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1]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59회> : 이용

<이용>


10월의 마지막 밤인가 했더니 벌써 11월이 꽤 지났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는 당시에 말 그대로 유행가였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하는 가사 때문에 아직도 라디오 채널에서는 그맘때 쯤 자주 흘러나오는 가요다.


(출처 : 아루미의 일상 블로그)


그 가수 이름과는 한자도 뜻도 다를 테지만, 요즘 핫한 뉴스에는 ‘이용’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사실 이용하다라는 말은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쓰다’라는 좋은 의미지만,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쓰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 영어에서도 ‘take advantage of’ 다음에 사람이 목적어가 되면, 그 사람을 이용해 먹다, 편취하다 라는 뜻이 된다.

요즈음 이슈인 한 펜싱선수도 사기범에게 ‘이용’당했는지, 공범인지 논란이 많다. 그도 속았으면 이용당한 것이고, 알고도 같이 남을 속여 왔으면 공범일 것이다.

돌출입수술과 얼굴뼈수술에 집중해오는 이십여 년 동안, 나도 ‘이용’당했다고 할 만한 일들이 몇 번 있었다.

*  *  *

첫 번째, 필자의 수술에 감동한 간호사

그녀가 우리 병원에 취직을 하게 된 동기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후배가 원장인 성형외과 수술실에서였다.

뼈 수술을 거의 해본 적 없는 그 후배 성형외과의사가 어느 날 SOS를 해왔다. 자기가 눈, 코 수술을 다 해준 환자인데, 선생님만 믿는다면서 사각턱수술도 꼭 자기에게 받겠다고 고집한다는 거다. 뼈수술 잘 하는 다른 곳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여서, 결국 뼈수술 잘하는 의사를 초빙해서 같이 수술해주는 것으로 결론짓고 득달같이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 수술날이 마침 내 병원도 바쁜 날이라 수술 일정을 아침 일찍 잡으라고 해놓고, 후배 병원으로 먼저 가서 가볍게 사각턱수술을 한 시간 만에 다 마쳤다. 그 병원은 눈, 코 수술을 주로 하는 성형외과라서 뼈수술이 없었을 텐데, 제 1 조수를 서는 간호사의 째빠르고 센스있는 어시스트가 인상적이었다.

며칠 후 내 병원의 직원을 뽑는 면접. 
이력서를 보니 마지막 직장이 내 후배의 그 병원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마스크를 벗은 그녀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원장님이 뼈 수술하시는 것 보고 완전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의사도 있구나. 원장님 수술을 꼭 어시스트하고 싶어서, 그 병원에는 이번 달까지만 일하는 것으로 사직서 냈습니다.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아마 후배 병원에서 눈, 코 수술 어시스트도 아주 잘 하는 인재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후배 원장 입장에서는 필자를 수술장에 초빙했던 것을 계기로, 아끼던 수술장 간호사가 하루아침에 사표내고 사라지는 셈이다. 

내 수술에 감동했다니 고마운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단박에 지금 일하는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내게 오겠다니...너무 충동적인 것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수술장 간호사를 급구하는 마당에 필자 수술에 꼭 들어오고 싶다는, 손이 좋은 간호사를 마다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정말 그녀의 수술 어시스트는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4개월 째는 같이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게 얼굴뼈수술을 받았고, 잠수를 탔으며 그리고는 떠났다. 수술비는 물론 냈지만, (엄청난) 직원 할인이 적용되었다.

지금도 의문이다. 그녀가 우연히 얼굴뼈 수술 잘하는 의사를 목도하고 같이 수술에 참여하면서, ‘내가 어시스트하고 싶은 의사는 이런 의사다’ 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그 때부터 이미 ‘내가 내 얼굴을 맡길 의사는 이 의사다’ 라고 생각한 걸까? 

처음부터 후자였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직원할인을 받기 위한 위장(?) 취업이고 필자를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로, 그 땐 왜 그랬냐고 물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어쨌든 내가 해준 얼굴뼈수술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 정도로 날 ‘이용’한 것은 크게 다친 사람 없는 해피엔딩이라고 해두자.


두 번째, 업무 협약

병원 로비가 갑자기 시끌벅적하다. 남녀 대 여섯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환자인 줄 알았더니, 중국인 의사들과 직원들이란다.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냐고 해서 무슨 말인지 들어나 보려고 진료실에 앉았다.

그들의 병원명과 의사직함이 적힌 명함을 건네 받고나서 영어로 대화를 해보니, 의사는 맞는 것 같았다. 필자가 하는 얼굴뼈 수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의학용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업무협약’이었다. 준비해온 영어 문서를 살펴보니, 결국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면 환자를 의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뜬금포 같긴 했지만, 자기네가 못하는 돌출입 수술을 필자가 하고 있어서 환자를 보내고 싶다니, 나쁜 일은 아니려니 했다. 그렇게 업무협약서에 싸인을 하고나니 기념촬영을 하자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게 찝찝했지만, 의사라고 믿고 그 선의를 믿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의사들이 내게 환자를 보낸 적도 없고, 병원 진료을 하는 데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은 적도 없으니, 업무협약은 유명무실했다.

