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50회> : 카메라

<카메라>


초등학교 시절 3년간, 아버지가 주신 아사히펜탁스 필름카메라로 사진촬영 대회를 나갔다. 금상 두 번과 동상을 탄 상장과 메달을 45년간이나 보관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이후, 취미로 사진을 찍어볼까 기웃거리다 말았지만, 주위에는 사진을 취미로 하다가 개인전까지 연 분도 있고, 사진과 카메라에 일가견 있는 지인들이 꽤 있다.


인생도, 관심거리도 돌고 돈다. 카메라라면 할 말이 많았던 지인들이 십여 년 지나면 대개 ‘똑딱이’ 하나로 수렴한다. 커다란 카메라 가방에 렌즈 서너 개씩 넣고 다니던 사람들이, 전부 다 중고로 팔아버리고 조그만 것 하나로 안착하는 것이다. 카메라적 무소유랄까? 하긴, 어마어마한 화소의 스마트폰도 주머니에 있는데, 똑딱이 하나 더 있는 건 무소유가 아니라 ‘꽤소유’가 맞겠다. 물론, 손톱만한 스마트폰 렌즈로 본 세상이 카메라 전문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감성과 깊이, 색감 등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S대 병원 성형외과 전공의 시절, 이제 곧 4년차 취프(chief) 레지던트가 되는 3년차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카메라다. 카메라가 필요한 이유는 향후 성형외과전문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성형외과 전문의 시험에 응시하고 자격을 얻으려면, 성형, 재건 수술을 집도한 수술기록표와 수술 증례 사진을 20케이스 정도 준비해서 제출해야 한다.

당시에는 오직 필름 카메라뿐이었고, 수술케이스를 촬영할 때는 슬라이드용 필름, 즉 포지티브(positive) 필름을 사용한다. 촬영한 필름을 네모난 슬라이드로 만들어 둥근 트레이(tray)에 넣고 영사기에 끼운 후 빛을 비추면, 스크린에 사진이 나타난다. 가령, 학회장에서 발표하는 연자라면 꽤 큰 가방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봇짐장사처럼 트레이 실물을 가지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손가락보다 작은 USB에 수천 장의 사진과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넣어서 주머니에 넣고 가면 되는 세상에 비하자면. 그 시절은 거의 구한말 같은 느낌이다.

성형외과 교수님들과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예외 없이, 셔터소리도 거룩한 일본산 N사 아니면 C사 카메라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누구나 4년차가 될 때쯤 그 카메라를 샀다. 달을 찍어도 좋을 렌즈와, 공포탄으로 써도 손색없을 플래시도 필수였다. 의사들은 선배와 동료 의사의 선택을 잘 믿는 경향이 있다. 대강 알아보고 대충 물건을 사는 의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두 브랜드의 카메라는 무슨 통과의례나 전염병처럼 번졌다.

아마, 의국 역사상, N사 혹은 C사의 번듯한 카메라를 사지 않고, 플래시가 내장된 똑딱이 카메라로 전후사진을 찍어 슬라이드를 만들고 제출한 전공의는 필자가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전통(?)을 답습하지 않은 이단아였을 수도 있다. 당시 젊은 필자의 생각은 이랬다.

첫째, 과연 카메라가 중요한가?

내가 만약 사진학과를 전공한 사진학도이거나 작가 지망생이었다면, 똑딱이 카메라로 작품을 하겠다는 것은 태도불량이고 의지박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로서 수술을 행하였다면, 그 수술의 과정과 결과, 즉 환자에게 제공한 기능과 모양의 개선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수술 후 결과를 최고의 화질, 최고의 색감으로 뽑는 것은 정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만약에, 수술 결과가 사실은 별로인데, 아름다운 색감의 사진으로 ‘커버를 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중요한 건 컨텐츠다. 
 

둘째, 오버다.

전문의 시험 때 제출하는 스무 케이스 중에,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집도한 사진은 드물다. 환자들은 대부분 교수를 보고 찾아온, 교수의 환자다. 대학병원은 교육병원이다. 교수님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수술해 놔라” 하고 기회를 주시면, 감사히 받아서 집도하며 배우는 게 바로 도제 교육이다. 그러고 나서 묻는다. “교수님, 이 케이스, 제가 전문의 시험 때 제출 좀 해도 되겠습니까?” 답은 거의 “오케이”다. 교수들로서는, 제자들을 전문의에 합격시켜야할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전적으로 자기 환자라고 할 수도 없는 케이스들의 전후사진을 찍으면서, 거창한 몇백만원 짜리 카메라는 그야말로 오버이고 넌센스다. 참고로 당시 레지던트 3, 4년차의 한 달 월급은 백사십 정도, N사나 C사의 카메라와 렌즈 몇 개, 플래시를 세트로 사면 이삼백 정도 했던 것 같다. 두세 달 치 월급이다.

셋째, 궁극의 카메라와 완벽한 수술

가령, 얼굴을 다쳐서 응급실에 온 환자를 응급수술하게 되었다고 치자. 4년차 레지던트에게는 수술을 전적으로 (교수 없이) 집도할 좋은 기회(?)다.

