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3]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45회> : 역차별



<역차별>


월드컵 축구 4강이 확정되었다.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잠잠할 만하면 이슈가 되는 것이 인종차별의 문제다.




눈을 찢는 제스처와 같이 특정 인종을 모욕하는 행위는 FIFA에서도 강력히 대응한다고 한다. 한편, 이번 월드컵 8강전에서 패널티킥을 실축해 패배한 잉글랜드의 케인은 백인이어서 여론이 우호적이라는 식의 역차별도 존재한다. 

필자가 집중하는 분야인 돌출입은, 과거 미국 성형외과 교과서에 ‘원숭이입 증후군(simianism)’ 이라는 진단명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 용어 자체가 다분히 인종차별적이다.




성형외과 전공의수련을 마치고 전문의를 땄을 때쯤, 필자는 미래에 확신이 없었다. 원래는 모교에서 의대 교수의 꿈이 있었지만 상황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지만, 당시 전, 현직 교수의 사위, 아들, 딸이 역시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주위에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를테면 누구 사위가 교수 임용을 목표로 전임의(펠로우)를 하면, 동료는 알아서 다른 곳으로 피해주었다. 경쟁해봤자 안될 거라 지레 짐작하는 것이다.

혈연으로 얽히지는 않았더라도, 학계, 재계 혹은 정치계 쪽에서 밀어주는 뒷배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그들도, 교수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지쳐, 결국 다른 길을 택하곤 했다.

믿는 건 자기 자신뿐인 경우도 있었다. 무려 5년을 전임의 생활을 꿋꿋이 하면서 버텨서 결국 교수임용을 받은 사례도 있고, 의대를 수석 졸업해서 누구나 교수감이라고 인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들이 ‘전설’로 치부된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러니다.

그런데, 교수가 되는데 혈연이나 뒷배가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진 장본인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실력으로 교수 자격을 증명할 만한데도 불구하고, 누구의 가족이다, 누가 밀어줬다라는 이유로 오히려 역차별의 시선을 받는다고 억울해할 수도 있다.



그 때쯤, 새로운 룰이 생겼다. 이런 것을 법령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데, 세 명 중 한명은 타 대학 출신으로 교수 임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취지는, 특정 대학 졸업자가 교수 채용 인원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동종교배는 부당하며, (학문적인) 다양성과 경쟁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갸우뚱하고 있다. 출신 대학이 달라야 다양해진다고?  

그런데 그 ‘세 번 중 한 번 룰‘을 적용할 때 이상한 것이 있다. 의과대학이 아닌 곳, 예를 들어 S대 경영학과는, 두 번 S대 경영학과 출신 교수를 뽑으면 세 번째는 S대 경제학과 출신을 뽑아도 된단다. 이유는, 경영대학 경영학과와,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는 서로 다른 단과대학(college)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기본적으로 의과대학은 의대 출신이 아닌 사람을 교수로 임용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S대 의과대학 교수로 S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의사를 임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세 번 중 한 번은 아예 타 대학교(university) 의대 출신을 교수로 뽑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만약, 서울대 의대 출신과, 타 대학교 의대 출신이 동시에 서울의대 교수 임용을 받고자 경쟁할 때, 하필 그 때가 ‘세 번 중 한 번’의 순번이라면, 서울의대 출신은 아예 지원조차 못 한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서 받는 심각한 역차별이다. 물론 타 학교 의대출신의 실력도 대등하거나 출중할 수 있다. 그러나, 출신학교가 서울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혈입성의 자격을 얻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그 순번에 걸려서 몇 년을 교수임용 못 받고 속절없이 버티는 후배들을 본 적이 있다.

필자가 이제 와서 교수직에 지원할 리는 없지만, 세상에는 이와 비슷하게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평등이 선으로 오인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정치권의 지역 안배, 성별이나 청년에 대한 우선권, 대학의 신입생 지역균형 선발, 특수고 출신 불이익 등도 취지는 좋지만, 역시 비슷한 역차별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출신 때문에 기회를 잃거나, 청년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얻는 것 모두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발생한다. 

 *  *  *

웹상에서 온라인질문에 답변을 하다가 보면, 필자는 가끔 예상치도 못한 역차별을 받거나, 심지어는 드물게 욕도 먹는다. 결국은 돌출입진료, 돌출입수술에 집중된 20년 넘는 경험이 ‘남다른’ 것 때문에 받는 역차별인 셈이다. 항상, 누구에게나 돌출입수술을 권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억울하다.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다. 


첫째, 필자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이 돌출입 분야다.

칼럼도, 온라인 답변도, 진료할 때 보는 환자도 왜 전부 다 기승전‘돌출입’이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돌출입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것, 이를테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든지,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는가? 주식과 부동산 전망은 밝은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같은 것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강론을 펼칠 처지가 못 된다.

내가 정말 잘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정성껏 답하는 건, 따지고 보면 꽤 정직한 일이다.



둘째, 필자는 돌출입수술 전도사가 아니다. 

