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4]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34회> : 도시락 이야기

<도시락 이야기>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칼럼에 인용한 적이 있다. <밥 먹고 수술해드리겠습니다> 라는 칼럼에서다. 

점심 메뉴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오히려 괴로워서, 요일마다 알아서 메뉴를 바꿔주는 한식도시락을 시켜서 먹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점심 먹고 수술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돌출입수술을 받는 환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묘한 효과가 있다고도 썼다.

10년째 그 집에서 도시락을 달랑 한 개씩만 배달시켜 ‘혼밥’을 하고 있다. 굳이 도시락을 원장 것 한 개만 시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직원들과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고 치면 어색하기도 하고 직원들도 불편할 것이다. 자제한다고 해도, 원장의 아재개그나 꼰대스러움으로 인해 직원이 급체할 수도 있다. 직원이 아프면 피해는 환자에게 갈 것이다. 간호직원과는 수술대에서 마주 대하는 것이 제일 낫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앞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 둘째, 직원들의 입맛은 다양하기도 하고 메뉴 선택의 자유가 (나와는 다르게) 여전히 즐거운 모양이다. 게다가 어느 직원은 가끔 아예 점심을 거르거나, 준비해 온 닭가슴살로 점심을 때우기도 하(는 것으로 추측되)므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할 수가 없다.

그 단골 도시락 집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도시락 한 개는 더 이상 배달을 못해주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결국 도시락 한 개 판매에서 나오는 이윤과 배달료 사이의 수지타산이맞지 않아서일 것이다. 실제로 그 날부터 도시락은 더 이상 배달되지 않았고, 다른 음식을 주문해 먹고 수술에 들어갔다. ‘음, 오랜만에 내 맘대로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재미있군.’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악마의 유혹이란 것을 깨달았다. 하루 이틀 메뉴를 고민하다보면 또 괴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요즘은 음식점 배달앱으로 직접 다양한 음식을 시킬 수 있고 필자도 종종 그 편리를 누리고 있지만, 병원에서점심으로 한 개를 시키는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메뉴 선택의 자유라는 저주’로 변한다. 게다가 최소 주문 금액이 있어서 쓸 데 없이 많이 시켜야만 하니 버리는 음식도 늘고, 배달비가 음식값을 상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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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그렇게 호화로운 메뉴가 아니라고 해도 꿀맛이었다. 성장호르몬이 왕성했던 시기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소풍 날 김밥 도시락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소세지가 아니고, 달콤한 간장에 맛깔나게 조린 고기가 들어 있는 큼지막한 엄마 표 김밥이었다(김밥에는 역시 오렌지 맛 환타다). 물론, 엄마 도시락이 맛없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긴, 엄마이기만 하면 모두 요리를 잘 할 것이라는 것은편견이다.

옛날이야기를 여기서 멈추는 게 낫겠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지만, 요즘 다시 유행하는 ‘복고’풍이다 생각하고 조금만 참아주시면 의외로 재미있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학교 졸업자를 용서하시길).

온실 같은 사립 초등학교에서 화초처럼 자란 필자는 중학교에 가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반 아이들 중 대부분은 아무렇지 않게 쌍시옷이 들어간 욕을 해댔고, 숙제는 아침에 와서 남의 것을 베껴서 했다. 욕은 하면 안되는 것이고, 숙제는 집에서 해오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어린 나는 갑자기 험지에 버려진 위협감을 느꼈다. 

스팀 라지에타{라디에이터]가 있었던 초딩 교실과 달리, 교실 한가운데 커다란 연통이 달린 조개탄 난로가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난로 위에 겹겹이 자기 양철도시락을 올려놓는 일이었다. 누군가 한 명은 그 도시락의 위치를 쉬는 시간마다 바꿨다. 제일 아래 있는 도시락의 밥이 타지 않도록하기 위해서다. 보온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던 나는 한 번 더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어머니께 양철 도시락으로 바꿔달라고 졸랐다. 

급식을 하는 요즘 학교에서는 ‘난로와 양철도시락’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잊혀진 풍경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도시락으로 느꼈던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만큼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조미료 없이 열심히 만들어 배달하는 홈메이드 스타일의 도시락을 10년째 먹어온 것은,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다음과 같은 면에서다. 

첫째, 필자 병원의 공간와 인력은 오로지 환자를 위해서 할애된다.

