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47회> : 교토에서 온 과자

<교토에서 온 과자>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이 따라다니는 일본은 현재 여러분의 마음속에 친구인가? 이웃인가? 적인가? 물론, 답이 더 복잡미묘할 수도 있다.


일본의 한국 침탈의 역사를 떠올리면서 심박수가 전혀 변하지 않는 한국인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야구나 축구 한일전을 하면, 절대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선수도 팬들도 열기가 뜨겁다. 반면에 한국인이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여행가고 싶은 나라 1위는 일본이다. 일본인이 코로나 이후 가장 여행가고 싶은 나라 역시 한국이라고 한다.  

필자가 하는 돌출입수술, 얼굴뼈수술 환자는 한국인이 100%에 가깝다. 단체 의료 관광 같은 것을 하지 않으니, 나를 찾아오는 외국인 환자들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20년 넘게 진료하는 동안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국인 친구가 있거나, 한국에서 유학중이거나, 한국으로 시집와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거나, 한국어를 배워서 우리 병원을 찾아낸 외국인들 중에는 중국인, 태국인, 베트남인, 캄보디아인, 홍콩인, 그리고 유럽과 호주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본토 일본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본인들의 성향이 한국인보다 보수적이어서? 일본 자국 내에서 얼굴뼈수술을 모두 소화할 수 있어서? 여하튼 그랬다. 

그렇지만, 일본하면 생각나는 몇몇 환자가 있다.

*  *  *

첫 번째 이야기.

바퀴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6살짜리 딸과 함께 병원 문을 들어선 그녀는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였다.

돌출입과 광대뼈, 사각턱이 모두 심했던 그녀는 인상이 꽤 사나워보였다. 얼굴 모양만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여하튼 만약 어느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다면, 백화점에서 점원을 무릎 꿇리고 점장 부르라고 소리치는 갑질 고객의 배역으로 캐스팅될 것만 같은...

단 3주 휴가를 내서 한국에 온 그녀의 유일한 목적은, 내게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수술을 받는 것이었다. 마음의 결심이 섰으니 긴 설명이 필요 없다며 수술날짜를 잡고는 돌아갔다. 일본 아이처럼 앞머리가 1자로 단정한 꼬마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수줍은지 홱 돌아서 엄마 품에 안긴다.

수술 날짜가 되었다. 수술을 앞둔 환자의 심리상태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아마 집도의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절박함, 불안감, 긴장감이 교차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술을 앞두고,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지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수술장에 들어서기 전, 일종의 고해(告解) 같은 것.

그녀는 일본으로 시집을 갔다고 한다. 본토의 일본인과 결혼해 딸 낳고 살다가, 불화 끝에 결국 남편이 집을 나가버려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워왔다고 한다. 마음이 아팠다.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피붙이라고는 딸밖에 없는 그녀로서는, 아픔을 나누고 위로 받을 친구도 친척도, 지인도 없었을 것이다. 워킹맘인 그녀는 아이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일본에 남아있어야 했다. 한국에 와서 경력단절이 되면 새로운 직장을 구할 처지가 못 되었기 때문이다. 싱글맘이자 직장맘으로 살아가는데 돌출입과 사나워 보이는 인상은 인간관계에서 더 버거웠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돌출입과 광대뼈, 사각턱수술이 끝나고 3주쯤 되었을 때, 다시 그녀가 캐리어를 끌고 딸과 함께 나타났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마지막 체크를 받기 위해서다. 한결 부드러운 인상과 온화한 미소가 빛이 났다. 수술 전 그녀의 미소는 돌출된 입과 드세 보이는 윤곽선에 감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병원 로비까지 배웅을 했다. 귀여운 꼬마에게 용돈을 좀 쥐어주었다.
“이름이 뭐니?” 물으니 대꾸도 안 해준다. 환자가 말했다.

-딸아이는 한국어를 못해요.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일까? 환자 자신은 한국어가 더 편하지만, 딸에게는 일본어로만 대화하며 키운다고 한다.

