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3] [뉴스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21회>: 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

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

어느날 광대뼈와 동시 양악수술을 하나 끝내고 쉬고 있는데, 초등학교 여자 동창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동창은 삼심대 중반에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해서 결국 선생님이 된 능력자다. 첫 발령이 난 초등학교에서 지금의 연하 남편도 얻었으니 직장도 얻고 배필도 얻은 셈이다.

요지는, 의사가 꿈인 초등학교 학생 몇 명을 보낼테니 1일 멘토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멘토가 일하는 곳도 구경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꿈을 키워주자는 것이리라.

필자는 사실 아픈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아니다. 내게 돌출입, 양악, 광대뼈, 사각턱 수술을 받는 사람들은 사실상 환자가 아니고 아주 건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의사로서 좋은 롤모델이 될지 걱정스러웠다.

여하튼, 네 명의 아이들이 왔다. 아이들은 신이 나 보였다.

모두 의사가 되고 싶은거냐고 내가 먼저 물었다.

일제히 ‘네!’ 하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 중 여자아이 하나가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럼 너는 왜 왔니?’ 하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자신있게 이렇게 말했다.

-아, 그게요. 제 남자친구가 의사가 되고 싶은데요. 남자친구는 의사 말고 딴 것도 되고 싶은게 있다고 해서 딴 데 갔구요. 여긴 제가 대신 왔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인 꼬마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 그것을 친구들도 인정하는 것, 그것을 내게 자신있게 이야기 하는 것, 그리고 남자친구 일을 대신 해 주는 것 모두 너무나 신기했다. 내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에 가까웠다.

나머지 꼬마들에게 의사가 왜 되고 싶으냐고 묻자 그 중 한 명이 제일 큰소리로 대답했다.

-돈 많이 버니까요!

난 순간 울컥했다. 반사적으로 ‘이런 못된 녀석’ 이란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때는 아마 누군가 ‘돈많이 벌고 싶어서 의사가 되고싶다’고 말하면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았을 것이다. 당연히 ‘아프고 병든 사람을 치료해주고 싶어서’가 모범답안이었다. 당시의 이런 모범답안은 위선이고 주입식교육의 결과인걸까?

여하튼 나는 열 살짜리 꼬마가 대놓고 돈을 밝히는 데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는 돈을 쫓는 것에 관대해졌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모 신용카드 회사의 ‘부자되세요’라는 광고문구가 사회분위기를 바꿔놓은 전환점이 되었다고 본다. 미녀 탤런트가 밝게 웃으며 하는 ‘부자되세요’라는 인사는 사실상 파격이었다.

그 이전의 사회분위기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놀부가 되고 싶다와 같은 맥락이었고, 대놓고 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은 고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부자되세요가 덕담이고, 놀부라는 간판을 단 음식점이 잘 나가는 세상이 되었다. <부자아빠, 가난한아빠>라는 책도 부자되는 법을 이야기한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중 한 아이의 ‘돈 얼마나 버세요?’란 질문이었다. 난 경악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 세상물정 다 아는 그 초등학생들 눈에 성형외과 의사인 필자는 돈이 좋아서 의사가 된 것으로 비춰졌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헐리웃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성형외과 의사는 모두 돈많은 바람둥이 아니던가?

필자는 수술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특히 돌출입, 양악 수술, 사각턱, 광대뼈와 같은 얼굴뼈 수술이 내 천직이라 여긴다. 수술로 인생을 바꿔줄 수 있고 마음을 치료해줄 수 있어서 늘 설렌다.

그림을, 팔기위해 그리는 작가는 불행하다. 그림 그리는 일이 즐겁고 그림이 예술성이 있다면 자연히 그 작가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돈 많이 벌기 위해 의사를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주고 초등학생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때마침 베이글녀 포스의 한 여인이 아기를 안고 병원에 왔다.

아기 엄마는 몇 년전 내게 돌출입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이번에 시집 못가고 있는 언니 돌출입 수술을 시켜주기로 했단다. 지난 컬럼에도 썼지만 역시 유전자는 무서운 존재다.

스물세살 때 돌출입 수술을 필자에게 받은 환자가 부잣집에 시집가 첫 손주를 안고 있다. 엄마를 닮아 살결이 뽀얀 아기는 엄마 품에서 쌕쌕 잠들어있다.

그 행복한 모습에 내 마음은 진정 부자가 된다.

 

칼럼니스트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수료

서울대학교 병원 우수전공의 표창

전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연제발표 다수

돌출입 관련 강연, 주제논문 채택, 발표, 방송출연 다수

저서 '돌출입 수술 교정 바로알기'(2006. 명문출판사)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