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1]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08회>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가짜 뉴스, 사기, 가짜 상품평, 모두 남을 속이는 행위다.

거짓말은 그 자체로 나쁘다. 모르고 속은 사람은 억울하기 마련이다. 재산을 탕진하거나 인생을 허비한 많은 사례의 출발점은 누군가의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 거짓말에 속아 얼굴을 망칠수도 있다.

20년 동안 돌출입수술을 하면서, 필자의 거짓말 기술도 늘었다. 성형외과 전문의인 의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기술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에 분개하실 수도 있겠지만, 차근차근 읽어보면 이해하실 거라 믿는다.


* * *


첫 번째 거짓말, 특별히 수술 잘 해드리겠습니다.



제 자식에 극성이 아닌 엄마가 더 드물다. 자식 잘되라고 1년 내내 새벽 기도를 다니거나, 바람이 차가운 수능 날 교문에 엿을 붙여놓고 몇 시간을 기도하는 엄마들을 보라. 자기의 혈육이 전신마취로 얼굴뼈 수술을 한다고 하면, 애초부터 결사반대하는 부모나 가족도 적지 않다.

일하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수술장에서 보내 수술장 풍경이 친숙한 필자도, 어린 딸이 맹장(급성 충수돌기염)수술을 받으러 모 대학병원 수술장 안으로 옮겨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했다. 하물며, 질병도 아니고 씹거나 먹는 기능에 아무 문제없는 입을, 모양이 돌출입이라는 이유로 (부모 눈에는 돌출된 것도 안 보인다) 전신마취를 해서 뼈를 절골하는 ‘대수술’을 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환자에게는 일생일대의 선택이겠지만, 사실 한 시간도 안 돼 끝낼 수 있는 돌출입수술이 필자에겐 전혀 대수술이 아닌 일상이다. 물론 모든 수술은 합병증 발생 가능성에 대비하여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반대로 정작 자녀는 돌출입에 큰 불만이 없는데 부모 손에 이끌려 오는 환자도 있고, 배우자나 연인이 보호자인 경우도 있으며, 엄마의 돌출입의 한을 풀어드리겠다는 효녀도 있다.

어떤 경우든 수술장에 들어가기 직전 보호자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우리 딸(아들, 혹은 아내, 남편, 부모) 특별히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필자의 답도 거의 항상 같다

-네, 걱정 마세요. 신경 써서 수술 잘 해드리겠습니다.

애초에 소개를 받고 왔거나, 부탁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부탁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멘트가 조금 길어진다.

-환자분 잘 부탁한다는 전화 받았습니다.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수술 잘 해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러나, 필자는 수술에 들어가서, 부탁받은 환자를 특별히 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평소처럼 평정심을 유지하며 하던 대로 수술해야 더 수술이 매끄럽게 잘되고 결과도 원하는 대로 잘 나온다. 즉, 신경을 안 쓰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이 신경을 쓴다. 뭔가 더 잘 해주려 애쓰고 유난 떠는 것이 바로, 특별히 잘해주려다 문제가 생긴다는 소위 VIP신드롬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수술 들어가기 전에 굳이 환자나 환자 보호자에게, 특별히 신경 안 쓸 테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말해드릴 수는 없다. 건성으로 대충 수술하겠다는 뜻으로 오인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수술을 특별히, 유난히, 누구에게만 더 잘해주지 않는다. 모두에게 똑같이, 그러나 항상 완벽한 수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한다. 특별대우, VIP 대접을 받고 싶은 소비자(고객 또는 환자)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VIP 신드롬을 겪고 싶은 환자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거짓말, 원한다면 돌출입만 수술해도 괜찮겠습니다.


돌출입수술을 하면 광대뼈, 사각턱이 상대적으로 약간 더 부각되어 보이게 된다.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의 세 산(山) 중에 돌출입이 평지가 되면 나머지 산이 더 높아 보이는 이치다.

