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61회> : 도플갱어

<도플갱어>




비행기 옆자리 승객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15년 한 기사에 의하면 런던에서 골웨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영국인 닐 더글라스는 비행기 바로 옆자리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성, 로버트 스털링을 발견했다고 한다. 마치 '도플갱어' 같은 두 사람은 이목구비뿐만 아니라 머리스타일, 덥수룩한 수염까지 모든 게 똑같았고 심지어 같은 호텔에 예약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인증해서 화제가 되었다.




사진출처 : 구글



도플갱어(doppelgänger)는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자신과 똑같은 환영을 보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도플갱어와 마주치면 머지않아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암시한다는 속설은 영화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으며, 현대 의학적으로는 도플갱어의 환영을 보는 증상이 자아분열과 같은 정신질환의 한 증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환각, 환영이 아니라 정말로 쌍둥이처럼 너무나 닮은 실제의 사람을 만난다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도플갱어 사진’을 검색해보면 실제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운 좋게 만나서 나란히 찍은 흥미로운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란 아주 어려울 것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유전자가 각기 다른 얼굴과 체형을 만들어서 똑같은 사람이 거의 없고 전 세계 80억이 넘는 개개인이 식별 가능하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25년 가까이 돌출입과 얼굴뼈 수술을 하면서, 정말 도플갱어 같은 환자를 몇 쌍 만난 적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20대 중반의 A양은 내게 돌출입과 광대뼈, 사각턱수술을 동시에 했다. 그러고는 잊고 지냈다. 잊고 지내야 수술이 잘 된 환자들이다.  

거의 정확히 1년 후에, B양을 수술했다. 그녀도 20대였고,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수술이었다. 역시 잊고 지냈다.

다시 1년 쯤 더 지난 후에 환자가 날 찾아왔다. 잊을 때쯤 다시 찾아오는 것 중에 최악은 어딘가 불만이 있는 것이고, 최선은 다른 부위를 수술하고 싶어서다. 후자였다. 가슴확대수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유방확대 수술 전문병원도 있건만, 굳이 필자에게 받고 싶단다. 이야기하다 보니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차트를 안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 이 분 기억나네요. 1년 전에 내가 수술해줬죠? 그 때, 불문학과 대학원생...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네? 아닌데요? 저는 수술한지 2년 넘었어요.

-아 그래요?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수술 다 했던 것 아닌가요?

-그건 맞아요. 저는 그 때도 직장 다니고 있었는데? 불문과 아니에요. ^^

차트를 보고 갸우뚱했다. 내가 생각한 불문과 B가 아니구나. 이 환자는 A였다. 2년 전 A의 수술 전후 사진까지 확인했지만, 뭔가 계속 혼돈스러웠다.

A의 진료를 마치고 나서, 궁금한 나머지 B의 차트 사진을 열어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고? 수술 전도 한 쌍의 도플갱어, 수술 후도 한 쌍의 도플갱어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사람의 생일이었다. A는 87년 9월 10일생, B는 88년 10월 11일생. 년, 월, 일이 모두 1씩 차이가 났고, 수술도 1년 간격으로 같은 나이일 때 받았으며, 얼굴에서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세 가지 수술을 한 것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물론, 얼굴뼈의 구조가 비슷하다고 해서 얼굴이 비슷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머릿결, 피부 톤, 비율, 크기, 눈매와 눈빛, 귀, 코, 인중, 입술의 두께와 각도 등 두 사람을 닮아 보이게 만드는 요인은 셀 수 없이 많다. A, B 두 사람은 그 많은 수백 가지 조합들이 거의 다 닮은 셈이다.

너무 신기해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지만, 악운으로 믿기도 한다니 섣불리 그런 제안을 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두 번째 이야기.

한국에서 유학중인 한 중국인 여성 C가 날 찾아왔다. 마스크를 벗은 순간 깜짝 놀랐다. 몇 달 전에 돌출입수술을 한 환자 D와 거의 똑같이 생겨서다. 