엄마의 나라 한국을 딸아이에게서는 지우고 싶은 엄마 마음. 이것이 가깝고도 먼, 한국과 일본의 간극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야기

얼마 전 내게 돌출입수술을 받은 남자 이야기다. 그가 우리 병원을 갑자기 찾아와 최대한 빨리 돌출입수술을 받게 된 사연도 꽤 재미있는 반전 스토리지만, 타병원에 대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쯤 되는 듯하여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돌출입인지 모르고 살다가 최근에 지인들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는 이 환자는, 더 젊은 시절엔 괜찮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조심성이 많은 그는, 과연 자신이 돌출입수술 대상이 맞는지, 돌출입수술을 해서 더 개선되는 것이 맞는지를 몇 번이고 재차 확인했다. 내 성형외과학적 판단은 확고했고, 결국 수술날짜가 되었다.

돌출입수술을 앞두고 환자가 해준 이야기.
일본과 무역업을 하는 젊은 사장이었던 그에게, 2019년경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사회적 파장이 들이닥쳤다. 그냥 회사 매출이 휘청거리는 그런 문제가 아니고, 반일 운동을 하는 모 단체가 환자의 사무실 출입문과 창문에 매국노라는 전단지를 붙이고, 사장을 포함한 직원들의 얼굴을 캡쳐해서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댓글테러를 자행했다고 한다.

그 트라우마로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정신적 충격으로 사무실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겨우 업무를 보다가, 결국 사무실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사실 처음 합니다. 부모님께도 말씀 못 드렸어요, 걱정하...실까봐...요

말끝을 흐리는 환자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맺혔다. 억울할 만도 했다. 반일, 친일을 떠나서, 단지 일본과 무역업을 한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인생에 이런 식의 트라우마를 주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환자분의 마음을 다독거려드렸다. 더 큰 위로이자 가장 큰 선물은 환자가 원하는 아름다운 수술결과일 것이다.

의사는 적군이든 아군이든 치료하는 것이 숙명이고, 조금 거창하지만 그것이 휴머니즘이다. 내 환자가, 친일이든 반일이든, 반미든, 친중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차별하지 않는다. 좌파든 중도든 우파든 역시 똑같이 최선을 다한다.

나의 본분은 내게 수술을 맡겨준 환자의 신뢰에 안전하고 아름다운 수술 결과로 보답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반목과 분열과 분노로 다른 사회구성원을 파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세 번째 이야기

일본에서 오래 산 재일교포 J양. 그녀의 한국말에는 일본 억양이 있었다. ‘네’라는 대답을 예로 들자면, 일본어 ‘하이’처럼, 보다 확고하고 절도 있게 ‘네’로 시작해서 날숨을 멎으며 ‘에’로 끝난다고나 할까? (나는 일본어를 못합니다만...)

교토에 살고 있다는 그녀는 오로지 돌출입수술을 하러 내게 왔다. 딱 12일의 휴가를 내서, 미리 전화로 수술날짜를 예약해놓고 입국했다. 12일이라는 시간은 돌출입수술 후 입안의 실밥을 뽑고 출국할 수 있는 최소 기간이다(어차피 녹는 실이어서, 실밥 안 뽑고 더 빨리 출국하기도 한다).

돌출입수술이 끝나고 11일째 실밥을 뽑은 그녀가 가방에서 뭘 꺼낸다. 돌출입이 사라져 너무 행복하다면서, 세 번 넘게 고개를 연신 숙여 감사를 표하며 무언가를 건네준다. 교토에서만 판다는 명물, 차노카(Cha No Ka)라는 과자였다. 

선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교토, 한국인, 일본인, 연애, 결혼...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불현듯 던진 나의 질문에, 이미 입매가 아름다워진 그녀가 약간의 일본 억양을 섞어 이렇게 말했다.

-네에, 저는 일.본.사.람.이.랑. 결혼할 거예요.

이미 결혼할 남자가 일본인인건지, 앞으로 일본인만 만날 건지는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선물 받은 과자를 한 입 깨물었다. 진한 교토산 녹차 맛의 부드러운 쿠키 사이에 얇은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있다. 녹차와 화이트 초콜릿이 잘 어울리지 않을 거란 생각은 편견이었다. 서로에게 스며들어 환상적인 맛을 냈다.
 
한 일본인의 아내가 되겠다는 그녀가 교토의 녹차 과자처럼 서로에게 녹아드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사랑하길 빈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