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40회> : 고기능자폐의 능력자

<고기능자폐의 능력자>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단한 인기였다고 한다. 제작진이나 방송사의 홍보 때문이 아니고 실제로 큰 인기가 있었으니 연일 뉴스를 뽑아냈겠지만, 너무 과하게 매스컴에서 접하다보니 시청하지도 않았는데 피로감이 왔다. 그래서 아직 안보고 있다.


영화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레이몬드도 그렇지만, <우영우>에서도 주인공은 고기능자폐 스펙트럼의 인물이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상호작용이 어려우며, 특정 관심분야에 파고들고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증세를 특징으로 하는 자폐 스펙트럼(autism spectrum disorder) 중 약간 특이한 형태로서, 자폐 성향이 약하고 의사소통에 거의 문제가 없으며, 지능이 정상에 가깝거나 드물게 정상보다 높은 경우를 고기능자폐 혹은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이라고 한다.



영화 속 더스틴호프만은 전화번호부를 하루 만에 모두 외우는 등 초능력에 가까운 암기력을 보여준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변호사 우영우는 아마 법전이나 법원 판례를 모두 기억했을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능력자’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분야에서 사력을 다해도 타인에게 인정받기란 아주 어렵다는 이야기다.



자전적 소설인 신간 <마틴 에덴>(녹색광선)의 저자인 잭 런던에 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잡문집 속 <잭 런던의 틀니>에서 이렇게 썼다.



* * *



그가 러일전쟁 중에 종군기자로 홀로 한반도에 건너갔을 때의 일이다. (중략) “송구스럽습니다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선생님의 존안을 뵙고 싶어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광장으로 나와 모두에게 얼굴을 보여줄 수 있으신지요”


런던은 매우 놀랍고도기뻤다. (중략) 광장에는 마을 사람들이 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런던은 대단한 인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준비된 연단에 올라서자,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잠시 틀니를 빼서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중략) 덕분에 그는 삼십 분 동안이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연단 위에서 틀니를 꼈다 뺐다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 런던은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이 제 아무리 사력을 다해 뭔가를 추구해도 그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는 좀처럼 힘들다.' 그는 마음속 깊이 그런 생각을 새기며 찬바람이 몰아치는 광장에 서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틀니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런던이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감동까지 했다. 물론 화도 안 내고 꼬박 반시간이나 틀니를 꼈다 뺐다 한 친절도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턱 근육도 꽤 피곤했을 터다.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감탄한 지점은 그가 교훈을 터득하는 방식이었다. 설령 천 명에 달하는 사람이 그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다 해도 그 상황에서 그런 특수한 교훈을 이끌어내는 사람은 일단 런던 말고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뭐 하긴 그 말이 옳지 싶다. 사람이 뭔가를 목표로 피나는 노력을 쏟는다 해도 반드시 타인에게 인정받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마음에 새겨둬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 일화를 읽고 잭 런던이라는 작가가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하루키 잡문집에서 발췌]



* * *



얼마 전, 집에 온 모 전자 A/S센터 소속 기사는, 의사의 직감으로 아스퍼거 증후군 같았다. 목소리 톤이 기계어처럼 놀랍도록 일정하고, 중요한 단어는 두세 번씩 반복했으며, 대화할 때 단 한 번도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공중에 떠있는 프롬프터(prompter)를 보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집에 있는 프린터는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 제품이고 당연히 무선 프린트기능이 있는 것인데, 과거에 이미 방문수리를 왔던 기사가 무선 프린트 기능을 바로잡지 못하고 그냥 간 전력이 있다. 그 때 그 기사의 말로는, 우리 집 공유기가 이상하단다. 다른 무선 와이파이 신호는 다 잡히는데, 우리 집 공유기가 프린터로 잡히지 않는단다. 따라서 공유기의 이상이고, 공유기를 바꾸면 될 거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와이파이 신호가 잘 나오는 멀쩡한 공유기를 무선 인쇄를 위해 새로 바꾸라고?


그냥 살았다.


그러다 이번에는 컬러 인쇄가 잘 안 돼 다시 A/S 기사를 요청했다. 지난번 출동했던 기사는 무선 프린트 기능을 못 고치고 가버렸다고 전화로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이번에는 ‘A급 기사’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새롭게 안 흥미로운 사실인데, 기사의 해결 ‘능력’에 따라서 급수가 있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우리 집을 방문한,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추정되는 기사님은 A급이 아니라 단연 S(super)급이었다.


일단, 고장 증상에 관한 A/S팀의 메모를 미리 확인하고, 새 카트리지를 하나 스윽 준비해 왔다. 예상 문제를 해결할 비단 주머니를 가지고 오신 것이다. 이 부분에서 벌써 S급.


테스트 페이지를 프린트해보더니 새 카트리지로 갈면 바로 될 것 같다며, 자기가 하나 가져왔는데, 뜯어서 쓸까를 물어봐 준다. 정품, 새 것이었고 시중 가격과 같아, 따로 구매해서 교환하는 수고를 덜었다.


그 다음, 무선 프린트 기능 차례다. PC와 프린터를 점검하시더니 이쪽에는 문제가 없으니 공유기를 보자고 한다.


-음...이 정도 크기의 공유기면...그러니까...5G 및 2.4G 두 가지 신호를 낼 것 같은데요. 프린터에서는 일반적으로 2.4G 무선 신호만 잡을 수 있거든요.


