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42회> : 반말



<반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특히 자유진영의 전 세계가 추모하는 분위기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최고 통치자에 대한 평가는 훗날 그 명암이 엇갈리게 마련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의 우수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필자지만, 존대법을 그토록 엄격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은 조금 애석하다.

존대법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하대법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영어학자 김미경의 저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에 따르면, 7000개의 지구상 언어 중에 한국어처럼 상대방을 낮추는 말이 문법으로 체계화된 언어는 찾기 어렵다고 한다. 

영화 <공조2>에서 다니얼 헤니의 “나는 빠른 82. 내가 형 맞지?”같은 대화는 한국이 아니면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나이를 묻지 않고 그냥 ‘친구 먹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한국의 어느 길거리에서 싸우는데 꼭 등장하는 것이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내가 너 만한 아들이 있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논쟁이 아니고, 말투와 태도를 가지고 싸우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나이 가지고 싸우는 건 정말 사회적인 에너지 낭비다.

장유유서의 유교적 가르침은 긍정적인 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꼰대력의 상징이 되었다. 최근 한국에서 동네 후배가 평소 반말을 하며 무시한다고 앙심을 품고 살해한 사건은 존대법, 하대법 속에 숨어 있는 안타깝고 극단적인 갈등의 요소를 드러낸다.



 *  *  *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고 사립 대학병원의 의대 교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얼마 안 되어 개원가에서 연락이 왔다. 선배가 본인 병원에 페이닥터 '봉급 의사'로 오라는 것이다. 모교가 아닌 곳에서의 교수 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바로 짐을 쌌다. 

새로 근무를 시작한 병원의 총괄 실장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이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쯤 되는 환자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하대를 했다. “응, 선영이 왔네~쌍꺼풀 너무 예쁘게 나왔다. 3개월 있다가 다시 한번 들러~.” 아직도 의문이다. 그녀가 큰 언니처럼 구는 걸 과연 환자들도 좋아했을까?

옆에서 보는 나는 너무 못마땅했다. 

잠깐의 교수 생활로 당시에는 내가 너무 경직되고 고지식했었을 수도 있다. 아침 회의 때 신참 원장인 내가 공개적으로 반말에 대해 지적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동네 여관이 아니라 특급 호텔에 방문한 고객에게 응대하듯 정중하게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지금도 고등학생 환자에게도 항상 존대를 한다. 의사를 찾아온 환자이므로 존중하는 것이다.

사실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항상 지속적인 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질병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거의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같은 미용적 목적이어도, 주기적으로 관리를 받는 피부과와 다르게 성형수술은 한 방(one-shot)이다. 

특히 필자가 하는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수술은 정말 평생 한 번으로 족해야만 한다. 수술이 성공적이라면 다시 손댈 필요가 없는 수술이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성형외과 환자와 의사가 병원에서 계속 만나게 된다면, 성형중독 아니면 불만족 혹은 합병증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십 년 만에 병원에 나타난 환자가 있으면 왜 오셨을까 의문이다. 그 중 최선은 내가 수술해준 얼굴뼈 부위가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안검성형술 받고 싶어서 온 경우다. 노화는 막을 수 없으니까.

즉 성형외과에서는 수술 환자가 (같은 부위 때문에) 더 이상 내게 오지 않는 것이 성공이다.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만들 수 있는 최대치로 예뻐지면 사실 더 할게 없으니 올 일도 없다. 예를 들어 돌출입수술이 잘되고 나면 다시 돌출될 일도 없고, 수술 전 얼굴도, 수술했다는 사실도 기억 속에 묻혀 사라진다. 

그렇다면 환자의 일생에서 그 의사에 대한 기억은 수술 당시의 잠깐이 전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반말 찍찍 하는 불손하고 거만한 의사로 평생 기억되기 싫은 것도 환자를 늘 존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자신이 이룬 성취나 권위주의에 매몰되어 환자들을 하대하는 전문가도 있다. 내가 환자로서 혹은 전공의일 때 직접 그런 진료 현장을 보기도 했고, 가끔 누가 환자를 막 대한다더라 하고 전해 듣기도 한다. 그렇게 환자에게 반말을 해대면 어떤 경로로든 욕먹을 만도 한데, 계속 그 버릇을 고치지 않는 것을 보면, 인품이 딱 그 만큼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나름의 이득이 있어서일 것이다.