돌출입 수술을 항상 권하지 않는다. 전도는 이 세상사람 누구에게나 하지만, 필자는 돌출입수술 대상에게만 그렇게 이야기한다.

돌출입수술을 하는 게 맞다는 답변이 많은 것은, 그들이 정말 수술 대상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돌출입에 대한 20년 넘는 경험적 판단으로 볼 때 그게 정답인데 어쩌랴.

수술 대상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기 좋은 입매입니다. 교정도 수술도 필요 없습니다’라고 쓴다. 가끔은 ‘지금도 보기 좋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사시라’는 말도 덧붙인다. 교정만 해도 된다면, 정직하게 그렇게 말해준다.


셋째, 대다수가 돌출입 수술이 필요하다는 게 말이 되나?

돌출입수술이 필요하다는 답글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바로, 그런 사람(환자)들이 질문을 올리기 때문이다. 즉, 수술 대상이 될 정도의 돌출입을 가진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받고, 지적질도 받으니, 고민 상담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친구 중, 국내 최고의 유방암 명의는, 일주일에 수십 케이스씩 유방암 절제수술을 한다. 그를 찾아간 환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유방절제술을 받는 이유는, 그 친구가 영혼 없이 무조건 유방 절제술을 권하기 때문이 아니다. 절제술이 필요한 정도의 암을 가진 환자가 그 친구를 찾아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돌출입 고민 글을 올린 환자, 혹은 나를 찾아온 환자들 중에 수술 안 해도 되는 환자가 드문 이유는, 수술대상인 환자들이 고민 끝에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넷째, 왜 진단과 치료가 다 엇비슷한가?

환자의 얼굴과 입매를 확인한 후, 경험적으로 밀리미터 단위의 추정 진단과 수술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후의 공통적인 설명은 ‘붙여넣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답변은 몇 줄 빼고는 다 엇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몇 줄이 사실 핵심이다. 4 mm 돌출입을 7 mm 돌출로 잘못 진단하고 수술하면 합죽이라는 재앙의 결과가 나온다. 1-2 mm 차이가 소중하고 각별한 것이다.

어느 내과에 혈압 때문에 다니는 고혈압 환자가 1,000명이 있는데, 모두 엇비슷한 몇 가지의 혈압약만 처방한다고 해서 그 내과의사가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 똑같은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의 혈압의 정도, 원인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약을 다른 용량으로 처방한다. 고혈압 환자에게 나누어 주는 생활 지침서가 다 동일한 내용의 프린트물이라고 해서, 이것을 왜 붙여넣기로 만들어서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 하냐고 비난할 수는 없다.


다섯째, 좋은 약은 입에 쓰다.

꽤 심한 돌출입 사진을 보고, ‘이 정도는 누구나 나왔습니다. 돌출입 아니고 예쁘기만 한데요.’ 이런 스위트한 답변은 환영받는다. 아내가 “나 많이 늙었지?”라고 물으면, “무슨 소리! 옛날이랑 똑같은데?”라고 해야 스위트한 남편이다.

돌출입이 맞다는 이야기도 듣기 싫은데, (교정도 아니고)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고 답해주면, 드물게 과민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돌출입 아니에요.’라는 답변자는 착한 사람, ‘교정만 하면 됩니다.’는 좀 나은 사람, ‘돌출입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나쁜 사람이다. 나로서는 정답을 말하고 역차별을 받는 셈이다.

그래도 전문가 입장에서 제일 자신 있는 돌출입에 대해 20년 넘는 경험을 숨기고, 거짓말로 달콤한 칭찬만 해준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부득이 정답을 쓴다. 행여 돌출입을 비하한다고 느끼거나 얼굴평가로 마음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쓴다. 선택은 환자 몫이다. 

  *  *  *

어느 날 꿈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생소한 법령집을 보여주며, 내가 너무 많은 비율로 돌출입수술을 권하고 있다면서, ‘질문 세 개 중 한 개는 반드시 돌출입수술이 불필요하다고 답해야 한다.’든지, ‘방문 환자 세 명 중 한 명은 반드시 돌출입수술을 금지한다.’고 한다면 정말 악몽이 될 것 같다.

사족 같지만, 다른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돌출입수술을 굳이 안 해도 되거나 돌출입수술을 하면 합죽이가 될 것 같은 환자에게도, 필자는 돌출입수술을 (과하게) 권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건, 돌출입수술을 하면 무조건 입이 과도하고 합죽하게 들어가고 얼굴이 길어진다는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다. 돌출입수술로 입을 (미세하게 2.5mm 정도만) 조금만 넣을 수도 있고, 턱끝의 길이를 조절할 수도 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이 사실을 잘 모르든지, 아니면 수술집도 후 참담한 결과를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의 답이 정답이었다는 것은 내 수술의 아름다운 결과로 증명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나의 답을 무시한 환자들이 다른 치료를 받고나서 결국 돌출입 개선에 실패한다면, 그것 역시 나의 답이 정답이었음을 반증해 주겠지만, 되도록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환자는 약자이며, 그런 실패는 결코 ‘고소한’ 일이 아니고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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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년, 한국 및 대만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