물론 애초에 광대뼈, 사각턱 라인이 산처럼 솟거나 크지 않고 갸름하고 예쁜 환자도 있지만, 돌출입수술을 하러 필자를 찾아온 환자들 중 거의 반(半) 수 이상은 광대뼈, 사각턱 중 적어도 한 가지가 좀 큰 편이다. 상식적으로 광대뼈, 사각턱 부분은 계란형으로 완벽한데 돌출입만 툭 튀어나오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단, 광대뼈, 사각턱이 아예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요즘 트렌드는 미세한 광대뼈 라인과 적절한 귀밑각 부분이 있어야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돌출입도 취향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합죽하지 않으면서 아주 미세한 돌출감을 남기는 추세다.)

있는 그대로를 평가해 주는 게 성형외과 전문의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이지만, 사실 필자는 살짝 선의의 거짓말을 해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이 세 개의 산(山)봉우리처럼 도드라져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그 중에서 돌출입이 가장 불만이다. 그러니, 필자를 찾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돌출입이 심해 높은 산에 해당할수록, 나머지 두 산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들이 광대뼈, 사각턱이 돌출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의 오랜 경험으로 냉정하고 정확한 평가를 해서, 현재 광대뼈, 사각턱이 다소 크다는 사실, 그리고 돌출입수술을 하면 광대뼈와 사각턱이 더 부각되어 보일 거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언해주면 어떻게 될까?

끄덕이는 환자도 있지만, 의아해하는 환자도 있다. 아무리 돌출입 때문에 필자를 찾았지만, 자신이 광대뼈, 사각턱까지 나왔다는 사실에 자존감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수술을 무조건, 마구 권하는 상업적인 병원으로 오인 받을 가능성도 있다. 동시에 몇 가지 수술을 같이 하는 게 더 부담스럽고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직언이 오해가 되어) 신뢰가 깨지면, 돌출입수술로 아름다워질 기회마저 사라지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된다. ‘그 병원 갔더니 뭐 다 하래.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그래서 그냥 살려고...’ 하며 자포자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직언의 역효과로 돌출입의 컴플렉스를 평생 가지고 살게 만드는 것 또한 돌출입수술을 주로 하는 전문의로서 환자를 위한 길이 아니다.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세 가지 수술 중에 돌출입 수술의 변화와 만족도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직언을 안 해도 문제다. 돌출입수술을 한 후에, 광대뼈, 사각턱이 이렇게 도드라져 보이는 걸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고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환자들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중간쯤을 택한다. 돌출입수술 후에 광대뼈, 사각턱이 좀 더 커 보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차트에도 기록해놓기는 하지만, 환자가 현재의 광대뼈, 사각턱에 불만이 없다면 돌출입만 수술해도 괜찮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약간은 거짓말이다. 내 눈에는 분명 수술 후에 남은 광대뼈, 사각턱에 눈에 밟힐 케이스들이 있다. 물론, 수술 후 환자가 진심 후회 없다면 다행이다.

돌출입수술과 광대뼈, 사각턱 동시 수술은 사실 내겐 ‘대수술’은 아니다. 보통은 세 시간 정도에 모두 끝낼 수 있으니 수술은 점심 먹고 오후 쯤 시작한다. 수술 부위에 피 통(헤모백; 음압 배액관)도 없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소변줄도 불필요하다. 광대뼈, 사각턱도 꽤 있는 환자가 돌출입수술만 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 순간 완벽함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반대로 환자가 돌출입과 광대뼈, 사각턱 수술을 싹 다 하고 싶다고 졸라도,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 필자는 수술을 만류한다. 가령, 돌출입수술만 필요하고, 광대뼈, 사각턱 수술은 할 필요가 없는 환자라면 확실하게 직언해주고, 불필요한 수술은 해주지 않는다.





