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55회> : 어쩌다 마주친 그녀

<어쩌다 마주친 그녀>


나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후 거의 대부분의 진료시간을 얼굴뼈와 돌출입을 수술하며 살아 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수술하는 환자들은 나를 찾아온 환자들이다. 길을 가다가 수술을 할 생각이 없는 행인에게 돌출입수술을 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난 평생 딱 세 번만 잘 모르는 사람에게 돌출입수술을 권하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평생토록 세 번만 이 카드를 쓰겠다는 건, 준비 없이 그런 말을 듣는 사람에겐 무례함을 넘어서 아주 모욕적인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투머치(too much). 필자가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몰린다든지, 심한 욕을 듣는다든지, 그 가족이나 연인에게 보복 당할 위험마저 있다. 그대로 지나치기는 정말로 너무 아까운, 돌출입수술로 놀랄 만큼 아름다워질 탑3에게만 비상약처럼 써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 세 장의 카드 중 한 장은 이미 써버렸다. 어느 와인샵 직원에게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돌출입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거의 본능적이었고, 그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그녀는 현재 모 와인샵의 대표이고 나는 지금도 거기서 와인을 산다. 여담이지만, 요즘은 와인 사는 양이 확 줄었다. 사 놓은 와인이 잘 줄지 않는 이유는, 세 잔 정도만 마셔도 졸려서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데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긴 생머리인 한 여성의 자태가 눈에 띈다. 일부러 보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마침 구름에 가렸던 봄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는 바로 그 때, 왜였을까? 그녀의 고개가 내 쪽을 힐끗 돌아본다. 순간 숨이 막힐 뻔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얼굴형이었기 때문이다
수술하기에 가장 좋은 얼굴형은 다름 아닌 심한 돌출입이다. 두꺼운 입술을 가지고 있을수록 더 좋다. 마기꾼이라는 말은 그녀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돌출입만 빼면, 눈과 코, 다른 부위의 얼굴형과 피부는 완벽에 가까웠다. 돌출입수술을 한다면, 내 작품 중 단연 1위에 등극할 만했다.

찰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수술하면 정말 기막히게 예뻐질 거라고 말하는 건, 설령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말 꺼내기 쉽지 않다. 독약 같은 이 카드를 정말 그녀에게 쓸 것인가?

고민하는 동안 파란색 보행신호가 켜지고 나보다 한걸음 정도 앞에 있는 그녀가 거의 제일 먼저 걸어 나간다. 나는 좀 더 보폭을 늘려 횡단보도 중간쯤에서 그녀의 걸음을 따라잡는다

이때였다. 오토바이 한 대가 그녀의 옆을 스쳐지나가나 했더니 그녀의 핸드백을 낚아채서 빠른 속도로 도망친다. 번호판은 없었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백주 대낮에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아악” 외마디 비명소리가 그녀의 (돌출)입에서 나왔지만, 그 못지않게 큰 소리로 “어어 저거~!!!” 하며 소리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이미 나는 마음속에서 그녀의 주치의가 되어 있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를 횡단보도 한 가운데 방치할 수는 없었다. 일단 길을 끝까지 건너게 한 후 보행로 한편에서 재빨리 112에 내 전화로 신고를 한다

“오토바이에 가방을 날치기 당했어요. 
“신고하시는 분 본인이십니까? 피해자 분이?” 생각해보니, 나는 그녀의 무엇도 아니었다. 왜 내가 신고를 했지? “아니오, 그게, ...피해자 본인을 바꿔드릴게요.

신고를 받는 경찰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는 그녀의 대답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아뇨, 현금은 많지 않은데, 신용카드, 신분증이 들어있고...그게......가방이 좀 비싼 거예요


가방이 에***였는지 샤*이었는지 나는 보지 못했다. 순간 브랜드가 궁금하긴 했지만, 가방을 방금 잃어버린 그녀에게 차마 물어볼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신고를 마칠 때까지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 전화기를 돌려받아야 하니까...

이윽고 전화기를 내게 건네며, 그녀는 “너무 감사합..니다...죄송해요...지금도 막 떨려서요.” 그녀의 (돌출된)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고, 크고 깊은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는 차마, 당신의 돌출입을 주시하고 있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반 강제로 의인 행세를 하며 잘 해결되시길 바란다 정도의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그 때, 아주 지척에 있었는지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도착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돌출입수술을 권하는 내 생애 두 번째 카드는 이미 물 건너간 일이고, 이제 좋은 일했다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면 되는 순간인데, 어쩐지 경찰이 오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뜨면 지명수배자가 된 느낌일 것 같았다

-신고 하셨죠? 가방 날치기 당하셨다고...


