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41회> : 철자법


<철자법>





“A 팀장이 보고서 때문에 엄청 화냈데! 구지 철자법을 문제 삼는 것은 어의없는 일 아냐?”

혹은,

“빨리 낳으시길 빕니다.”

라고 누군가 SNS에 썼다면,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화냈데’, ‘구지’, ‘어의’ 그리고 ‘낳으시길’ 때문에 일단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사람 명단에 올려놓게 될 것 같다.

‘화냈대’를 잘못 쓰는 것도 그렇지만, ‘굳이’를 ‘구지’로 쓰는 것이 의사인 필자에게 더욱 거슬리는 까닭은, 그것이 ‘(보통,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남성 성기의 포피 부근, 혹은 여성의 외음부에 박리상피나 지선의 분비물이 혼합되어 치즈모양으로 축적된 것으로서 악취가 있고 염증에 취약함’으로 정의되는 의학용어, 구지(垢脂; smegma)와 같은 철자이기 때문이다.

어의는 궁궐 내에서 임금이나 왕족의 병을 치료하던 의사[御醫], 혹은 임금의 옷[御衣], 혹은 단어나 말의 뜻[語義]을 가리키니, ‘어의 없다’는 말이야말로 정말 어이없다.

빨리 낳으라는 것은, 조산(早産)을 하라는 것이다. 일단 조산아를 낳으라는 것은 덕담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분만 예정일을 넘겨서 걱정인 산모에게는 빨리 낳으라고 할 수야 있겠지만 그 마저도 좀 이상하다. 빨리 낳고 싶다고 힘주면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게 낳으시길 빌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 빨리 나으라는 덕담을 해주면서 기필코 ㅎ 받침을 넣는 사람들이 꼭 있다.

영어에서도 헷갈리는 스펠링을 가진 단어들이 있다. 학창시절, 그런 단어만 모아서 달달 외웠었다. 가령 실루엣이라는 외래어 철자는 silhouette인데, 아마 주위에 공부깨나(꽤나 아니고 깨나가 철자법에 맞다) 했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정확히 맞히는(맞추는 아니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를 즐겨보던 시절이 있었다.
여주인공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 분)는 자신이 동거했던 전 남친 미스터 빅과 늘씬하고 우아한 25살 나타샤와의 결혼식에 초대받고 고민 끝에 참석하기로 한다. 성대한 결혼식이 끝나고 캐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미스터빅을 잃은 깊은 상실감과 슬픔에 잠겨있다. 그러던 중 나타샤로부터 결혼식에 참석해주어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찬찬히 편지를 읽다가, 캐리는 갑자기 깔깔 웃으며 일순간에 슬픔을 털어낸다. 나타샤가 편지 속에서 there의 철자를 their로 잘못 쓴 것을 발견하고서다.

캐리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설령 그것이 미스터 빅을 빼앗긴 절망감과 나타샤에 대한 질투심을 극복하는 ‘비정상적인’ 경로였다고 해도, 그 어이없는 철자의 실수를 보고 웃음이 나는 것과, 그 웃음으로 인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캐리의 극중 캐릭터는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이다. 노트북 앞에 앉아 사랑과 우정, 뉴욕 라이프에 대한 칼럼을 쓰는 그녀에게 철자법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직립보행처럼 기본이지만 필수다.

칼럼니스트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필자의 직업은 얼굴뼈 수술하는 성형외과 전문의지만, 남의 글을 읽다 보면 틀린 글자가 너무 잘 보여 약간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모른 척 그냥 넘어간다. 지적질을 하는 ‘빨간펜’ 선생님은 환영받기 어렵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누군가 애당초 철자를 잘못 알고 쓰거나 여기저기 오타가 보이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물론, 좋은 의미로서는 아니다. 아예 오인하고 쓴 철자는 지성이 없어 보이고, 실수로 만든 오타는 성의가 없어 보인다.

‘굳이’를 ‘구지’로 쓰는 사람은 철석같이 바로 쓰고 있다고 믿고 있다. 스스로 다시 읽어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그게 맞다고 오인하고 있어서다.

비둘기를 바둘기로 잘못 쓴 오타는 머리의 문제가 아니고 손의 문제다. 자판에 타이핑을 하다가 실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타가 있다면 다시 읽어보고 수정을 했어야 한다. 그냥 공개해 버리는 건 성의 부족이다.

이 쯤 해서 갑자기, 내가 지금 쓰는 이 글에는 오타가 하나도 없는 건지 좀 두려워진다.

 

(사진출처 : 알바몬, SBS연예뉴스)

  *   *   *


돌출입과 돌출입수술에 있어서 환자들이 듣고 보았다는 정보들을 살펴보면, 그 안에도 잘못된 믿음을 가진 머리와, 정교하지 못한 손의 오류가 존재한다.



첫째, 잘못된 믿음

중등도 이상의 골격성 돌출입인데, 교정을 하면 ‘약간은’ 좋아진다고 믿는 치과의사와 환자들이 있다. 하긴, 단 1 mm 가 들어가도 약간은 좋아진 것이다. 약간 좋아진다는 믿음도, 약간은 좋아졌다는 믿음도 자유다.

그러나, 약간 좋아져서 한국인 평균이 되면 무엇 하나? 미용성형외과학적인 목표는, 평균이 아니고, 평균 그 이상이다.


