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손
'나의 왼발'이라는 크리스티 브라운의 자전적소설은 1991년 영화화되기도 했다.
나의 왼손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초등학교 때 ‘로라장’이 유행했다. 복고 바람을 타고 요즘 다시 롤러스케이트장이 생겼다고 한다. 인라인스케이트와는 조금 다르게, 앞에 두 개, 뒤에 두 개의 바퀴가 2열 종대로 배열된 것이 롤러스케이트다.
지금도 45년 지기 절친인 동네 살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친구와 같이, 아주 조그만 롤러스케이트장에 자주 갔다. 필자와 친구는 정말 미친 듯이 경쟁적으로 빠르게 활주했다. 그 ‘로라장’은 우리가 접수한 걸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우리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귀여운 여자 아이들에게는 말은커녕 눈도 못 마주쳤다. ‘보라’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가장 예뻤다. 이름을 직접 물어본 적도 없다. 그네들끼리 이름을 부를 때 들어서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 땐 정말 순진했었다.
보란 듯이 코너를 돌다가 주욱 미끄러졌다. 오른 손을 짚고 넘어졌다. 아픈 손목이 팅팅 부었지만, 며칠 있으니 괜찮았다.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가끔 시큰거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대입시험 공부할 때도 글씨를 밤새 쓰면 손목이 아팠다. 이게 골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넘어진 후 10년이 지나서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캡쳐 후 필터적용)
손목뼈 8개 중에 하나인 주상골의 골절은 넘어지면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어 손목이 뒤로 젖혀질 때 잘 발생하는 골절로서, 손목뼈 골절 중 가장 빈도가 높으며, 골절이 되었어도 증상이 별로 심하지 않아 방치하는 경우가 많고, 무혈성괴사로 이어지기도 하는 문제적 질환이다.
필자에게 바로 그 무혈성괴사가 와있었고 필자는 S대 의대 학생이었을 때, 모교 대학병원에서 장골 이식수술을 받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손목뼈가 골절된 것을 모르고 10년이나 방치하다가 두 동강 난 손목뼈의 한쪽이 살지 못하고 죽어서, 내 골반뼈를 채취해서 손목뼈 죽은 곳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오른 손 손목에 깁스를 하고 6주를 지내면서, 필자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우선 노트필기를 왼손으로 해야 했다. 밥도 왼손으로 먹었다. 젓가락질도 왼손이었다. 운전도 왼손으로만 했다. 당시 사촌형이 타던 고물 자동차를 헐값에 넘겨받아서, 영어, 수학 과외해서 번 돈으로 기름 넣고 다녔는데, 그 차는 요즘 같은 오토매틱이 아니고 수동 기어(gear)와 클러치가 있는 차였다. 오른손은 팔꿈치에서 손바닥까지 깁스해서 사용할 수 없었고, 왼손은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그럼 왼 발로 클러치를 누를 때 기어를 바꾸는 건 어느 손이 해주었을까? 그냥 왼손이 다 했다. 친구들은 내 차를 타면 경악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운전대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학동창 친구들은, 필자가 왼손만으로 기어 바꿔가면서 운전했던 그 차에 탔던 이야기를 안주거리로 삼는다.
6주에 깁스를 풀었지만 오른손은 아직 자유롭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몇 년간 오른손이 부족한 것을 채워주기 위해 왼손을 쓰면서 모르는 사이에 왼손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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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20년간 돌출입수술을 한 환자들 중에는, 돌출입수술만 했던 환자보다 돌출입수술과 동시에 턱끝수술, 사각턱수술, 그리고 광대뼈수술을 같이 한 환자가 더 많을 것이다.
필자는 환자의 왼쪽 사각턱절골 수술을 할 때, 오로지 왼손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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