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51회> : 주민등록 나이 78세의 돌출입

<주민등록 나이 78세의 돌출입>


스코틀랜드의 정신과의사였던 로널드 랭(R.D.Laing) 1985년에 ‘삶이란 100% 죽게 되어있는 성매개전염병이다 (Life is a sexually transmitted disease and there is a 100% mortality rate)’ 라고 했다. 인생을 냉소적으로 정의한 이 말은 사실 그가 처음은 아니다. 1600년경에도 영국 시인인 카울리가 ‘삶이란 불치병’이라는 표현을 했고, 1980년경 어느 벽의 그래피티에도 ‘삶이란 성매개 질환’이란 말이 등장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생이란 결국 남녀 간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서 나온 결과물로 그 생명이 유한하다는 아이러니를 표현했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화(aging)한다. 20년은 노화 대신 성장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노화의 일부다.

가령, 아래 눈꺼풀 부분의 노화가 진행되면, 눈 밑 피부가 늘어지고 지방이 불거지며 주름이 잡힌다. 그게 연륜이며 아름답게 늙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가장 어리석은 질문 중 하나가, “하안검성형수술을 지금 하면 어차피 또 늘어지고 처지지 않나요?”이다. 물론 그렇다. 수술을 통해 10년 전쯤의 상태로 돌려놓을 뿐이다. 그 때부터 다시 중력과 노화의 스위치는 켜진다. 그게 아까우면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수술 받으면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예쁘게 사는 날이 몇 시간 되지 않는다. 예쁘게 죽는 것보다, 예쁘게 사는 게 중요하다.

수술이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성공적이라는 전제가 충족된다면, 성형수술은 인간이 젊고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망에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게 사실이다. 위에 언급한 하안검 수술은 일종의 항노화(anti-aging)수술이며, 젊은 나이에서는 할 이유도 필요도 없겠지만, 돌출입수술이나 광대뼈수술은 인생의 어떤 시기에 하는가에 따라서 얼마나 오랫동안 예쁜 입으로, 갸름한 얼굴로 살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 모든 수술은 합병증에 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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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상 만 78세의 여성 환자 H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아구찜 식당에서 들려올 법한 진한 사투리를 쓰시는 환자 H는 아주 심한 돌출입이었다. 돌출입이 심할수록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의 돌출입만 특징적으로 기억한다. “아 그 분, 입 억수로 마이 티 나온 분!” 으로 각인될 법하다. 그런 주홍글씨가 평생 괴로웠을 것이다. 배우나 개그맨 중에서도 돌출입이 특징적으로 각인되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눈이 예쁜 연예인! 하면 딱 떠오르는 몇몇 사람이 있나? 별로 안 그렇다. 눈이 예쁜 사람은 너무 많으니, 그것으로 잘 각인이 되지 않는다.

78세의 환자는 필자의 돌출입수술 역사상 최고령이다. 만약 세계 최고령 돌출입수술로 기네스북에 등재된다면 공식적인 나이인 주민등록상 나이가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환자분 본인 말로는 실제 나이가 69세라고 하신다. 사실관계는 알 길이 없다. 옛날에는 신생아가 아프거나 해서 출생신고를 미루다가, 가령 3년 뒤에서야 신고를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주민등록상 나이는 어리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더 많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 반대가 가능할까? 출생신고서에 10년 전의 날짜를 기록해서 제출하는 것이?


여하튼 그 환자분의 인생은 참 고단했다. 환자의 개인사를 이렇게 여과 없이 글로 써도 되는지 걱정하실지 모르지만, 이미 공개된 영상을 통해 본인이 직접 한 이야기다.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 주사가 있어서, 밤에도 술 먹고 때리고 행패를 부리면 짐 싸서 도망 나오며 몇 십 년을 살았다고 한다. 결국 남편은 술로 세상을 하직하고, 혼자서 안 해 본 일 없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는데, 아들이 똑같이 아버지의 술주정을 이어받았단다. 유전자든, 보고 배운 것이든, 참 비극이다. 술 먹고 사고치고 경찰서 가고 하는 아들 뒤치다꺼리 하다가, 결국 그 아들마저 30대의 나이에 술병으로 요절했다고 한다. 아무리 속 썩이는 아들이지만, 피붙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맘이 오죽했을까?