신고내역에, 최초신고자가 남자로 기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 . 제가 옆에서 목격하고 신고 드렸는데, 피해자는 이 여성분이세요.

-아 그럼, 보호자세요?


아니오, 저는 주치의입니다...라고 말할 뻔 했다. 그녀의 가방이 날치기당한 것은 그녀에게 매우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가방을 찾거나 다시 살 수는 있어도, 그녀의 심한 돌출입은 수술하지 않는다면 평생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날치기를 당한 그녀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필 그렇게나 호수 같은 눈을 가진 그녀의, () 같은 돌출입이 너무 안타까웠다. 수술장에서 돌출입수술에 집중하면 폭풍우에 병원 창문이 깨진다고 해도 내겐 돌출입수술만 보이듯이, 날치기 사건도 그녀의 돌출입을 향한 나의 강박을 흐트러뜨리지는 못했다. 더 솔직해지자면, *** 백을 든 돌출입의 그녀보다, 에코백을 맨 아름다운 입매의 그녀가 더 압도적으로 매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갈 길을 갈 것이고, 그녀는 평생 돌출입으로 살 공산이 크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른다. 날치기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대신 내가 그녀에게 기어코 두 번째 카드의 제안을 했다면, 그녀가 112를 눌러 나를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신고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근처의 경찰차는 다른 목적으로 내 앞에 왔을 것이다.

약간 어지러웠다. 최소한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표식 정도로, 명함을 두 장 꺼내 경찰관에게도 건네고, 그녀에게도 건넨 후 나는 가던 길을 갔다. 좀 이상한 날이었다.

병원에는 아직도 마스크를 쓴 환자들이 온다. 어느 여자 환자가 마스크를 내리면서 혹시 저 기억나세요? 한다. 눈만 봤을 때는 누군가 싶었지만, 입을 보자마자 기억이 났다. 몇 달 전 날치기를 당한 그녀였다. 산부인과 의사나 비뇨기과 의사가 환자 얼굴을 보면 누군지 모르는데, 진찰부위를 보면 비로소 ‘아, 이 환자, 알지’ 하면서 병력을 기억해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나는 환자의 입, 그러니까 돌출입을 보면 기억이 난다

그녀로서는, 험한 일을 당했을 때 옆에서 도와준 의인이 마침 돌출입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성형외과의사였으니 이건 숙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날치기를 당했던 그녀를 내가 주시하고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내 생애 두 번째 카드를 쓸까를 고민해서였다는 걸 그녀는 모른다. 그녀가 초콜릿과 꽃바구니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덕분에 가방을 찾았어요. 감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방이 그녀 무릎위에 있었다. 제법 사연 있는 가방이다.

-오늘이 이 가방 들고 다니는 마지막 날이에요. 이따가 당근[중고매매 앱]에서 팔기로 했거든요. 제가 참 좋아했던 가방인데, 보면 자꾸 그 날 생각이 나서요. 그리고, 그 돈으로 돌출입수술을 하려고요. 수술 예약하고 갈게요. 잘 부탁드려요.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돌출입수술 후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진, 에코백을 든 그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정말로 눈이 부셨다. 대낮이었다. 와인을 홀짝거리며 영화를 보다가 선잠이 든 모양이었다. 꿈속 횡단보도는 강남 어디였던 듯한데, 경찰은 총을 든 미국 경찰이었던 것 같다

이게 다 꿈이었으니, 필자에겐 아직 두 장의 카드가 남아 있다.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길을 걷다 누군가 당신에게 불현듯 돌출입수술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돌출입수술 환자 중 탑3의 미모가 될 거란 확신 때문이지만, 듣는 사람으로서는 초능력으로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확신범보다 더 이상할 것이다. 언젠가 정말로 그 카드를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모욕적이라 느끼신다면 정중히 사과드리려 한다.

불편하게 잤는지 몸이 찌뿌듯했다. 남은 와인 대신 시원한 물 한 컵을 마시면서, 문득 당근에다가 에*** 를 쳐보니, 명품백 값이 필자의 돌출입 수술비보다 더 비싸다. 이런...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수술비를 올려야겠군.

내 생각이지만, 평생을 아름다운 입매로 살게 만들어주는 나의 돌출입수술이 명품백 수십 개보다 더 가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가방이 예쁘다는 칭찬은 마음속에 공허함으로 남지만, 당신이 아름답다는 추앙은 마음속의 치유로 남기 때문이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