언제인가 돌출입과 광대뼈수술을 필자에게 받은 환자가 말해주기를, 필자가 돌출입수술은 물론이고, 광대뼈, 사각턱. 동시 턱끝수술에 양악수술도 하는 사실을 가지고, ‘문어발식’으로 수술하기 때문에 돌출입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는 험담을 어디선가 들었다고 한다. 돌출입수술 뿐만 아니라 다른 얼굴뼈 수술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죄가 아니다. 동시에 여러 명의 연인을 두는 문어발은 지탄받을 수 있겠지만, 집도의가 어려가지 얼굴뼈수술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원하는 환자를 위해 소중하고 명예로운 것이다. 오히려, 광대뼈, 사각턱, 턱끝, 주걱턱을 동시에 해결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돌출입만 수술한다면 결과적으로 얼굴의 심미적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악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것은 얼굴뼈수술을 하는 전문의로서 넌센스이고 함량미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있다. 필자가 돌출입수술 시 턱끝수술을 비용추가 없이 해주는 것이 돌출입을 제대로 못 넣어서 턱끝으로 커버하는 것이라는 괴담을 듣고 온 내 환자도 있다. 거짓말로 누군가를 헐뜯으며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세 번째 거짓말, 아프실 겁니다.

돌출입이나 윤곽수술 후, 턱 끝의 테이프를 떼거나 입안의 실밥을 뽑으러 온 환자에게 늘 하는 말이다. 가끔 보톡스 주사나 필러 주사를 필자에게 꼭 맞겠다는 환자에게도 같은 말을 한다.

재미있는 심리학적 연구가 있다. 엉덩이 주사를 맞기 전에, ‘이 주사가 아픕니다’ 라고 한 A그룹과, ‘별로 안 아픕니다’ 라고 말해준 B그룹의 환자들에게, 주사를 맞은 후 얼마나 아팠는지를 10점 만점에 몇 점인지 적게 하여 평가해봤더니, A그룹, 즉 주사가 아프다고 미리 들은 그룹이 덜 아파했다는 것이다.

즉, 환자가 아주 아플 거라는 말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한 경우는 기대보다 덜 아프게 느껴져서 통증이 적고 참을 만하다고 느낀 반면, 별로 안 아플 거라는 말을 들은 경우는 같은 통증이라도 기대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플 거라고 겁을 줬지만, 실제로는 테이프를 제거하거나 실밥을 뽑는 등의 치료는 별로 아프지 않다. 물론, 통증이라는 것은 개인차가 있다. 치과에서 충치치료를 할 때에도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고 평온한 사람이 있듯이, 통증은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고 다분히 주관적이다.

여담이지만, 전신마취 중에도 혹시 통증을 느끼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마취 중 각성은 영화에나 있는 이야기다. 마취 중에도 아플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드리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니까.


* * *


환자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결론은 필자의 거짓말은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반면에 세상에는 환자를 유인하기 위한 악의의 거짓말도 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해서 병원을 홍보하는 자문자답 마케팅, 댓글 공작, 가짜 후기, 전후사진 보정, 진료 실적 부풀리기, 인터넷 까페 브로커나 환자 유인 등등이 그것이다. 언젠가는 심판을 받게 되겠지만, 그 이전이라도 현명한 환자라면 옥석을 가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세상에 잘 알려진 거짓말 중에,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란 어느 유행가 속 가사가 있다. 필자가 아들이었다면 ‘거짓말! 엄마도 같이 먹자’고 했을 것 같고, 중국집 사장이었다면 짜장면을 한 그릇만 시킨 모자(母子)에게 모른척하며 자장면 한 그릇 분량을 더 내드렸을 것이다. 엄마와 아들이든, 가게 주인과 고객이든, 의사와 환자든 모두 함께 행복해야하지 않겠는가?


난 늘 짬뽕보다는 짜장면이 좋다.

감자가 적당히 들어간 따뜻한 옛날짜장이 당기는 저녁이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년간 돌출입수술과 얼굴뼈 수술 경력


출처 :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