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8]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26회> : 장비발

<장비발>



어느 외과의사(surgeon)가 SNS에 자신의 최애(最愛) 수술기구라면서 한 세트의 기구들을 사진 찍어 올린 것을 보았다. 수십 가지의 기구마다 거의 다 금도금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고가이고, 같은 세부전공자들이 부러워할만했다.

사진출처 : 구글


옷발은 ‘옷맵시’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옷발, 말발, 약발과 같은 단어는 표준 국어 대사전에도 나온다. 이 때 ‘발’은 기세, 힘, 효과의 뜻을 내는 접미사라고 한다. 운발, 머릿발, 화장발처럼 쓰인다. 그런데, ‘장비발’은 사전에는 없다. 운동이든 수술이든 요리든 필요한 기구를 완벽하게 갖추어놓는 것을 속칭 장비발이라고들 한다. 장비‘빨’이라고 읽을 때 더 귀에 쏙 들어오기는 한다.

외과의사의 장비, 즉 수술기구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돌출입수술과 안면윤곽수술 시 입안 절개를 봉합하거나, 피부나 두피가 찢어진 상처를 꿰맬 때 꼭 필요한 니들홀더(봉합용 바늘을 잡는 기구)의 가격은 오천 원에서 오십만 원까지 매우 다양하다. 브랜드, 제조국, 정밀도, 재질, 금도금 여부 등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사실 필자의 20여 년간의 수술 경험에도 불구하고, 니들홀더에 금도금이 있으면 무엇이 더 좋은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스테인리스 스틸도 녹이 안 슬기는 마찬가지다. 대개는 금도금이 여전히 반짝거리는 데에도 더는 못쓰게 되고 만다. 오랜 기간 사용하면 결국 기능적으로 헐거워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금도금이 굳이 더 좋은 게 있다면, 소위 폼 난다는 것이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시쳇말로 ‘간지난다’는 이야기다. 폼이 나니까, 금빛이 번쩍거리는 수술기구가 SNS에도 올라왔을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장비발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무슨 종목에 도전해보겠다고 그 분야의 운동복이나 운동기구를 풀세트로 구매한 다음, 얼마 못가 까맣게 잊고 사는 경험들을 적잖이 해보셨을 것이다.

골프광들은 새로 나온 드라이버를 참지 못하고 새로 사서 몇 번 휘둘러보고는, 잘 안 맞는다며 다시 처박아놓거나 남 주거나, 중고로 팔기 일쑤다. 필자도 산에 좀 다녀볼까 하고 사놓은 등산화가 몇 년째 상품 태그도 안 떼고 신발장에 모셔져 있다. 등산은 도대체 언제 갈 거냐는 물음엔 할 말이 없다. 초등학교 운동회의 학부모 달리기에서 1등 해보겠다고, N사의 런닝화를 사서 소중하게 보관하다가 드디어 운동회 날 신고 갔더니, 학부모 달리기 대신 포대자루에 들어가 반환점을 돌아오는 캥거루 달리기로 변경된 이야기를 내 칼럼에 쓴 적도 있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운동화는 아직도 트랙을 밟아보지 못했다.

이런장비발에는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헬스장 쿠폰을 끊어야 (돈 아까워서) 운동을 하게 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장비를 일단 큰 돈 들여 사놓으면, 그게 아까워서라도 게으름 안 피우고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료 영역에서도 장비발이 더 중요한 분야가 있다. 피부과나 안과 영역에서 더 좋은 최신형 레이저 기계라든지, 영상의학과에서 더 좋은 풀옵션 MRI나 초음파 기계와 같은 것들은 첨단 과학과 최신 의학이 융합된 산물로서, 사실상 최신형, 최고가의 기계가 더 좋은 결과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비발이라는 말은 애석하게도, 실력은 부족한데 장비부터 과도하게 갖춘 경우라든지, 장비 덕에 진짜 실력보다는 좀 나은 결과가 나온 경우에 냉소적인 의미로 더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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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에게 있어서 수술기구란 과연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해보았다.

첫째, 수술기구는 살 수 있지만, 수술 실력은 살 수가 없다.

수술기구가 나빠서 수술을 못한다는 것은 연필, 붓, 물감이 나빠서 스케치나 채색이 엉망이라는 변명과 다를 바가 없다. 볼펜이 싸구려라 수학문제가 안 풀렸다는 것과도 같다. 기본적으로 의료용 수술 기구라는 이름으로 제작되고 공급되는 물건들은, 아예 못쓸 정도의 저질 제품은 없다.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에서 인정하는 정도의 품질이 되어야 기구 회사가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은 기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의 손이 하는 것이다. 명작은 붓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손이 만든다.

