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13] [칼럼] 한상백 박사 칼럼 <143회> 축하한다, 자랑해라

<축하한다, 자랑해라>



필자가 1994년경 S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 의사면허를 딴 뒤, 뜻한 바 있어 영국에서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을 할 때의 이야기다.

어쩌다가 학교 캠퍼스에서 금발의 여대생을 알 게 되었다. 처음에 그녀가 뉘 집 따님인지를 몰랐던 나는 그녀와 몇 번 마주치며 인사를 하고, 조금 낯이 익은 다음에는 캠퍼스를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한국 이야기를 포함해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꽤 스스럼없이 친해진 후 마침내 그녀에게 주말에 따로 만나자는 제안을 한다. 그런데, 그녀가 묘한 말을 남긴다. 전화는 잘 못 받으니 텍스트 즉, 문자메시지를 보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시키는 대로 순진하게, 어느 토요일 몇 시쯤 나와 함께 공연을 본 후 저녁식사를 하지 않겠냐는 문자를 보냈다. 한마디로 데이트 신청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명문가 귀족 집안의 외동딸이었다. 학생임에도 개인비서와 운전기사가 따로 있었고, 내가 보낸 핸드폰 메시지는 비서가 보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어느 극장에 몇 시 어떤 공연인지, 식사장소는 어디인지를 캐묻는 매우 사무적인 답문이 돌아온 것은 사실 그런 이유였다. 아마 그녀의 안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막 호감을 가진 여성이 하필 그렇게 비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니...아직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묘한 갈망과 호기심, 그리고 오기가 동시에 타올랐다. 데이트 신청이 아직 ‘심사 중’이라는 것은, 당시 근(거없는)자(신)감에 불타던 젊은 나를 더 애달프게 그리고 달아오르게 했다. 

고심하던 어느 날, 답문이 왔다. 답문은 꽤 길었다. 답문에는 데이트를 수락하는 조건으로 내가 해야 할 일, 해도 좋은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물론 영국식 영어로 온 문자였지만, 그 중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을 발췌해서 한국어로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희 비서진은 당신이 모니카 하워드 양과 공연 관람 후 저녁식사를 하겠다는 요청이 승인되고 허락되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축하드립니다! (느낌표가 있었다.)
-당신이 모니카 하워드 양에게 데이트를 허락받았다는 멋진 사실을 널리 퍼뜨리세요.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웹주소와 첨부할 해시태그도 알려드리니, 좋은 뉴스를 많이 알리세요.
-당신이 포스팅 시 복붙(복사해서 붙이기)만 하면 되는 문구를 다음과 같이 작성해놓았으니 가져다쓰세요: “내가 모니카 하워드 양에게 한 데이트 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곧 만나게 됩니다”
-단, 데이트 장소, 시간, 데이트 사진을 포스팅하면 안됩니다.

꽤 충격적이었다. 일단 축하를 받는 것 자체가 얼떨떨했다. 런던의 토요일 밤에는 수천, 수만 커플의 데이트가 있을 텐데, 데이트신청 한 번 받아들여진 것이 축하받을 일이라는 건, 그게 대단히 어렵고 드문 일이라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축하를 주위에서 내게 해주기도 전에, ‘너무 대단한 나와 데이트를 하게 되다니 정말 축하해’라고 말해주는 것은 클래스가 다른 자긍심이다. 게다가, 그런 멋진 일을 해냈으니 자랑을 여기저기 많이, 핫한 SNS에, 어떤 문장으로, 그것도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말해주다니...


 *  *  *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고, 빨리 데이트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 글 둘째 줄부터 여기까지는 다 허구다.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가 딱 맞다. 나는 지금 실제로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필자는 영국에 공부하러 간 적도 없고, 모니카는 실존하지 않으며, 비서실과 주고받은 문자도 없다.

그런데, 최근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소설이 아니다. 영국 귀족의 비서가 보내온 상상 속 그것과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비슷하다.

-저희 편집부는 당신의 논문이 우리의 미국 성형외과학회의 PRS학술지에 게재 승인이 난 것을 알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축하드립니다! (느낌표가 있었다.)
-당신의 논문이 게재 승인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널리 퍼뜨리세요.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웹주소와 첨부할 해시태그도 알려드리니, 좋은 뉴스를 많이 알리세요.
-당신이 포스팅 시 복붙(복사해서 붙이기)만 하면 되는 문구를 작성해놓으니 가져다쓰세요: "미국 PRS 학술지가 <돌출입수술과 턱끝수술 후의 연부조직 변화 : Soft Tissue Response following Genioplasty Combined with Anterior Segmental Osteotomy>라는 내 연구논문을 게재하기로 승인했어요. PRSJournal.com에서 만나 보세요"
-단, 논문 전체 혹은 초록(abstract)을 포스팅해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내게 기쁜 일인 것은 확실하다. 내 논문을 게재 승인해 준 학술지 측에서 내게 열렬히 축하를 보내준다는 건, 그게 대단히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정말 대단한 우리 학술지에 너의 논문이 게재되다니, 정말 축하해!’라는 뜻이다. 클래스가 다른 학술지다운 자부심이다. 게다가, 그런 훌륭한 일을 해냈으니 자랑을 여기저기 많이, 핫한 SNS에, 준비해 준 문장으로(ready-made Facebook post you can copy and paste), 그것도 지금 당장 시작하라(Start now, by spreading the good news about your article's acceptance)고 말해주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이건 실제 상황이다. 필자의 최근 논문이 미국 성형외과학회 학술지에 실린다.  

