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56회> : 북규슈 행

<북규슈 행>


5월 말에 일본, 키타큐슈(북규슈)에 다녀왔다. 15차 한국-일본 성형외과학술대회에, <돌출입수술과 윤곽수술의 20여 년 임상경험>이라는 제목의 학술 발표를 하기 위해서다. 고쿠라가 일본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의 도시인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내가 아는 많은 의대 교수들은 세계 각국의 학회에 참석하느라 100만마일 이상의 거리를 비행한 밀리언 마일러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상파울루 한군데를 목적지로 남미여행을 계획하기는 쉽지 않지만, 상파울루에서 중요한 학술대회가 열린다면 기꺼이 참석하게 된다

먼 곳도 ‘기꺼이’ 참석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학회는 발표도 하고 강연도 듣고 공부도 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훌륭한 의사들과 친분을 쌓고, 남는 시간에 그 도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관광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부부동반을 하기도 하고, 학회 측에서 아예 하루 관광 혹은 골프 코스를 준비해놓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모든 대학병원은 내가 아는 한, 소속 의대교수의 학회 참석, 체류 비용과 비행기 왕복 티켓 비용, 또는 그 이상을 지원해준다. 휴진한다고 월급을 공제하지도 않는다. 교수의 학문적 발전과 성취를 지원해주는 것이 곧 대학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고 후학을 교육, 양성하는 데에도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필자와 같은 개원의는 아무도 비용을 지원해주지 않는다. ‘내돈내산’ 해야 한다. 또한, 며칠 동안 병원을 비우면 그만큼 내 환자를 볼 수 없는 진료공백이 생긴다. 그래도 제의 받은 학술 발표를 마다하지 않고 가는 것은 그것이 금전보다 더 중요한 명예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성형외과 의사가 번갈아 돌출입, 윤곽수술에 대한 발표를 하는데, 혹여 한국 의사의 수술 결과가 영 별로인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한국, 일본 성형외과 의사들의 학술대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제 3의 언어인 영어로 진행된다.

주어진 강연시간이 내겐 항상 부족하다. 나름 속사포 영어로 발표해도 그렇다. 돌출입수술에 대해 잘 모르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발표할 때는 기초부터 설명해야 하니 더 그렇다. 케이스 숫자가 너무 많은 것도 한 이유다. 어떤 케이스는 보여주고, 어떤 케이스는 못 보여주는 게 너무 아쉽다. 대표적인 증례 몇 개만 보여주면, ‘평생 한 몇 십 케이스 했나보군.’ 하는 오해를 사는 것도 싫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돌출입수술 수천 케이스 중에, 얼굴을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환자 사진을 최대한 많이 발표용 슬라이드에 넣어 놓는다.

연단에 올라가서 청중에게 발표를 하는 것은 일종의 즐거움이다. 영어로 발표하는 것도, 제한 시간에 맞추는 것도, 청중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즐겁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머니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 이끌고 간 곳은 ‘웅변 학원’이었다. ‘맹모삼천지교’도 사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야, 우리 이사 가려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하며 먼저 묻고 상의하는 게 더 민주적이었을 것이다. 묻지도 않고 아들을 그 학원에 데려간 건 어머니의 선견지명이었을까?

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인데, 학원에서 배운 대로 목 쉬어가면서 원고를 달달 외워서, 각종 교내, 교외 웅변대회에 나가 많은 상을 휩쓸었다. 꽤 많은 청중 앞에서, 시선을 분배하며, 원고를 안 까먹고, 정확한 발음으로 호소력 있게, 시간에 맞춰 끝내는 게 핵심이었다. 그 때 대회에 응원하러 와주었던 동창 친구들이, 만나면 아직도 그 얘기를 한다. 만약, 지금 같았으면 누구 맘대로 애 수업을 빼고 박수부대로 보냈냐고 학부모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  *  *

학술 발표를 잘 끝내고, 일본 의사들의 질문에도 성의껏 답해주었다. 여유 시간에 북규슈의 음식과 거리, 사람들과 문화, 바닷바람과 산내음도 느껴보았다. 그리고 이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후쿠오카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두 명의 대학병원 의대 성형외과학 교수와 함께 타게 되었다. 남자 교수는 친한 후배였고, 여자 교수는 학회에서 처음 뵌 분이다.

그 여교수님의 질문.

-한 원장님, 돌출입수술 후 사진이 진짜 예쁘던데, 그게...잘 된 케이스만 보여주셔서 그런 것...아닌가요?