병원에 주방과 요리사가 있다면 도시락을 시켜먹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 병원에는 환자나 직원을 위한급식 시설이 없다. 어차피, 환자는 금식이다. 즉, 얼굴뼈, 돌출입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후 하루 입원해 있는 동안 공복상태(NPO;null per os)를 유지해야한다. 환자를 위한 급식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급식시설은 직원과 원장을 위한 것일 텐데, 중, 대형 병원처럼 직원 숫자가 많지도 않다. 이 정도 규모에서, 식당 공간이나 주방 인력을 따로 두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공간과 인력이 환자가 아닌 직원을위해서 할애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둘째, 점심 메뉴나 고민하고 싶지 않다.

메뉴 선택의 자유가 싫은 것이 무슨 결정 장애가 있어서는 아니다. 일과가 모두 끝난 저녁 시간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매일매일 다른 메뉴를 아주 잘 고를 수 있다. 가령 오늘이라면 라자냐와 이탤리언 레드와인 한잔이 좋겠다.


필자는 아침부터 수술하지 않고, 점심을 먹은 후에 수술에 들어가는 게 루틴이다. 돌출입, 턱끝, 광대뼈, 사각턱 수술을 앞둔 점심시간 즈음, 필자 뇌의 90% 정도는 환자마다 다른 해부학적인 조건, 수술을 어떤 식으로해야겠다는 마스터플랜, 환자의 취향과 요청사항, 환자를 수술해서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설렘, 몰입을 앞둔즐거움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환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생일대의 수술인데, 집도의가 기껏 점심 메뉴나고민하는 것은 사치다.

게다가, 다른 환자들도 상담하고 진료하다 보면 점심 식사를 따로 주문할 여유가 없다.

셋째, 환자를 위한 시간이 절약된다.

환자의 전신마취가 이루어지고 이제 수술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배달앱으로 시킨 음식이 아직 배달 중이라면, 속이 허한 동시에 속이 탈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아침도 안 먹는 집도의가 점심도 걸러서 저혈당 상태로 수술에 들어오는 것은 싫을 것이다. 또한 집도의가 점심 식사를 기다렸다가 먹는 동안 자신이 전신마취 상태로 방치되는 것도 싫을 것이다.

단골집의 도시락은 항상 조금 일찍 이미 배달되어 있다. 진료하다보면, 식어서 맛이 없을지언정, 환자 진료나수술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넷째, 행여 배탈이 나면 환자에게 해가 된다.

10년간 단 한 번도 그 집 도시락을 먹고 속이 불편하거나, 체하거나, 배탈 혹은 식중독으로 고생한 적도 없으니, 적어도 그 집 도시락을 먹고 나서 수술할 때 안절부절할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길게 보면10년간 같은 점심을 먹고 별 탈 없이 건강했으니, 고맙기도 하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음식을 여기저기서 시켜서 먹는 것은 집도의가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약간의 리스크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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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도시락이 더 이상 배달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환자 진료에도움이 되었던 면도 역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고민하다가, 도시락 집에 전화를 했다.

-사장님, 어떤 사정이신지는 잘 알겠지만, 그래도 10년 단골을 갑자기....

사장님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다.

-그럼, 두 개 시키면 되겠죠? 한 개는 어차피 버려야하니, 그냥 두 개 값으로 한 개만 배달해주세요. 버리면아까우니까요.

환자 진료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두 배를 내도 아깝지 않았다.

잠시 말문이 막힌 사장님은 그 다음에 어떤 말을 하셨을지 상상해보시길...

이렇게 해서 결국 지난 10년간 똑같이 먹어온 점심 도시락을 앞으로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특별히 맛있어보이지도 않는 도시락을 같은 곳에서 10년째 시켜먹는 게, 실장과 간호직원들 모두 이해하기 힘든 눈치다. 가끔, 혹시 같이 도시락 시켜먹지 않겠냐고 물어보면 손사래를 친다. 이번 기회에 다른 식당으로 갈아타시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도 그 집 도시락을 먹고 돌출입수술을 했다. 합죽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수술해달라고 신신당부했던 주부였다. 점심 먹고 들어간 수술이 예상보다도 일찍 잘 끝나서,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대낮의 봄햇살을 느끼며 여유롭게 이 칼럼을 쓰고 있다.

엄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처럼, 환자에게 하는 돌출입수술, 윤곽수술에도 항상 정성을 쏟아 왔고, 앞으로도그럴 것이다. 조미료 안치듯이 불필요한 수술은 권하지 않고, 신선한 재료를 쓰듯이 깔끔하고 건강하게 수술할 것이다. 화려한 맛은 금세 질리듯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며 수술하려고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메뉴나 맛을 필자가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바뀌는 도시락 메뉴와 달리, 돌출입, 윤곽수술 환자는 한 번 수술한 얼굴로 평생을 산다. 값싼 비용에 얼굴을 맡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환자의 입맛에 맞는 아름다움이 존중받아야 마땅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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