당신이 점을 보러 갔다고 치자. 신 내렸다는 젊은 보살이 쌀을 던지며 ‘없어, 없어. 올해는 결혼 운이 안들어왔어!’ 라고 일갈하는 것이 ‘결혼 운이 아직 없으십니다.’라고 점잖게 말하는 것에 비해 더 임팩트 있게 확 와 닿을 수도 있다. 즉,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 혹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자들의 반말과 하대에, 오히려 범접할 수 없는 권위자처럼 느끼거나 맹신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는 위험하다.


박한슬 약사의 연재 칼럼 '조금 까칠한 약국'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이제는 영국의 왕이 된 찰스 3세는 왕세자시절, 영국 전역의 항암치료 전문의들이 모인 공식적인 의학 학회장에서, 커피를 항문을 통해 주입하여 장을 깨끗이 청소하면 항암치료가 된다는 사이비 민간요법인 ‘커피 관장’을 홍보했다고 한다. 

그간 영국 왕실의 권위를 존중해 그의 황당한 주장에도 침묵하던 영국의사들이 나섰다. 공식적으로 왕세자의 언행을 반박하는 성명을 냈다고 한다. ‘존경하는 왕세자님, 당신이 잘못 알고 계십니다.’라는 성명에서 ‘왕세자님의 권위를 활용해 난치병 환자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사용하길 권유하실 때는 본인의 권위가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 혈통에서 오는 것이란 걸 인지하고 조심히 사용해 주십시오.’라고 썼다고 칼럼은 전한다. 

군주제에서 왕실의 권위는 혈통에서 온다. 반면에 의사의 권위는 실력에서 온다. 

특히 집도의(surgeon)의 권위는 많은 부분 수술솜씨에서 온다. 그러나,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환자들을 하대할 명분이 생기거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무르익으면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명의나 권위자는 자화자찬이나 오만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라는 무기로 주위 사람들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실제로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서일 수 있다. 내세울 것이 나이 밖에 없다는 방증인 셈이다. 진정한 실력가는 굳이 남을 하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사회에서 알게 된 모임에 나갔다. 오십대인 내가 막내였다. 연배가 더 높으신 분이 다짜고짜 그냥 이름 불러도 되냐고 묻는다. 정중히 거절했다.  

장유유서가 꼰대스러워진 것은, 많은 변수 중 오로지 나이만 고려해서다. 존대라는 것은 존경에서 나와야지 물리적 나이에서 나올 수 없다. 존경할 수 있어야 존댓말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고 거꾸로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을 하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대했었는데 존대하게 되기도 한다. 30여 년 전에 “철수 오빠”, “영희야” 하던 학교 선후배, 동기였지만,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후배나 친구에게도 차마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김 원장, 이 교수, 박변(호사), 윤 대표 하고 부르게 되었다. 물리적 나이 차이는 평생 그대로지만, 그 친구나 후배가 긴 세월 동안 이루어낸 삶의 성취, 그 분야에서의 권위, 일가를 이루어낸 시간에 대해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온 환자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의 무게 앞에서 동등한 인격체다. 필자가 얼굴뼈 윤곽수술이나 돌출입수술의 경험과 실력에 확신이 있고, 그들이 나의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약자라고 해서, 그 환자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환자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태도는, 의사가 근자감에 매몰되어 메스 끝에 오만이 들어가지 않도록 초심을 지켜주는 백신이기도 하며, 결과적으로 변함없이 안전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초석이기도 하다. 물론, 실력이 바탕이 되었을 때 그렇다.



 *  *  *



올해 연초(年初)에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쌔엠, 어떻게 지내세요? 병원 앞에 지나가다가 연락드렸어요. 시간 되시면, 저녁 사주실래요?


내가 돌출입과 광대뼈수술을 해준 아이돌 그룹 출신, 이십대 초반의 남자 환자다. 참고로 그 아이돌 그룹은 조기 해체되었고, 수술은 그 이후였다


-반가워. 아쉽지만 오늘은 안되고 날짜를 다시 잡자. 언제 다시 데뷔해? 올해는 대박 나야지!


수술이 잘 마무리되고 나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도 되겠냐며 편하게 동생처럼 대해달라고 했던 귀엽고 해맑은 친구다. 이런 경우에는 나도 반말을 한다. 편하게 대해달라는데 끝까지 꼬박꼬박 존댓말을 고집하는 것은 ‘네가 싫다’는 뜻이다. 

그 친구가 전화를 끊고 보내온 메시지다. 철자와 띄어쓰기도 받은 그대로 옮긴다. 꼭 별중의 별이 되길 빈다.

-원장님, 외적인거 고민때문에 쌤을 첨만났지만 쌤이랑 인연이된게 저는 너무행복합니당^^ 올해도 행복만 하세요 꼭♡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2019,2022년, 한국 및 대만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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