한편, 중등도 이상의 돌출입을 가진 환자에게, 턱 끝에 지방 혹은 실리콘만 집어넣으면 돌출입이 가려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돌출입수술이 아닌 양악수술을 해야 한다고 믿는 전문가들도 있다. 잘못된 철자법을 맞는 것으로 평생 오인하고 사는 사람들처럼, 무턱수술이나 양악수술만이 정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돌출입수술은 생소하거나 오답처럼 느껴질 것이다.

돌출입수술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수술이다. 일반인에게는 물론이고, 교정/보철을 주로 하는 치과의사들, 그리고 눈, 코, 가슴, 지방이식, 무턱시술을 주로 수술하는 성형외과 의사들조차도 돌출입수술의 존재나 방법을 잘 모른다. 특히 치과에서, 교정으로 안될 만큼 돌출입이 심하니 양악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환자를 많이 본다. 돌출입수술에 대해서 모르는 의사와 치과의사가 많다는 방증이다.

이것은, 필자만 ‘굳이’가 맞다고 주장하고, 주위에 더 많은 사람이 ‘구지’가 맞다고 우기는 상황과 비슷하다. 중등도 이상의 돌출입 환자가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는데 전부 치아교정 혹은 필러나 무턱수술, 혹은 양악수술 이야기만 하고, 오직 필자만 돌출입 수술이 정답이라고 말하면, 필자가 오히려 소수의견이 되어 버리고 환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기본적으로 양악수술은 주걱턱을 개선시키는 수술법이다. 돌출입을 넣는 수술은 돌출입수술, 즉 전방분절절골술이다.
 
돌출입에 양악수술을 적용하게 되면, 상악은 덜 들어가고 하악은 더 들어가게 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즉, 인중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면서 무턱은 불필요하게 더 무턱이 될 우려가 있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양악수술이 아래턱(주걱턱)을 회전형으로 뒤로 돌려 넣는 수술법이기 때문이다.   
 


둘째, 오타를 만드는 손

사람의 손은 AI가 아니다. 자판을 두드리다보면 오타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매끄러운 결과물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돌출입수술도 그와 같다. 수술 전 계획은 4 mm만 입을 집어 넣는 것인데, 막상 수술할 때 7 mm를 과도하게 절골해버리는 흙손이라면, 결국 오타 투성이의 답안지처럼 엉터리 결과가 나오게 된다.

돌출입 수술을 하면 합죽이가 되니 무조건 양악수술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일종의 양악수술 신봉자다. 그 중 젊은 시절에, 적당히 넣었어야 할 돌출입을 과도하게 넣는 바람에 누가 봐도 합죽한 할머니 입을 만든 어떤 의사는, 언젠가부터 돌출입수술과의 인연을 끊고 양악수술을 신봉하게 된 듯하다. 그 환자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사실, 애초부터 돌출입수술 자체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넣는 양을 조절하는 손의 문제다. 젓가락질 자체에는 죄가 없다. 젓가락질에 서툰 손이 문제다.

만약 수술계획 자체가 과도했던 게 화근이라면 그 계획을 수립한 교정치과의사도 공동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분석이 엉망이어도, 경험 있는 집도의라면 직관적인 판단으로 수정을 했어야 한다.

그 애처로운 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름 아닌 필자가, 선배 의사와 함께 그 환자의 재수술을 해주게 되었다. 과도하게 들어간 돌출입을 다시 앞으로 빼내고 뼈이식까지 했다. 첫 선택이 그만큼 중요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돌출입수술만’ 하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돌출입수술을 하면서 턱 끝을 방치하면, 입을 과도하게 넣지 않았는데도 얼굴이 길어지고 합죽해보일 수 있다. 즉, 돌출입수술 시에는 미학적으로 거의 반드시, 턱 끝 길이와 위치를 동시에 조절해야 한다. 앞 뒤 모두 떼어내고, ‘돌출입수술을 하면 반드시 합죽해진다.’ 라고 말하는 건 재앙을 만들어냈던 실패의 고백이자 괴담이다.


 *   *   *


누군가가 철자법을 잘못 알거나 오타를 남발하면 그 사람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최소한 남한테 피해는 주지 않는다. 누군가 직언을 해주면 바로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가 적절한 치료법을 잘못 알고 있거나 오진을 남발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된다. 잘못된 치료나 수술을 이미 해버리고 나서 실패를 깨달았을 때는 다시 바로잡기도 어렵다.

‘굳이’를 ‘구지’로 쓰는 사람을 보면 그냥 안쓰럽게 웃고 말지만, 심한 돌출입인데 교정하면 다 된다거나, 턱 끝만 보강하면 커버된다거나, 돌출입이니까 양악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그냥 웃고 넘기기 힘든 이유다.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틀린 철자법은 없는지 재삼 확인하게 된다.
이제 수술장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환자를 위해 한 치의 어긋남이 없도록 머리와 손을 풀(full) 가동할 것이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2022년, 한국 및 대만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

#돌출입#ASO#돌출입수술#돌출입교정#치아교정#발치교정#입툭튀#잇몸돌출#거미스마일#양악#양악수술#무턱#양악전돌증#양악치조전돌증#전방분절절골술#턱끝수술#광대뼈#사각턱#광대뼈수술#사각턱수술#윤곽수술#안면윤곽#한상백#서울제일성형외과#성형외과전문의#서울대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