도발적이었지만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아아, 성형외가 전문의가 내 학술 발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건, 하물며 일반인들은 더더욱 ‘저 사진들처럼 다 예뻐지는 건 아닐 거야.’ 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허헛, 그런 게 아닙니다. 그 사진들 보다 더 예뻐진 사람이 훨씬 많은데...그런 케이스를 못 보여줘서 오히려 속상하죠. 초상권을 위임받아 얼굴공개가 되는 환자만 제한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사실이 그렇다. 실제로 현직 모델, 가수, 배우이거나, 유튜버, 크리에이터, BJ 등 방송인, 혹은 연예인 지망생들의 경우, 돌출입수술, 윤곽수술 후의 모습은 더 놀랄 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얼굴공개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성형전후가 공개되는 순간, 연예인, 방송인으로서의 경력에 흑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공개할 수 있는 전후사진은 그야말로 평범한 우리 이웃, ‘일반인’의 케이스다. 사실 나는, 그게 더 다수의 행복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굴 크기는 조막만 하고, 눈은 그 얼굴의 반만 해서 이미 만툭튀(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얼굴인데, 유독 입툭튀(입이 툭 튀어나옴)를 가진 환자가 있다고 치자. 그런 환자를 돌출입수술해서 진짜 연예인처럼 만드는 일은 내겐 사실 어렵지 않다. 입만 빼면 이미 연예인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예쁘다는 말 한번 들어본 적 없거나, 돌출입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외모와 마음까지 치유해주는 일이 한결 더 보람 있다.

한편, ‘다 예뻐지는 건 아닐 거야’라는 의심 안에는, 돌출입수술을 해서 오히려 더 못해진 경우, 망친 경우도 있을 거라는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더 나아가, 수술 전후 사진을 보정한 건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겠다. 과연 그럴까

첫째, 돌출입수술은 눈대중으로 하는 수술이 아니다. 그동안 돌출입수술을 계획하고 시행한 수천케이스의 분석 자료를 통해, 어떤 돌출입에서 어느 정도 양을 집어넣으면 이상적인 입매가 나오는지를 미리 예측하고 하는 수술이다. 땅 짚고 헤엄친다는 게 이런 것

모든 수술이 합병증 가능성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너무 집어넣어서 합죽이를 만들거나, 덜 집어넣어서 망치기는 어렵다. , 망치지 않는 것을 넘어 정말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채 1 mm 미만의 미학이고, 완성도를 향한 예술혼이며, 하루아침에 이루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 치료 효과를 부풀리는 것은 기망 행위다. 황당하게도, ‘전’ 사진을 보정해서 더 ‘못생기게’ 만들기도 한단다. 한심하고 참담한 일이다. 보정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전후 사진 모두 화장(메이크업)을 하지 않든지 화장 정도를 비슷하게 맞추고, 동일한 배경, 각도, 조명하에서 동일한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또한, 보정 불가능하고 더 신뢰할 수 있는 움직이는 영상이나 소위 움짤을 학회 발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공자님 말씀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느 교수의 악의 없이 순수한(?) 질문을 통해 또 한 가지를 깨달은 여정이었다.

, 나의 수술 케이스를 보는 사람이 품을 수도 있는 잠재적인 의심의 존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의심의 출발점이 ‘돌출입수술 후의 결과가 너무 예뻐서...’라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한편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저 사람은 너무 항상 반듯해서, 뭔가 아마 변태 같은 면이 있을 거야’ 라든지, ‘이 김밥은 너무 맛있으니 아마 마약을 넣었을 거야’와 비슷하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수술 결과가 좋다는 기분 좋은 말만 기억하기로 하자. 우리가 탄 택시가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반백의 일본 기사가 조수석 문을 열고 나와 순간 놀랐다. , 운전석이지...차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일일이 꺼내 주고는 연신 아리가토 고자이마시타 하며 인사를 한다. 고마운 건 우리인데...

비행기 창밖으로 후쿠오카가 멀어지고 북규슈의 해안선이 보인다. 소설가 장류진(내 생각에 그녀는 천재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라는 단편에서, 후쿠오카로 초대받은 지훈을 화자로 이렇게 썼다.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눈앞에 유카타를 입은 그녀. 그리고 그녀와 나누는 대화. 맞아, 나는 이 대화를 늘 그리워했었다. 예뻐서 지유 씨를 좋아한 게 아니었지만 지유 씨는 결과적으로 예뻤다.


결과가 예뻐서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발표는 결과적으로 예뻤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자.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 2019, 2022, 2023년, 한국 및 대만, 일본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