다만, 아마도 그 중국 의사들은 내 싸인이 들어간 업무협약서와 사진을 이용하고 있을 것 같다. 'K-성형‘과의 네트워크 혹은 기술 이전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내가 그동안 쌓아올린 돌출입, 얼굴뼈 수술에 대한 공든탑을 일부 가로채 환자들에게 홍보 재료로 삼고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난 선의로 응했지만, 사실 철저히 이용당한 셈이다.


세 번째, “제 돌출입은 얼마나 넣어요?”

돌출입을 가진 환자들이 아주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다. 20년 넘게 돌출입수술을 중점적으로 하다가 보니, 이제 옆모습 사진만 봐도 몇 밀리미터를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넣으면 되겠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눈대중으로 수술하지는 않는다. 수술 전에 협진하는 교정치과 전문의의 세팔로메트리 정밀분석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몇 번씩이나 병원을 방문해 돌출입수술에 대해 질문이 무척 많고 디테일해서 (매우)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었다. 너무 의심이 과한 듯 했지만 꾹 참고 일일이 답변 해주었던 그를 편의점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입술 주위가 퉁퉁 부어있어서 (입이 들어간 효과가 안 보이니) 오히려 그 돌출입 환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딱 걸린 셈이다. 수술을 받은 지 며칠 안 된 듯 했다. 그 환자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던 나는, 그냥 모른 척 할까 하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ooo씨 맞으시죠? 수술 날 안 나타나시더니...다른 곳에서 수술...받으신 건가요?

환자는 화들짝 놀라더니,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부은 입술로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그게...비용이...좀...모자라서요.

수술비 때문에 다른 곳에서 수술을 받았다니 순간적으로 내가 욕심 많고 비싸게 받는 의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노쇼보다 더 괘씸한 건, 몇 번씩이나 방문해서 치과 분석 결과를 포함한 필자의 수술계획을 재확인해 가며 꼼꼼하게 메모하고 사진도 찍어 갔다는 점이다.

돌출입은 고쳐서 예뻐지고 싶고 합죽이는 되기 싫고 수술비는 아까우니, 처음부터 그의 계획은, 실력과 결과가 좋은 병원에서 꿀 정보만 취하고 싼 곳 가서 수술하겠다는 심보였던 걸까?

그의 최종 수술결과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필자가 5 mm를 넣겠다는 것과 다른 집도의가 5 mm를 넣겠다는 것이 동일할 수 없다. 입술 이동량이 5 mm인지, 뼈 절골량이 5 mm인지, 어느 각도로 어떻게 5 mm인지가 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넷째, 특히 돌출입에 대해 필자가 직접 쓴 콘텐츠들이 도용당하는 사례가 있어왔고 현재에도 있다. 심지어 내가 수술한 전후 사진을 입 부분만 잘라서 자기네 수술전후 사진으로 둔갑시킨 경우가 적발되기도 했다. 어느 환자가 발견하고 제보해 주었다. 그 환자도 처음에는 어느 쪽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입부분만 있는 사진과 눈도 안 가린 전체 얼굴이 있는 사진 중 어느 것이 진짜였을까? 이용도 아닌 도용은 정말 범죄다. 


*  *  *

의사에게 최고의 선생님은 환자다. 초짜 의사가 명의가 되기 위해서는, 초반에 그에게 몸을 맡긴 수많은 환자의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희생이 존재하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수술에도 학습 곡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험과 실력이 부족한 의사는 설령 나쁜 의도 없이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환자를 제물로 이용하며 학습하는 셈이 되고, 재물만 탐하는 의사가 만약 존재한다면 불필요한 수술까지 권해서 환자를 돈 버는데 이용할 수도 있다. 25년 동안 같은 수술을 해 온 필자는 이제 환자를 ‘이용’해 수술 실력을 늘릴 일도 없고, 불필요한 수술은 오히려 만류하고 있다. 환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한편, 동업이든 정치든, 서로 잘 해보자고 시작한 것도 결국 틀어지고 배신감 느끼는 상황이 되면, 서로 이용당했다면서 비난하기 일쑤다. 내게 돌출입수술이나 얼굴뼈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주위에 “나 아무 수술도 안했어”하고 잡아떼는 것에는 좀 배신감 느끼지만, 그 정도는 내가 이용당한 게 아니라, 나의 재능을 잘 활용한 것이라고 해두자. 수술 후 그 정도 애교 수준의 거짓말에는 기꺼이 공범이 되어 드릴 수 있다. 환자의 수술사실을 누설하지 않는 게 의사의 덕목이기도 하므로...

사기캐릭이란 말이 있다. 거짓말로 남을 속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 사기(詐欺)인 반면, 사기(詐欺) 캐릭(character)은 너무 완벽하게 다 가져서 현존하기 어려운 사람을 일컫는다. 얼굴뼈 수술 중에서도 돌출입수술은 그 변화가 매우 드라마틱해서, 수술 후에 몰라보게 되는 경우가 흔하고, “와 이건 사기다”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수술 자체에는 거짓이 없고 사기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수술을 한 만큼 그 결과가 나온다.

곧 겨울이 올 것 같다. 계절이 자꾸만 바뀌면, 언젠가는 수술하는 내 손도 무뎌지겠지. 수술 계획이시라면, 가능하면 손 떨리기 전에 '이용' 부탁드립니다.


 
(사진출처 : 구글 ; 세계에서 가장 나이많은 89세의 외과의사)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