H는 아직도 그런 트라우마로 밤에 수면제 없이 잠을 못 잔다고 한다.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경찰서인가 싶어 심장이 떨린단다. 아들마저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 되고서야 평생 처음으로 남편 걱정, 아들 걱정 내려놓고 내 몸 하나만 간수하면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제 좀 마음 편히 살아볼까 하니 어느덧 칠십...이제서야 거울 앞에 선 순간, 고생이 덕지덕지 붙은 것 같은, 평생 한이 되었던 돌출입에 눈에 밟혀 10여 년 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필자 병원을 찾아왔다고 한다.


-길어봐야 10년이나......살겠심꺼? 앞으로......10년만 자신감 있게 살고 싶슴니더.


-10년 아니라 30년 건강하게 사셔야죠, 100세 시대인데요. 고생 너무 많이 하시고 살았는데, 본인한테 선물한다고 생각하세요. 정말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제가 더 열심히 수술해드리겠습니다.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여기까지 오시느라고...



필자의 말을 듣던 환자가 옅은 숨을 내쉬며 흐느낀다.

수술 당일, 담담하게 홀로 입원을 한 환자는 예정대로 돌출입수술을 받았다. 이 분의 평생 한을 풀어 드린다는 마음으로 집도를 했다. 돌출입수술 다음날, 혼자서 퇴원하시겠단다. ‘혼자 내려가시게요?’ 물으니,

-여기 올 때도 혼자서 찾아왔는데, 갈 때 몬 가겠슴니꺼?


하고는 씩씩하게 혼자 병원 문을 나선다.

그리고는 한두 달이 또 흘렀다. H도 나도 두 달 더 노화했다. 겨울에 수술이 몰려있어 필자의 지병인 허리디스크가 도졌다. 혼자서 먼 거리를 바람처럼 오가시는 H가 어찌 보면 나보다 건강하신 것 같기도 하다. 돌아보면 전신마취로 얼굴뼈에 손대는 수술이 무섭지 않으셨냐고 물었더니, “평생 소원이어서 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고 하신다.

 

70세의 노인이 전신마취로 돌출입수술을 한다고 하면 어느 자식인들 말리지 않겠는가? 그토록 수술을 뜯어말리던 딸이, 몰래 수술을 해버린 엄마를 보고 “와! 김 여사 예뻐졌네~!” 하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만류할 것이 아니라, 효도 선물로 해드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환자 H가 꽃다운 나이에 이 수술을 받았더라면 인생 전체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은교’에서 남주인공 이적요(박해일분)의 명대사,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는 미국의 시인 로스케가 한 말이다. 그렇다, 늙는 것, 노화하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삶의 한 계절일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성매개질환이 아니고 그 자체로 기적이다

웹상에서는 아름답게 늙는 7계명이 회자된다. 잘 씻어라(clean up), 잘 입어라(dress up), 입 대신 귀를 열어라(shut up), 지갑을 열어라(pay up), 모임에 참석하라(show up), 유쾌하게 행동하라(cheer up), 포기할 건 포기하라(give up). 

7, 나이가 들수록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라는 말에 일부 동의하지만, 이제껏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세상만사가 기적처럼 변모할 리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기적처럼 ‘변모’하지 못한 것은, 변모가 가능한지 몰랐거나, 그걸 해낼 수 있는 귀인을 못 만나서일 수도 있다.

환자 H는 나를 조금 늦게 만났다.
인생의 어느 계절에 꼭 필요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도 운명일 것이다.
천천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