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5] [칼럼] 한상백 박사 칼럼 <31회> 옵세, 짱돌, 대박

[칼럼] 한상백 박사 칼럼 <31회> 옵세, 짱돌, 대박




 필자는 챙겨보지 못했지만 얼마전 굉장한 인기를 끌고 종영된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는, 한국대 의대와 같은 가상의 학교가 아니라, 서울대 의대라는 실존 학교를 등장시켰다고 한다. 필자는 아직도 가끔, 아직 답안 작성이 다 안끝났는데 시험지를 걷어가는 의대 시험의 악몽을 꾼다.

의대를 다닌 것이 30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선명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서울대 의대 학생 때 그리고, 서울대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할 때 자주 쓰던 속어 중에 흥미로운 몇가지를 떠올려보자면, 옵세, 짱돌, 그리고 대박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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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세란 영어 옵세시브(obsessive;강박적인)의 앞 두글자를 딴 것이다. 강박장애, 즉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라는 정신질환에도 이 옵세시브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반복해서 손씻기, 보도블럭 금 안밟기 등의 강박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질환이다.

의대에서 통용되던 옵세란 말은 주로 강박적으로 공부나 과제, 암기, 실험 등에 사로잡혀 몰두하는 성향의 사람을 가리킨다. 사실 서울 의대에 들어온 친구들은 대개 고등학교 때는 다 옵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옵세들중에 다시 또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옵세가 생긴다.

누구나 인정하는 옵세 옆에 가면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음의 여유와 영혼까지 뺏기는 기분이어서 멀찌감치서 피해다니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고의 옵세가 과 수석을 하지는 못한다. 서울 의대 과수석은, 강박적으로 학습 내용을 머리에 우겨넣는 심각한 표정의 소유자가 아니고, 공부 내용을 뇌 속에 체계적으로 보관하는 웃는 표정의 소유자이다. 애초에 뇌 구조가 다른 모양이다. 의대 공부에 있어서 옵세는 인간계의 최고봉이지만, 그 위에는 공부의 신이 존재하는 셈이다.

돌출입, 윤곽수술을 주로 하면서, 필자는 다름아닌 수술의 옵세로 살아왔다. 사실 기계적으로 돌출입수술만 한다면 30-40분만에도 뚝딱뚝딱 끝낼 수 있지만, 수술실력이 더 늘수록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지게 된다. 섬세한 지혈, 미세한 교합조정, 더 완성도 높은 디테일, 환자와 약속한 입매와 턱끝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작업, 감염방지를 위한 철저한 세척 등을 위해 의사의 예술가적인 집념과 정성, 안전에 대한 최선의 주의가 항상 필요하기 때문에 돌출입과 턱끝 수술시간은 점점 늘어나 이제 다시 한시간을 넘기게 되었다.

수술에 있어서 일종의 강박적 완벽주의에 빠진 셈인데, 사실 필자 스스로도 살짝 괴롭다. 이를테면 환자에게는 완벽한 대칭은 불가능하다고 말해놓은 상태로 수술에 들어가 놓고도, 정작 수술할 때는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대칭에 가깝게 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애를 쓴다. 환자가 기뻐하는 것이 필자의 큰 보람이기 때문이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아깝지 않다. 명화를 만든 대가는 빨리 그려냈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이제 돌출입수술을 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과연 공부의 ’신’처럼 옵세를 넘어 돌출입 수술의 의느님으로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늘 스스로 추스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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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은 일을 어떤 근거나 정당성 없이 엉터리로 또는 억지로 처리하거나, 말귀를 못알아듣거나 엉뚱한 결과를 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짱돌 인턴으로 낙인 찍히면 삽시간에 병원 내에 소문이 돌고, 결국 나쁜 평판 때문에 원하는 과에서 레지던트를 하기 어려워진다. 짱돌 레지던트도 있었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의 피검사 채혈은 내과 레지던트가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인턴인 필자에게 ‘그냥 니가 해’ 라고 하며 숨던 자다.

우스개 소리 하나. 짱돌 인턴들이 페어웰(한달의 근무를 끝낸 인턴 환송회)에서 꼭 부르는 노래는?

'나는 문제없어♬'

사실 짱돌이란 말은 이상한 환자나 보호자에게도 쓰인다. 환자나 보호자는 기본적으로 아픈사람이고 약자가 맞지만, 이를테면 응급실에 와서 배가 너무 아프니 마약성 진통제를 놔달라는 환자라든지, 만취상태로 응급실에 와서 당장 링거를 놓으라며 소란을 피우는 환자 등은 짱돌 환자가 맞다. 옆에서 심장발작 환자가 죽어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와중에 감기 걸린 자기 아이는 언제 봐줄거냐면서 항의하는 보호자도 짱돌 보호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이제까지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남, 녀, (혹은 성별이 애매한) 돌출입, 윤곽, 양악수술 환자와 만나왔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의사와 환자 모두 짱돌 환자, 짱돌 의사를 만나지 않는 것은 아주 크나큰 복이다. 의사와 환자로 만나는 것, 그것도 돌출입, 윤곽을 수술하는 의사와 환자로 만나는 것은 일생에 단 한 번 뿐이어야 하는 인연이다. 해피엔딩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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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이란 단어는 좀 신기하다.

적어도 필자가 전공의였던 시절의 S대학 병원 내에서는 대박은 항상 부정적인 의미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까지도 역시 S대 병원에서는 대박이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대 교수하는 친구를 통해 확인했다.

이를테면, 대박 환자란 대단히 어렵고 힘들고 복합적이며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환자이다. 또, 전공의 사이에서 ‘이번 주말 대박이야’는 설레는 약속이나 여행계획이 있다는 뜻이 아니고, 밤새 일하고 당직을 서야한다는 뜻이다. ‘월요일 7시 아침 세미나는 정말 대박이야’는 배울게 많고 알찬 세미나란 뜻이 아니고, 졸려 죽겠는데 정말 가기 싫은 세미나란 뜻이다.

그런데 사실 대박은 병원 밖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이고 좋은 뜻이다.

‘대박 나세요’는 좋은 일 많이 생기고 돈 많이 버시라는 뜻이고, 영화가 대박났다는 것은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는 뜻이다. 대박집은 장사 잘되는 집이고 그 반대말이 쪽박집이다.

한편, 돌출입 수술, 윤곽수술, 양악수술로 ‘대박’을 꿈꾸는 환자들이 있다. 한 방으로 인생 역전하겠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된 다음 꼭 갚을테니 무료수술을 부탁한다는 손편지나 이메일도 받아보았다. 그러나, 돌출입, 윤곽, 양악수술은 로또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돌출입, 양악수술을 하면 다 연예인이 되거나, 인생이 술술 풀릴 거라는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집 나간 남편이 돌출입수술을 하면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는 환자도 있었다. 수술해주지 않았다. 물론, 돌출입, 윤곽, 양악 수술을 통해 대박이 난 환자가 없지 않다. 그런 대박은 오히려 현실감 있는 기대를 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다.

돌출입으로 고민이 깊다면, 부디 짱돌 피하시고, 집념과 정성을 가진 옵세 만나시고, 대박나시길 바란다.

2019.05.07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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