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48회> : 영정사진

<영정사진>


가끔 환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특히 수술 전후 동영상을 촬영하는 환자들에게는 인터뷰 때 꼭 묻는 질문이다.


-돌출입수술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입이 나와서요’ 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다.

환자들의 대답은 20년 넘도록 하도 많이 들어서, 사실 다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돌출된 입 때문에 받았던 놀림이나 마음의 상처, 친구들과 마음 놓고 활짝 웃으며 멋진 사진 찍고 싶은 소망,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과 호감도에 관한 것들, 돌출입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희망,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싶은 기대 같은 것들...

그런데, 며칠 전 내게 왔던 삼십대의 여성 환자 P는 달랐다.

묻지 않았는데, 그녀가 해 준 말은 다음과 같았다.

-환하게 웃는 예쁜 영정사진을 찍어놓고 싶어요.


돌출입수술을 결심한 이유가 영정사진이라니...결코 범상치 않은 이 환자의 이야기가 놀라웠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환자가 어떤 불치병에라도 걸린 걸까, 만약 정말 비켜갈 수 없는 죽음 앞에 선 사람이라면 과연 돌출입수술을 하러 내게 올까?

환자의 사연이 궁금했다

환자에겐 최근 몇 년 간 너무 충격적인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났다고 한다.

자신과 동년배인 가까운 친족이 항암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악성 유방암으로 몇 달 만에 하늘나라에 갔다고 한다. P와 비슷한 젊은 나이였으니,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나이가 몇 살 위인 젋은 사촌오빠마저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충격에 빠져있는 환자 자신에게도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소장에 희귀종양이 발견된 것. 몸속에 혹덩어리가 발견되면 누구나 두려워하게 된다. 게다가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목도하고 나서 이내 자신에게도 병마가 찾아오면 삶과 죽음이란 것에 대해 깊은 고뇌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힘든 개복수술로 소장의 일부와 종양을 떼어내고, P는 일찍 유명을 달리한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의 영정사진을 떠올렸다고 한다. 환하게 웃는 젊디젊은 영정사진은, 조지훈의 시구처럼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웠을’ 것이다.

P는 자신이 찍어놓은 사진을 뒤져보았다. 환하게 웃는 예쁜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 예뻐져야겠다! 환하게 웃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 예쁜 영정사진 하나쯤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그 때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결심을 들은 그녀의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어머니는 P의 뱃속에 종양이 재발하는 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몸 아픈 애가, 예뻐져서 뭐하니?


P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 아프니까 예뻐질래.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예쁘게 활짝 웃으면서 그렇게 살다가, 마지막이 와도 웃으며 갈래.


그녀는 아이 둘의 엄마다. ‘아프니까...하고 싶은 거 다하다 갈래’...삶과 죽음을 초월한 것 같은 그녀의 말에 형언할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왔다. 10여 년 전, 저녁식사를 하며 “와인 한 잔 할까?”하시던 선친에게 “항암치료 중에 술은 안 되죠‘라며 매몰차게 굴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땐 아버지를 위해서였지만, 결국은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고 싶으신 걸 다 하시라고 할 것을...불현듯, P가 하고 싶은 걸, 제대로, 아름답게 해드리고 싶다는 사명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켈로이드가 있어요. 괜찮을까요?


그녀가 뱃속 종양 덩어리를 수술한 배의 상처을 보여준다. 수술 자국은 아직 젊은 그녀의 하얀 뱃살을 표독스럽게 움켜잡고 있다. 마치 독 오른 전갈처럼 시뻘겋다.

벌건 흉터의 궤적은, 가까운 사람을 잃은 슬픔, 자신의 삶도 언제 어떻게 마지막을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없이 나약해진 한 인간의 마음, 그리고 만약 죽음이 찾아온다면 활짝 웃는 영정 사진하나 남기고 아름답게 훌훌 떠나고 싶다는 초인적인 담담함이 뒤엉켜 만들어진, 하나의 단색 추상화 같았다.

-괜찮습니다. 안심하세요. 돌출입수술은 입 안으로만 하는데, 입 안 점막은 비후성반흔이나 켈로이드가 절대로 생기지 않습니다.


P는 곧 내게 돌출입수술을 받게 될 것이다. 그녀에게서 자신감을 앗아갔던 돌출입도, 웃을 때 많이 보이던 잇몸도 돌출입수술로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술 후 몇 달이 지나면, 그녀는 정말 사진관에 가서 영정사진으로 쓸 만한, 환하게 웃는 사진을 촬영할 것이다. P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영정사진이 될지도 모를 사진을 찍는 P의 마음은 어떨까? 그 때 터지는 사진관의 플래시가 어떤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보다, 그녀의 마음에 비추는 더 밝고 긍정적인 빛과 에너지가 되기를 빈다.

사진관을 나올 때쯤 그녀는 더 강하고 당당해져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녀를 찾아온 병마도, 육체와 영혼이 아름다운 그녀를, 밝게 웃으며 긍정의 힘으로 사는 그녀를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