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43회> : 편지



<편지>



운전하다 라디오를 켰다. 딱히 찾아서 듣는 채널은 없지만, 여기저기 돌리다가 말소리가 아닌 음악이 나오면 그걸 듣는다. 

차 창문을 내리니 가을바람이 스산하다. 마침 <가을 편지>라는 옛 노래가 나온다.

필자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김동건 아나운서의 사회로 이미자, 최희준 같은 가수가 흘러간 트로트를 부르는 TV 가요무대를 애청하고 계신 걸 보면, 도무지 그 노래들에 공감이 가지 않았었다. 난 멀찌감치 자리를 떴다.

K팝에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1971년 최양숙의 음반에 실린 <가을 편지>란 노래는 생경하고 기이할 것이다. 아날로그한 선율과 반주, 창법은 차치하고서라도, ‘편지’라는 것은 이제 생소한 존재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광속도의 손가락으로 바로바로 전송한다. 쓸까 말까 망설이다 며칠을 묵히고, 몇 번을 지웠다 다시 써서 우표 붙여 편지 부치는 정서는 절멸 상태다. 

한편,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가사를 시인(詩人) 고은이 썼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이 노랫말에는 ‘어떠한 여자가 아름답다’는 가사가 총 세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두 번째는,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세 번째는,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순수한 여자, 화장 안 한 여자, 단잠에서 깨어 기지개 펴는 여인(고우영의 <만화삼국지>에서 초선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아기 젖을 물리는 모성의 여인, 청바지가 잘 어울리거나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변진섭이 노래한 <희망사항> 중),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자도 아니고, 외로운, 모르는, 헤매인 여자가 아름답다니...그런 누군가에게 편지를 하겠다니...시인다운 감성이다.

내가 네 살 때 나온 이 노래가 낯설지 않은 것은, 그 후로 이동원, 양희은, 최백호, 김민기, 박효신, 솔라(마마무)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기 때문일 것이다.

라디오를 껐다. 스마트폰으로 여러 가수들이 부른 <가을 편지>를 들어보다가, 엉뚱하게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내 수술에 대해 생각해본다. 시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외로운’, ‘모르는’, ‘헤매이는’을 내 수술에 가져다 붙이는 게 시인에게는 좀 죄송하지만...



 *  *  *



1. 외로운 수술

수술은 외롭다. 외로워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한 환자에게 수술을 집도하는 원장은 한 명으로 족해야 한다. 적어도 한 분야, 예를 들어 얼굴뼈 수술이라는 분야라면, 한 명이 집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의사의 손을 거치게 되면, 세밀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뿐더러, 후일 책임소재도 불명확해질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다가 잠시 쉬고 오겠노라며 제자에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를 이러이러하게 깎아놓으라고 지시했다고 치자. 그가 돌아왔을 때는 대노할 일이 생겨있기 십상이다. 대리석 자체가 두 동강이 나 있을 수도 있겠고, 깎아놓은 모양이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다시 새 대리석으로 시작하면 될 일이다.

필자가 돌출입수술을 하다가, 잠시 쉬고 온다거나 옆 방 수술 먼저 들어가겠다고, 후배 의사에게 수술 좀 하고 있으라고 지시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내 디테일한 계획과는 달리 수술이 엉망이 되고나면, 되돌릴 수가 없다. 대리석처럼 다시 새것에 조각할 수 없다. 

환자 한 명 한 명은 소중하다. 물론, 나는 수술방을 양쪽에 동시에 열지 않고 후배의사도 없다. 수술 중간에 쉬러 나가지도 않는다. 집도의가 혼자니 그럴 여력이 되지 않고, 수술을 보조는 간호인력이 한다. 그러므로 구조상, 수술 하나가 끝나야 다른 수술을 시작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내가 젊었던 시절, 어느 명망 있는 집도의의 수술을 참관한 적이 있다. 내 눈에는 결과가 아직 부족해 보였는데, 그 집도의가 수술을 어시스트하는 보조의사들(의사를 두 셋 씩이나 거느리고 수술을 하다니, 그건 아주 멋져 보인다!)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 정도면 많이 좋아지지 않았어?
-네, 그렇습니다. (합창)
-끝내자. 잘 꿰매줘. (집도의는 장갑을 벗는다)

보조의사들은 늘 힘들다. 수술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 대선배가 그만 끝내고 싶은 눈치인데, 항거할 힘도 이유도 없다. 저런 경우에, “아니오. 아직 부족합니다. 좀 더 예쁘게 수술해주시죠” 하고 들이대는 후배의사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수술을 이대로 끝낼 것인지는 오로지 집도하는 자기 자신에게만 묻는 것이, 외롭지만 더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는 이유다.



