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53회> : 허락과 용서

<허락과 용서>


현재 대한민국은 40대 초반 신부가 20대 초반 신부보다 더 많다고 한다.

과거에 서른 살 넘기면 노처녀, 서른 서너 살 넘기면 노총각 소리 듣는 시대는 신석기 시대쯤이었나 싶다. 필자는 거의 그런 시대에 살았고 30대 초반의 의대 동기들이 20대 후반의 신부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동기 의사들의 자녀가 이제 대학생이거나, 군대에 가 있거나, 대학 졸업 후 직장인이 되었다. S대 의대 졸업 3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의대가 6년 과정임을 감안하면 그럴 시기다. 그런데 요즘은 만혼이 대세여서인지, 아직 졸업동기 자녀의 결혼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한 동기 의사의 딸이 어느 날 아빠에게 “남자친구랑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허락해달라고 했단다. 동기 의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겠다는데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줄 아빠가 있을까? 꼰대 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시대 아빠들 중에는 없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주위에 하소연을 하니, 돌아온 반응은 의외였다고 한다. “야~너네  딸 착하네. 몰래 가도 될 텐데, 그걸 아빠, 엄마한테 솔직히 이야기 하고 허락을 받겠다니!, “요즘 다 그래, 그거 못 가게 하면 너만 이상한 아빠 된다! 

딸의 입장도 비슷했다. “그냥 여자애들끼리 여행 간다고 거짓말 할 수도 있지만...허락을 받고 가고 싶어서요.

결국 그 집 딸은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게 되었고, 의사인 아빠는 인간 개조를 경험했다. ‘아, 세월이 바뀌었구나. 딸이 남친이랑 여행을 가도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기로. ‘이해가 안 가거든 외워라’는 것은 의대 공부의 철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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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는 가끔 ‘몰래’ 수술하러 오는 환자들이 있다.
남편 몰래, 부모님 몰래, 자식들 몰래, 아내 몰래와 같은 경우들이다.

이 중에 가장 많은 케이스는 역시 ‘남편 몰래’다.
남편들은 아내가 예뻐지는 것에 대해 양가감정, 아니 다중 감정이 있다.

첫째는, 예뻐지려다가 잘못되어서 치명적인 위험이 닥치거나 합병증이 생기거나 얼굴을 망쳐서 보기 싫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

둘째, 수술이 안전하고 성공적이어서 아내가 예뻐지(기도 하고 자기만족도 얻는다)면 좋긴 하겠다는 생각.

셋째, 그렇지만 아무래도 성형수술은 사치품이고 예뻐지는데 돈을 쓰는 게 허영 같다는 느낌.

넷째, 너무 예뻐진다면, 거기에서 오는 불안감

사실, 자신 이외에 다른 이성에게 매력이 발산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배우자를 독점하려는 것은 생물학적인 본능이다. 그러나 이미 결혼했는데 뭐 하러 더 예뻐지려고 하냐고 반문하는 것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아름다움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배우자나 가족 몰래 수술 받은 환자들. 그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한다. 한 미술전시회에서 고가의 회화작품을 1초 만에 사겠다고 했던 모 중견기업 여성 임원이 해준 이야기. 그림 값의 일부는 자신이 내겠다면서 남편에게 그림 계약서를 내밀었다고 한다. 계약은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그림을 사도 좋다는 허락을 받기는 쉽지 않지만, 이미 사 버린 후 용서를 받는 게 차라리 더 쉽다는 이야기다

물론,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분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일수록 용서가 쉽다. 그 그림도 구하기 어려운 핫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쉽게 용서했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필자가 하는 돌출입수술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되어야 배우자의 용서(?)가 쉽다. 가족의 허락보다 용서가 더 쉬울 것이라는 환자의 믿음과 필자의 확신이 현실이 되려면, 무엇보다 아름다운 수술 결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실, 놀랄 만큼 아름다운 입매가 나온다면, 용서의 순간이라기보다, 경탄의 순간이 찾아올 공산이 크다.

“새장가 가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부부가 같이 와서 아내가 돌출입수술을 하는 경우에 필자가 남편 분에게 가끔 던지는 (싱거운) 농담 중 하나다. 돌출입수술로 입매가 바뀌면, 누구인지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게 돌출입수술을 받은 환자가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공항에 픽업 나온 남편이 자길 못 알아봤다는 실화를 칼럼으로 쓴 적도 있다.

여담이지만, ‘아내가 죽으면 남자는 화장실 가서 웃는다.’는 우스갯소리는 아마도 새장가 들 수 있어서 그렇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통계는 다르다.

미국의 사회과학 계간지인  2009년 수록된 문헌에 의하면, 배우자와 사별을 하게 된 경우, 아내가 죽은 남편의 자살률은 두 배 정도 높아지는 반면, 남편이 죽은 아내의 자살률은 별로 증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 사별을 겪으면 남성들이 더 힘들어할 뿐만 아니라, 사망률, 유병률(질병률)도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남자가 웃는다는 건 사실이 아닌 듯하다

어떤 식으로든지, 이별은 참 가슴 아픈 일이다. 그렇게나 자신의 돌출입이 밉다던 남편과 얼마 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는 싱글맘 한 분은, 아무 것도 모르고 여전히 엄마 입이 원숭이 같다고팩폭하는 철부지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배우자나 가족 혹은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얼굴뼈를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2차적인 목표만 가지고 수술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귀히 여기는 것,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일,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되어야 한다. , 백화점에서 자신에게 사 주는 선물과는 달리, 모든 수술은 위험성이나 합병증 가능성이 있으므로 더 신중해야 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수술이 안전하게 끝나고 그 결과 얼굴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지는 것, 가족에게 미리 받지 못한 허락 대신에 더 쉬운 용서, 아니 용서 대신 감탄이 기다리는 것이 이미 저질러진 돌출입수술, 얼굴뼈수술이 도달해야 할 해피엔딩의 종착역이다.

남편 몰래, 아내 몰래, 가족 몰래 해주는 돌출입수술은 그래서 더 짜릿하다. 미리 허락을 구하지 못한 배우자 앞에, 개구리로 변해버렸던 마법이 풀린 듯 몰라보게 달라진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는 그 드라마틱한 순간을 상상하며 수술하게 된다. 필자도 몰래 먹는 달콤한 사과의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몰래 하는 수술을 할 때, 기묘한 열정이 좀 더 불타오르기도 한다

이쯤 되면, 환자들이 배우자를 속이는 게 아니라, 필자를 속일 수도 있겠다
배우자 허락 없이 수술하는 것이라고...
용서 받으려면 정말 예쁘게 수술해주셔야 한다고...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