핀과 나사를 사용한다. 그래도 충분히 견고한 힘으로 지탱한다. 무쇠 망치로 공을 치면 더 멀리 갈 것 같지만, 공을 몇 백 미터씩 날리는 골프채는 사실 낭창거린다. 결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노자는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즉,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하였다

부드러움에 관한 다른 글을 하나 더 소개한다.

“차 안에 문득 음악이 흐른다. . 속도를 줄이고 귀 기울여 듣는다. 언제 들어도 부드럽고 친절한 선율. 이상한 건 이 부드러운 선율이 늘 나에게 생의 용기를 기억시킨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건 힘이 세고 힘이 센 것은 부드럽다. 이 부드러움을 잃으면 안 된다.”

어느 산문집의 한 구절이다. <아침의 피아노>라는 이 책에는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라는 부제가 쓰여 있다. 그가 투병을 하던 1년간 담담히 써내려간 글이다. 그는 같은 책에서 또 이렇게 썼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꽃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이제야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분다. 유난히 덥고 길었던 여름, 시든 꽃처럼 지치고 힘들었다고 해도, 삶의 용기를 잃지 않으시길 바란다. 한 철학자에게 생의 용기를 기억시켜준, 그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을 귀에 담으며 오늘의 돌출입수술을 시작해야겠다.



 <출처 : 플라이북 포스팅>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