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52회> : 목욕합니다

<목욕합니다>


어렸을 때는 동네 어느 골목길에 <목욕합니다>라는 팻말이 서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게 자신들이 지금 목욕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대중목욕탕이 영업 중이라는 뜻이다.


이제 대중목욕탕이란 말은 거의 사라지고, 대신 사우나, 스파, 한증막, 찜질방 같은 간판이 보인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목욕업중앙회에 등록된 업소가 8,0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살다 보면, 동네 사우나, 수영장이나 체육시설 혹은 호텔에 딸린 사우나, 온천 시설의 대욕장 등등 집이 아닌 곳에서 몸을 씻을 일이 간간히 있게 마련이다.

욕탕의 따끈따끈한 물 안에 몸을 담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적어도 남자들 세계에서는 서로 친하고 격의 없는 사이란 뜻이고, 지인 사이라면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내 경우는 우선 샤워부스에서 양치를 하면서 얼굴을 (비치된) 클렌징폼으로 씻고 샴푸를 한 다음, 초벌 샤워를 하고 그 다음에 탕 안에 들어간다. 욕조 앞에는 대개 ‘몸을 먼저 씻고 탕에 들어오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탕에서 나온 후에 본격적으로 몸을 다시 씻는다. 뒷머리 부분이 욕탕 물에 잠겼다면 머리를 다시 감기도 한다.

그런데 언젠가 굉장히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지인 한 명이 탕 안에서 수다를 떨다가 먼저 나가겠다고 하더니 바로 출입문으로 가서 수건으로 몸을 닦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경우 마지막으로 자기 몸을 씻은(이라고 쓰고 더럽힌 이라고 읽는다) 물은 욕조 안의 물이다.

나는 경악했다. 그때만 해도 참지 못하고 그 친구-별로 안 친하다-에게 가서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대수롭지 않은 척 하며 귀띔을 해주었다.

“욕탕 물은 여러 사람이 들락날락해서 꽤 지저분할 텐데 거기서 바로 밖으로 나오면 좀 그렇지 않아?

그 친구는 건성으로 들어 넘겼고, 후일 그의 씻는 습관이 변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첫 경악의 순간 이후 눈여겨보니, 탕 안에 몸을 담그는 것을 마지막으로 사우나를 끝내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내겐 적잖이 충격과 공포였다. 하지만 평생 그렇게 씻어온 사람에게 가족도 아닌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어서, 그 이후로는 침묵했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그리고 여탕에서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지...정말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깨끗할 거라는 건 차별적 편견일 수 있고, 인간의 행동양식도 어느 정도 표준정규분포를 따를 테니, 아마 여탕에도 이런 분들이 드물게 있을 것 같긴 하다.

사실 목욕탕의 욕조에 고인 물은 깨끗해 보여도 현미경적으로는 세균 등 미생물과 피부조각 즉 때, 그리고 먼지와 오염물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여과 시스템이 작동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지금은 세신(洗身)사 혹은 목욕관리사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과거에 때밀이 아저씨는 손님에게 욕탕 속에서 15분 정도 때를 불리고 나오라고 했었다. 우리 몸의 세포 내 체액은 0.9% 농도의 소금 용액이다. 몸을 물에 담그면, 물이 삼투압현상에 의해서 세포로 들어온다. 그래서 피부 외층이 물에 부풀어, 비비면 표피가 탈락되기 쉬워지고 손으로 비벼도 금세 때가 되어 물에 퍼지는 것이다. 어찌 보면, 뜨끈한 물을 받아놓은 욕조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가발을 탕 안에 푹 담갔다가 건져서 현미경적으로 관찰한다면, 수많은 타인들의 표피 조직이 떨어져 나온 때, 입과 항문으로부터 오염된 세균과 부산물들이 무수히 붙어 있을 것이다. 무좀균 같은 진균이나 포자도 관찰될 수 있다. 갓 탕에서 나온 사람의 솜털이나 머리털, 피부도 이와 같을 것이다.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바로 나가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깨끗한 속옷을 입는 행위를 성형외과 수술장에서 하는 얼굴뼈수술에 비유하자면, 뼈를 절골 한 후 필요한 위치에 바로 고정하고 봉합한 다음 붕대로 예쁘게 감아놓는 것과 같다.