사실, D는 내게 두 번 수술을 받았다. 1년여 쯤 전에 광대뼈수술을 받으러 왔을 때 차트의 기록에는, “돌출입수술은 관심 없어요.”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굳이 차트에 환자 말을 따옴표 붙여서 써놓는 이유는 더 이상 이 환자에게 돌출입수술을 권하지 않겠다는 내 의지를 명문화 한 것이다. 전에 윤곽수술 하고 싶다는 환자에게 “그거 하지 말고 돌출입수술이 더 시급하다”고 강권했다가 쓴 맛을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돌출입이 분명하고 돌출입수술이 훨씬 더 많이 예뻐질 거라는 (25년 경험의) 내 확고한 판단보다, 자기 (돌출)입은 지금 그대로가 마음에 들고 광대뼈, 사각턱 수술만 하면 될 거 같다는 환자의 판단을 존중해주리라.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광대뼈수술을 받고 만족했던 D는 9개월 정도 후에 다시 내게 돌출입수술을 받았다. 한 번에 하면 더 편했을 수술인데, 두 번 전신마취 하고, 같은 부위의 입안 점막을 다시 열어야 했다. 환자 D가 돌출입수술하고 몇 달이 지나 너무 예뻐졌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후 얼마 안 지나, (수술 전의 D와 꼭 닮은) C가 날 찾아온 것이다. 

C에게 D의 수술 전후 얼굴을 보여줬다(마침 D는 사진 공개를 허락한 환자였다). 영어를 꽤 잘하는 C입에서 튀어나온 말.

-와, 정말 나랑 도플갱어네요!(Wow, she just looks like my doppelganger!)

정말 똑같았다. 결과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인 환자 C는 광대뼈와 돌출입수술을 따로 안 받고 한 번에 받았다는 점. 생각해보면, D가 필자 말을 안 듣고 두 번에 걸쳐서 전신마취해야 했던 불편함을, 자기와 똑같이 닮은 먼 나라의 도플갱어 C에게 교훈으로 남겨준 건 아닐까?

긴 속눈썹에 반달 눈, 배시시 웃는 눈웃음도 똑같은 C와 D. 중국인 C에게 너의 한국이름은 은서(D의 이름; 가명)이어야만 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더니, 병원에 올 때마다 어눌한 한국말로 “은서 왔어요!” 하며 조크를 한다.




세 번째 이야기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사실 이 환자 E 때문이다. 진료실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E를 보자마자 깜짝 놀란 이유는, 그가 내 병원 홈페이지 동영상에 올라가 있는 남자 환자 F와 똑같이 생겨서다.

재미있는 사실은, E도 이미 그 영상을 보고 내게 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동영상 속의 F와 자신이 놀랄 만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E 입장에서는 자신의 도플갱어를 내 병원 홈페이지에서 찾은 셈이다. 한 명은 부산, 다른 한 명은 광주 사투리를 써서 말투는 영 딴판인데,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영락없이 똑같다.

E에게 혹시 동영상을 찍을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만약 수락한다면 쌍둥이처럼 생긴 두 명을 각각 다른 시기에 돌출입수술한, 신기하고 놀라운 시즌2 영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제목은 이미 정해졌다. ‘도플갱어 돌출입수술’



*  *  *

2란성 쌍둥이, 일란성 쌍둥이에게 각각 같은 돌출입, 윤곽수술을 해준 적이 꽤 있다.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둘 다 돌출입일 확률, 필자를 찾아와 같은 수술을 받게 될 확률도 꽤 희박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생물학적으로 유전자가 같거나 비슷한 두 쌍둥이가 나란히 함께 나를 찾아와 같은 수술을 받는 게 수긍이 간다.

반면에 이 세상에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도플갱어처럼 생긴 사람이 존재하기도, 그를 만나기도 어려운데, 그 두 사람이 따로따로 필자에게 와서 수술을 받을 확률은 더 희박할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세 번이나 일어났다는 건 그들의 외모만큼 삶마저 비슷해서라기보다, 필자가 돌출입수술과 윤곽수술을 해준 환자들의 숫자와 세월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어서일 것이다.

어제 송년회 모임에서 노년 내과 정희원 교수의 노화와 수명에 대한 훌륭한 강의를 들었다. 도플갱어를 보는 것이 악운의 전조라는 독일의 미신과는 달리, 1749년생 독일인인 괴테는 21세 때 도플갱어를 목격했다고 했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83세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도플갱어를 찾은 세 쌍의 내 환자들도, 내 손을 거쳐 탄생한 아름다운 얼굴, 치유된 마음으로 오래오래 행복하시리라 믿는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4년 1월,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