셜록 홈즈가 따로 없었다. 정확한 관찰력과 전문지식에다가, 억양의 높낮이(intonation)가 없는 AI와 같은 말투는 묘하게 신뢰감을 배가시켰다. 기사님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공유기 앱을 열어, 우리 집 공유기의 비밀번호를 묻고는 설정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아 역시 그렇군요. 그러니까...2.4G 무선 신호의 이름을 설정하지 않아서, 이 공유기의 신호라는 걸 몰라서 못 잡았던 겁니다. 이름을 그럼...음...뭐로 할까요. ‘거실 2’ 로 할까요?”


고기능을 넘어, 고‘지능’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심증이 굳어져갔다, 이 기사님의 흔들림 없는 집중력과 차분한 문제 해결 능력은 진정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해서, 무선 프린트가 가능하게 해준 기사는 나에겐 수퍼(super) 능력자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마트폰의 사진을 ‘전선도 연결 안한 채’ 프린트한 기쁨이라니! 필자가 시조새 같겠지만, 사실이다.


스마트폰의 사진이 바로 드극드극~지익지익~ 프린트 된다. 레이저가 아닌 잉크젯 프린터에서만 나오는 아날로그한 소리다. 이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몇 가지 떠오르던 생각을 정리해본다.


첫째, 전문가에도 급수가 있다는 사실.


모든 기사가 다 A급이었으면 좋겠지만, 모두의 능력치가 다 같을 수는 없다. 기사뿐만 아니라 의사든 변호사든 마찬가지다.


사실, 심장 전문 내과의사가 골절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가 이혼에 대해서 잘 모르듯이, 전에 왔던 프린터 전문 기사가 공유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걸 한편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통합적 문제 해결은 실패했다. 프린터가 공유기 신호를 못 잡으면 “이건 공유기 문제다!”라고 외치고 사라지는 것은 정말 D급이다. 잘 모를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이 A급 기사 같은 동료나 선후배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했다.


돌출입과 무턱, 혹은 광대뼈나 사각턱과 같은 얼굴뼈수술이 직업인 사람들 중에도 사실은 여러 급수가 존재할 수 있다. 면허증과 자격증 가진 전문가 앞에서 환자들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틀린 이야기에도 현혹되는 이유다.


둘째, 부족한 능력자가 주는 해악.


D급 기사가, 공유기를 잘 모르니까 멀쩡한 공유기를 바꾸라고 헛소리를 하듯이, 예를 들어 돌출입에 대해 잘 모르면, 돌출입수술을 하면 합죽이가 되니까 양악수술을 해야 된다든지, 돌출입수술은 큰 수술인데 그 위험한 걸 왜 하냐? 라든지, 교정으로도 다 되는데 왜 수술하나? 와 같이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D급 기사가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전문지식이 있고, 필자는 그렇지 않으니까...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완전 틀린 이야기였다. 이게 프린터니까 아무 문제없이 넘어 간 것이지, 만약 내 몸이었으면 어땠을까 끔찍한 일이다. 공유기 바꾸라고 하듯, 내게 신장 이식 하라고 했을 수도 있다.


셋째, 중요한 능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무선 프린터는 공유기와 연결되어 있다. 얼굴뼈들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프린터’ 기사였지만, ‘공유기’까지 잘 다루는 능력자라는 것은, 이를테면 돌출입수술 한가지가 아니라 광대뼈, 사각턱이나, 눈, 코의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만약 돌출입만 수술하고 다른 얼굴뼈는 나 몰라라 한다면, “프린터는 문제없으니, 공유기는 알아서 하시고, 나는 이만 안녕!”이라는 D급 기사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돌출입수술의 결과를 더 아름답게 빛나게 하려면 다른 얼굴뼈의 단점들도 필요한 경우 동시 수술로 해결해 줄 능력, 그리고 정성이 필요하다.


넷째, 약자에게 줄 수 있는 감동.


하루키의 깨달음처럼, 피나는 노력을 해도 반드시 인정받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짧은 시간 A급 기사가 보여준 수행능력은 인정을 넘어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물론 그 놀라움은 필자가 전기/전자에 대해 무지한 약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의학적 전문지식이 부족한 환자들 역시 필자가 아는 당연한 것들을 잘 모르니까 두렵고 막막할 수 있을 것이다. 착하고 올곧은 A급 기사의 정확하고 명료한 설명과 그에 수반되는 수퍼 해결 능력은 이미 배려이고 혜택이었다. 전문지식이 없는 약자를 더 사려 깊게 존중해주고, 찬찬히 설명해주고, 명쾌하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라는 무언의 교훈을 남기고 그는 홀연히 집을 나설 채비를 했다.


-이제...이제, 제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데요...그러니까...그만...가...보겠습니다.


수퍼 컴퓨터 종료 직전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계어 같았다. 황급히 잠시만요~하고는, 손에 현금을 좀 쥐어드렸다. 감사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니...이러실...필요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꾸벅하고 사라진 A급 아니 S급 기사.


그를 만난 건 내겐 행운이었다.


나의 환자들에게 나는 A급일까? 행운일까? 얼마만큼의 행운일까?


적어도 D급은 아니라고 확신하지만, A급은 성에 차지 않는다. 환자들이 필자를 만난 게 인생에서 S급의 행운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완벽주의가 내겐 괴롭기보다 즐겁다.


곧 추석이다. 모두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빈다.


월만즉휴(月滿卽虧), 달이 차면 기운다고 한다. 또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것이다. 세월이 가면 언젠가 수술 집도하는 나의 손이 떨리게 될 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집도의로서의 만월(滿月)이 기울기 전에, 고민이 깊은 환자들에게 치유의 삶을 선물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2018,2019,2022년, 한국 및 대만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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