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6] [칼럼]한상백의 돌출입, 양악 이야기 <58회> : 부숴버릴거야

갑자기 조석으로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차를 운전할 때, 낮에는 에어컨을 키고 밤에는 히터를 키게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뜨거웠다가도 차가워진다.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했던 대사였던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많은 연인들이 만났다가 헤어진다.

 헤어지고는 영영 안보기도 하고, 평생을 후회하기도 한다. 사랑은 기적처럼 찾아왔다가도 어느새 익숙하고 나른해지기도 한다.

돌출입 수술을 원해서 나를 찾아온 그녀는 키가 170 정도 되는 늘씬한 영어 강사였다.

긴 생머리의 그녀를, 아니 그녀의 뒤태를 따라가서 폰번호를 '따려고' 했던 남자들도 꽤 있었으리라. 얼굴을 보고는 어땠을까? 인생이 외모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길거리에서의 헌팅은 외모가 생명이다.

 그녀는 돌출입 뿐만 아니라 광대뼈와 사각턱도 수술 대상이었다.

이윽고 수술날짜가 왔고, 수술은 늘 그렇듯이 예정대로 잘 진행되었다.

 

수술 후 6주가 되어 와이어를 풀러 병원에 온 그녀는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수술 후 6주에 필자가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사람들이 몰라보지는 않던가요? 혹은,

-뭐, 재미있는 일 없으셨어요?

 

돌출입 수술은 얼굴인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수술이다가 보니, 대부분은 뭔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있었어요. 글쎄...절 버리고 갔던 남친이 다시 와서 매달려요. 

-아, 그래요? 하하, 혹시 그 남친이, 얼굴이 바뀐 걸 알았나요? 

-네, SNS에 프로필 사진이요. 수술하고 난 사진으로 바꿔서 올렸거든요.

-아하. 잘 된거 아닌가요?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반전이었다.

 -아뇨. 복수해주려구요. 일단 만나주다가요.

 -네?

 -우리 집에까지 찾아왔었어요. 우리 부모님이랑도 알거든요. 이제와서 매달리고 난리예요. 하지만...저를 버렸던 것처럼 저도 차버릴 거예요.

 말하자면, 희망고문을 하겠다는 얘기였다.

 -저는 마음을 이미 다 정리했거든요. 원장님이 새로운 모습을 선물해주셨는데, 새롭게 출발해야죠.

 무서운 여자다. 배우 심은하의 명연기로 항상 회자되는 '부숴버릴거야'가 떠오른다.

그런데 한편, 분노와 애증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무관심에 비해서는 그녀에게 아직 뭔가 미련 한조각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이 예뻐지고 나니 다시 돌아온 남자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필자도 철없던 젊은 시절 이 여자가 더 예뻤더라면 결혼할텐데...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할 말이 없다.

그녀의 복수가 성공할지, 그 남자의 구애가 성공할지는 아직 모른다.

어느 편이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가을 바람도 스산한데,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은 여주인공의 스토리가 슬프게 끝나는 건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