2. 모르는 수술


첫째, 돌출입수술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수술이다.

돌출입수술을 내게 받은 환자들은 침묵한다. 굳이 돌출입수술을 받아서 예뻐졌다고 커밍아웃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런 수술이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아름다워진 이유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갑자기 쌍꺼풀이 생겨서 예뻐진 것은 속일 수가 없지만, 갑자기 돌출입이 들어가서 예뻐진 것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다.

한편, 돌출입을 가진 사람들도 대부분 돌출입 수술이 있는지를 아예 모른다. 때로는 치과의사들도 모른다(모른 척 하는 건가?). 그래서, 중등도 이상의 골격성 돌출입인데 몇 년씩이나 발치 교정을 받다가 결국 완벽한 개선에 실패하기도 한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필자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돌출입수술이란 게 있다고 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알게 되는 것, 모르고 사는 것, 부족하지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 모두 그 사람의 운명이려니 한다.



둘째, 모르는 수술은 하면 안 된다.

물론 필자에게도 처음엔 돌출입수술이 생소한 수술이었을 것이다. 그 때 손잡아 가르쳐주신 선배님이 계셨다. 수술을 몇 번이고 참관하고, 수술에 들어가 보조를 서고, 수술 과정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이런 ‘도제’식 배움을 통해 어느새 수술이 완전히 내 손안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내 환자’를 내가 직접 집도하기 시작했다.

대충 아는 수술, 학회에서 한두 번 들어본 수술, 잘 모르는 수술을 호기롭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만용이다. 환자는 마루타가 아니다.



셋째, 다른 얼굴뼈 수술을 모른다면 재앙이다.

내게 모발이식수술은 전혀 모르는 수술일 수 있지만, 광대뼈/사각턱 수술은 모르는 수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돌출입수술은 잘 아는데, 광대뼈, 사각턱수술은 잘 ‘모르는 수술’이라면 완전한 넌센스다. 돌출입수술이 드라마틱하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 수술인 것은 맞지만, 입매만 예뻐지면 튀어나온 광대뼈나 사각턱도 예뻐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더 도드라져 보일 수도 있다. 얼굴뼈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어야 진정한 얼굴뼈 윤곽수술 전문가 아니겠나.



3. 헤매인(헤매이는) 수술

변호사 친구가 자문을 구해왔다. 유방확대 수술을 받은 환자의 소송을 맡고 있는데, 양쪽 가슴 모양이 너무 짝짝이어서 CT검사를 해봤더니만, 가슴 보형물이 한쪽은 대흉근 위, 한쪽은 대흉근 밑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부학을 잘 모르거나, 머리로는 해부학을 잘 알아도 손이 무딘 경우라면, 엉뚱한 층(plane)을 박리하고 들어가게 된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헤매는’ 것이다. 사실 성형수술은 해부학이 반이다. 해부학이 약하면 합병증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 갓 스물 세살이었던 의대 본과 1학년, 무려 7학점짜리 해부학 A+가 이렇게 평생 도움이 될 줄 몰랐었다. 어디쯤에 어떤 혈관과 신경이 지나가는지를 미리 알고 대비하면서 수술해야 한다. 

헤매면 안 된다. 



 *  *  *



지구상에는 돌출입을 가진 사람이 수억 명이다.

주위 모든 사람이 돌출입인 지역에 산다면 그렇게 생긴 게 더 일반적이고 입매 개선의 의지도 전혀 안 생기겠지만, 한국처럼 돌출입과 아름다운 입매가 공존 혹은 대비되는 사회에서는 돌출입의 스트레스가 더 클 수 있다.

돌출입수술의 존재를 ‘모르는’ 어떤 지구촌 인류가, 어느 날 우연히 돌출입수술에 대해서 알게 된 후부터 과연 수술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할지 ‘헤매이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반도 남쪽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서울, 압구정동에서 오늘의 ‘외로운’ 돌출입 수술을 끝냈다. 몇 년 전에 돌출입수술은 안하겠다며 내게 광대뼈, 사각턱수술만 했었던 여자 환자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노래 가사 중 일부다.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울 수 있지만, 꼭 필요한 의사를 모르는 환자는 불행하다. 나의 환자는 이제, 필자를 모르고, 헤매었던 외로운 시간보다 더 오래 아름다울 것이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2019,2022년, 한국 및 대만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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