필자가 20년 이상 집중적으로 수술해온 분야인 돌출입수술과 턱끝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돌출입수술과 턱끝수술 후의 연부조직 변화>라는 영어 논문을, 내가 책임저자로 미국 성형외과학회의 공식 학술지인 PRS(Plastic and Reconstructive Surgery)에 투고한 후, 약 6개월간의 애타는 수정과 보완 그리고 기다림을 거쳐, 드디어 게재(출간)가 승인되고 실제로 위와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사실 1인 성형외과 개원의로서 논문을 쓰고 게재된 자체가 꽤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고, 논문이 통과된 미국 학술지의 영향력지수(IF: Impact Factor)가 무려 5.169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이기도 해서, 주위로부터 축하를 꽤 많이 받고 있다. 

얼굴뼈 골격을 이동했을 때 연부조직이 얼마다 이동하는지는 얼굴뼈수술을 하는 성형외과전문의들에게 중요한 화두다. 가령, 뼈가 잘 이동되어도 살이 제대로 안 따라가면 의미가 없으므로 그 이동 비율이 중요하다. 이번 논문은 한국인과 동양인에서 비교적 흔한 돌출입수술과 턱수술 시에 연부조직의 변화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보다 정확한 수술계획을 수립하고 최적의 아름다운 수술결과를 얻을 수 있는 토대와 최적의 수술방법을 제시한 연구다.

사실 개원을 해서 수술과 진료에 올인 하는 임상가(clinician) 의사로서 산다는 것은, 연구나 논문과는 담쌓고 산다는 것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1인 의사 병원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에 필자의 돌출입, 턱끝수술에 대한 연구 논문이 최고 권위의 미국 학술지에 게재되는 영광을 누리면서, 오랜만에 의과학자(medical scientist)로서 학문적 기여와 성취를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여러 의대 교수가 필자에게 축하한다면서, 자신들도 학술지 영향력지수(IF)가 4 정도만 넘어가도 투고한 논문 게재가 거절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현직 교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좀 실감이 났다. 아, 좀 대단한 일을 한 것이구나. 데이트 신청을 허락한 쪽에서 “너, 축하한다, 자랑해라.” 할만도 하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애초부터 필자의 논문이 게재 승인될 것이라는 복선(伏線)이 있었다. 

논문을 투고하게 되면, 그 논문의 승인여부는 동료평가(peer review)라는 과정을 거친다. 여러 명의 성형외과전문의들을 평가자(리뷰어)로 선정하여 무작위로 투고된 논문을 검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게 한다. 영향력지수가 높은 학술지일수록 그 평가가 매서운 게 당연하다. 양질의 논문만 걸러내야 학술지의 권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과 수정의 과정이 재차, 삼차 반복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수정한다 해도 거절될 수 있다. 데이트 신청이 거절되고 연락 그만하라는 통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리뷰어의 실명(實名)은 비밀에 붙여지는데, 긍정적인 암시를 준 것은 제 3번 리뷰어의 평가 내용 첫머리였다.

-당신의 아름다운 수술결과에 축하를 보냅니다(Congratulations for your beautiful results).

당시에는 여러 리뷰어들의 뼈 때리는 지적에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 저 문장을 다시 보니 감동적이다. 동양의 어느 먼 나라에서 온 논문 속 수술전후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축하를 보내준다는 것은, 장벽 없는 아름다움의 보편적이고도 강한 힘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나 권력이자 기쁨이다.

논문이 수록되기 전과 후 달라진 것은 없다. 나의 일상도, 수술법도, 환자를 대하는 진심도 바뀌지 않는다. 다만,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아 아름다워진 환자에게, 이렇게 말해볼까 한다.

-축하합니다. 자랑 많이 하세요.

물론, 나의 환자들은 수술 받은 사실을 결코 자랑하지 않고 침묵할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수술로 몰라보게 예뻐지고 나서 평생 그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2022년, 한국 및 대만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


#돌출입#ASO#돌출입수술#돌출입교정#치아교정#발치교정#입툭튀#잇몸돌출#거미스마일#양악#양악수술#무턱#양악전돌증#양악치조전돌증#전방분절절골술#턱끝수술#광대뼈#사각턱#광대뼈수술#사각턱수술#윤곽수술#안면윤곽#한상백#서울제일성형외과#성형외과전문의#서울대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