둘째, 번쩍거리는 금도금 수술기구로 정신승리해서는 안 된다.

슈퍼카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초보운전이라고 붙이고 다니면 위태위태할 것이다.

제 아무리 비싼 금빛 수술기구라고 해도, 흙손인 집도의에게 쥐어지면 의미가 없다.

금빛이 번쩍거리는 수술기구로 수술을 하면 폼은 날 수 있지만, 수술의 성공이나 결과와는 아주 무관하다.

셋째, 특허 받거나 특수한 수술 기구에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 대학교수가 자체 개발해 특허를 받은 심장수술 기법이 기존 수술에 비해 사망률이 높다는 학계의 주장이 나와 의료계의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특허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공업 소유권이란 뜻이지, 그 기구나 방법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보장이 아니다. 특허 받은 수술기구나 기법이라고 해서 마법처럼 얼굴 성형수술을 자동으로 완성시켜주거나, 의사의 수술실력을 배가(倍加)시켜줄 수 없다.

특정수술기구도 그렇다. 돌출입수술이나 얼굴뼈윤곽수술에 레이저를 사용한다는 건 완전한 넌센스다. 레이저는 여러 의학 분야에서 이용가치가 높지만, 적어도 얼굴뼈가 레이저로 상상하는 것처럼 잘리지 않는다는 것은 팩트다. 한 술 더 떠서 레이저로 뼈를 자르면 무통, 무혈이라는 광고를 본 적도 있다. 돌출입이나윤곽수술에 레이저, 내시경, 볼륨, 3차원, 미니, 퀵, 간편, 이지, 원데이 등 여러 가지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는 것에 반(反) 하여, 필자는 ‘그냥’돌출입수술, 즉 무제(無題) 돌출입수술을 한다. 멋진 수술 명칭이 멋진 수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넷째, 금도금 기구를 쓰는 것보다 금손인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수술을 받을 일이 생긴다면, 금손인 집도의에게 받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단한 노력으로 금손이 되고, 누군가는 타고난 금손이며, 또 누군가는 아무리 노력해도 금손이 못 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금손이 아닌데 금손이라고 믿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고, 환자에게 헛된 약속을 하고, 악결과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어떤 금손도 전지전능하지는 않으며, 분별력과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환자 입장에서는 집도의가 금손인지 흙손인지 알 길이 없다. 출신학교, 경력, 외모, 홈페이지 디자인, 병원의 규모나 외형 같은 것들이 의사의 수술 실력을 대변해줄 리 없다. 성형수술의 경우 안전은 기본이고, 결국은 수술결과가 아름다워야 하는데, 그것이 포토샵 같은 사진보정을 거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보다 객관적인 확인이 가능한 것은, 움직이는 사진(소위 움짤;GIF파일)이나 동영상에서 보이는, 보정 불가능한 수술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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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화백의 ‘우주’라는 작품이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금도금 된 붓이나 특허 받은 캔버스, 특별한 물감을 쓰진 않는다. 특수 안경을 쓰거나 첨단 기계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명작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작가의 손이다.

필자를 찾아오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도 하나의 소우주다. 화백은 그리다 포기한 캔버스는 버렸을 것이고, 그리다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덧칠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림이 잘 안 되는 날은 며칠 쉬다 다시 붓을 잡기도 하고, 몇 년간의 산통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필자는 그럴 수가 없다. 제한된 마취 시간 안에, 해부학적으로 안전한 범위 내에서, 덧칠하지도 포기하지도 쉬지도 못하고 완성을 해내야만 하며, 그 결과에 환자가 만족해야 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비평가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조각하는 작업의 매력이자, 금손이 중요한 이유다.


사진출처: 구글

오늘 돌출입수술과 광대뼈수술을 마치고, 광대뼈수술을 위한 구레나룻 부분의 조그만 절개창을 봉합하는데, 오랜 시간 같이 해온 나의 금도금 니들홀더가 얇은 봉합사를 제대로 물지 못했다. 이가 잘 맞물리지 않게 된 노인처럼 이제 니들홀더는 노쇠해지고 헐거워졌지만, 여전히 금빛은 잔잔하게 빛났다.

필자는 정든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수명을 다한 니들홀더는 어느 무명 참전용사의 비석처럼 내 서랍 속 어딘가에 고이 자리할 것이다.

한 상 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준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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