욕탕 이야기가 비위가 상했다면 이번에는 약간 무서울 수도 있겠지만, 얼굴뼈를 톱으로 절골하는 순간, 눈에 보이는 뼛조각뿐만 아니라 눈에 잘 안 보이는 미세한 뼛가루가 만들어지게 된다. 목공소에서 나무를 톱으로 자르면 톱밥이 생기는 것과 같다. 수술 부위의 조직 내 어딘가에 부유하게 되는 이 뼛조각이나 뼛가루는 운이 좋다면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흡수되어 사라질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의 입 안에는 약 100억 마리의 세균이 존재한다고 한다. 돌출입수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얼굴뼈수술은 입안 절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미리 소독을 철저히 한다고 해도 입안 상재균이 수술 부위와 접촉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때문에, 절골시 뼛가루나 이물질이 남아있다면, 균들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특히, 필자가 많이 시행하는 돌출입수술의 경우는 치아를 포함한 잇몸뼈를 절골하기 때문에 치아 사이의 불순물, 플라그, 치석 등에 의한 오염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 예방법이 있다. 절골 부위의 세균과 뼛가루, 오염물 등을 동시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절골한 뼈를 고정하기 전에 먼저 식염수로 철저히 세척하고 석션을 통해 빨아들이는 과정, 즉 창상세척을 충분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이지만, 너무나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그 다음은 예방적 항생제 등의 약제가 돕고, 우리 몸의 놀라운 면역기능과 치유력이 작동한다

나만 경악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탕 안의 물을 마지막으로 출구로 향하는 ‘놀라운 광경’을 제공한 그 사람들의 몸은 다양한 사람들의 때와 세균으로 얼룩졌을 것이 분명하다. 세균학적으로는 아마 씻기 전보다 더 더러워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중 감염이나 염증이 생겨 치료받거나 입원하거나 사망한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우리 몸의 피부가 그 자체로 대단한 면역체계이기 때문이다. 피부에 개방된 상처(open wound)가 나 있지 않는 한, 피부에 웬만한 걸 뒤집어써도 감염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술부위는 그와 다르다. 피부나 점막이라는 든든한 면역의 장벽을 일부러 절개하고 들어간 ‘속살’이고, 그 안에 부유하는 뼛가루나 이물질, 세균 등은 감염과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욕탕 물에서 방금 나온 사람에게 샤워를 한 번 더 하라고 하는 건 과한 오지랖이겠지만, 수술 부위 세척을 열심히 안 하는 의사에게 창상세척을 열심히 하라고 충고하는 건 오지랖이 아니고 ‘인류애’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괜히 찔리는 어떤 사람이 탕 안에서 나와 제대로 몸을 씻는 일생일대의 생활습관 변화를 경험한다고 해도 세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겠지만, 혹시 내 이야기를 듣고 뜨끔해서 얼굴뼈수술이든, 복강 혹은 뇌 수술이든 세척을 더 철저히 하고 감염 예방에 최선의 주의를 기울이는 의사가 늘어난다면 필자가 오늘 인류를 위해 좋은 일 한 셈이다. 환자가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모든 의사의 기쁨 아닌가?

얼마 전 내게 돌출입수술을 받은 환자가 어느 호텔의 스파 및 전신 마사지 쿠폰을 선물해주었다. 마사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누를 때마다 거의 항상 아프다. 대충만 살살 해달라고 한 후 사우나나 할 생각이다.

혹시 ‘대중목욕탕’에서 필자를 우연히 만나실 수도 있다. 발가벗고 있을 땐 제복도 명패도 없으니 누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탕 안에 있다가 바로 밖으로 나가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필자는 아니다.

나는 탕 안에서 나오면 꼭 다시 씻는 사람이고, 돌출입수술 후에는 강박적으로 세척하는 의사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