부러지고 찢어진 환자, 즉, 개방성 골절과 다발성 열상의 수술 전후를 고가의 전문가용 카메라로 촬영해놓는다. ‘OO대학병원 성형외과 수요 세미나’에서 영사기로 비춘 스크린 속 환자 사진을 보고 모두가 놀란다. 역시 최신 기종의 카메라다운 대단한 고화질인데다가 근접 촬영은 실물을 보듯 생생하다. “오오, 대단하네. 얼굴을 정말 미세수술하듯 정성껏 봉합했군! 수고했어요.” 교수도 감탄한다.

실제상황은 아니지만, 6개월 뒤 환자가 일반 외래에 왔다고 치자. 모두가 부러워하는 궁극의 카메라로 4년차 전공의는 다시 임상 사진을 찍는다. 전문의 시험에 제출할 요량이다. 카메라의 묵직한 셔터음과 손맛은 어쩐지 그 의사를 대가(大家)로 만들어 줄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던 1년차도 기필코 그 카메라를 사겠다고 결심한다. 이 때 환자가 말한다. “선생님, 그런데 한쪽 눈썹이 안 움직이고 자꾸 처져요.” 

눈썹을 올리는 신경은 안면신경의 측두분지가 담당한다. 이 상황은 물론 가정일 뿐이지만, 환자가 다쳤을 당시 눈썹을 올리는 근육이 마비되었는지 신경이 절단되었는지를 확인하지 않고 누락한 것이다. 신경이 절단되었었다면 그 때 찾아서 미세봉합을 해주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다.

이 경우를 돌이켜보면, 예쁘게 한 땀 한 땀 얼굴을 꿰맨 정성과 고화질의 근접사진이 만들어낸 경탄은 다 무효다. 신경선까지 잘 이어 주고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 놓는 게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결말이었을 것이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의사가 가진 궁극의 카메라가 아니라, 완벽한 수술이다.

  *  *  *

지금 필자가 하는 돌출입수술에도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아름다운 돌출입수술의 결과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지, 예술사진을 찍어야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미용적으로 악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천만원짜리 카메라가 무슨 소용인가.

이제 똑딱이 자동카메라를 쓰지는 않지만, 필자는 웬만한 보급형 스마트폰보다도 저렴한 C사의 초기 모델 DSLR 카메라로 돌출입 환자의 임상사진을 촬영한다. 필자는 사진관 대표도 포토그래퍼도 아니고, 돌출입수술, 얼굴뼈 수술을 행하는 써전(surgeon)이다. 수술 전후의 환자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도 찍는 세상이다. 요즘 대학병원 성형외과 전공의들은 더 이상, 무거운 전문가용 카메라를 사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애꿎은 카메라만 집중 포화를 당했지만, 수술의 내용 및 결과와 무관한 허례허식 같은 것들은 더 많이 존재한다.

가령 병원 로비 샹들리에의 크기나 번쩍거리는 인테리어, 병원의 규모나 외형, 화려한 홈페이지, 멋져 보이고 그럴듯한 수술 명칭, 특허 받은 수술 장비, 금테 두른 수술 기구, 최고가의 삼차원 영상의학 장비나 수술 예측 소프트웨어, 3-D 프린터/레이저/내시경 같은 특수 기계, 단발 인터뷰 방송출연 경력, 병원 내 상주 홍보팀의 존재,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나 반말, 협찬비를 내는 세계 인명사전 등재나 소비자 만족 대상, 외국인 환자의 대량 유치나 외국 원정수술 같은 것들은 사실, 안전하고 아름다운 돌출입, 무턱, 광대뼈, 사각턱수술 결과와는 아주 혹은 거의 무관하다. 오히려 대척점에 서 있는 것들도 있다.

저들 중 어떤 것도 환자의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고 담보하지 못한다. 결국은 오로지 집도의사 1인에게 귀결된다. 집도의의 미적 감각 즉 눈과, 수술 솜씨 즉 손이 최종 키(key)를 쥐고 있다. 명작은 붓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이 만든다. 품격과 양심은 기본이다. 환자를 위한 수술은 배금주의가 아닌 인본주의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 안전에 대한 배려, 합병증에 대한 주의도 휴머니즘이다.

가끔씩, 영화 ‘파리로 가는 길(Paris can wait, 2017)’ 속 다이안 레인이 들고 다니던 빨간 딱지의 L사 카메라가 문득 떠오르거나, 사진 좀 한다는 지인의 묵직한 셔터 손맛을 보면, 최고급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 쯤 지르고 싶어진다. 사실 이미 몇 년 전 지른 O사의 카메라가 집구석에서 썩고 있다.

그러나, 색조화장이 누군가의 인품을 말해주지 않듯이, 색감이 깊고 풍부한 사진이 훌륭한 수술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적어도 병원에서는 값비싼 카메라가 별로 소용없는 이유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