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39회> : 상처

 <상처>




마음이든 몸이든, 상처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아무 마음의 상처도, 아픔도 없다면, 아마 조증(mania)이거나 싸이코패스, 아니면 득도한 사람일 것이다.



필자가 가끔 그림을 그리러 가는 화실에, 존경스러운 선배님이 계시다. 늘 열심히 그림 작업을 하시고, 일흔이 넘으신 흰 백발의 연세에도 활기차고 꼿꼿하시며, 무엇보다 늘 미소 짓는 얼굴이다. 그 분의 그림 속에 빨간 옷을 입은 어느 여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저 여성분은 누구를 그리신 거냐고 묻자,



-제 처에요. 그런데 나보다 먼저 저 세상엘 갔어요.



상처(喪妻)라는 상처(傷處)만큼 슬프고 애절한 일도 없을 것이다. 부부는 엄밀하게 촌수가 0인 남남인데, 사랑해서 둥지를 틀고 자식도 낳은 사이다. 부부가 한 날 한 시에 죽을 수는 없으니, 어찌 보면 참 예정된 비극이다.



-그림 속에 아내를 보면 기분이 좀 그래서...자꾸 덧칠로 지우게 돼요.



하면서 빙그레 웃으신다. 그 다음 말이 폐부를 찌른다.



-그림에선 지워도...잘 안 지워져요.



지우기 힘든 진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사실, 결혼은 사랑이자 전쟁이기도 하다.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가 철천지 원수(怨讐)가 되는 일이 적지 않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었든 짧았든, 그 배우자가 그립다는 것은 그 시간이 축복이고 기적이었음을 말해준다.



* * *



오늘 병원에 온 남자 환자가 마스크를 벗는다. 역시나 돌출입이었다. 윗니가 아랫니를 많이 덮는 과개교합이 있고 윗입술 아래로 앞니가 꽤 많이 보여서, 활짝 웃으면 잇몸이 과도하게 보이는 거미스마일(gummy smile) 증상이 예견되는 해부학적 구조다. 아니다 다를까, 개그맨 오**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곤 한단다. 웃을 때 잇몸을 훤히 보여주는 것은, 외모로 셀프 디스를 하는 개그의 단골 소재다.



돌출입수술과 거미스마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는데 환자가 어딘가 아파 보인다. 혹시 드시는 약이 있는지, 앓고 있는 질환은 없는지 물었다. 사실, 돌출입을 가진 환자들은 튀어나온 돌출입 자체, 그리고 인중부위 돌출로 인해 상대적으로 함몰된 팔자주름 부위의 그림자 때문에 더 퉁명스럽고 우울하거나 화나 보인다. 이 환자는 눈밑 지방도 불거져 있어서 더 아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환자가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얼마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한 달 전, 아내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잠시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이야기에 속절없이 눈물이 고였다.



-세상에...너무...안타깝네요.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네에...



환자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은요?


-아이 둘이 있습니다.


아이 둘을 둔 필자도 대책 없이 감정이입이 된 모양이다. 사실, 지인의 부친상이나 모친상에 가도 눈물이 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요즘은 상주도 잘 울지 않는다. 절친이 울면 같이 토닥이며 울 순 있지만, 담담해보이려 애쓰는 환자 앞에서 의사만 눈물이 나다니...



아직 상처가 아물기도 전이라 그 환자에게는 아직 아내와의 지난날이 추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생생하고 선명한 기억들이고, 살아 돌아올 것 같은 꿈같은 현실이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깊은 슬픔일 것이다. 뵌 적은 없지만, 어린 두 아이와 남편을 두고 급작스럽게 하늘나라에 간 아내분의 명복을 빈다. 평화로운 곳에서 편히 쉬시길...



슬픔, 상실, 분노, 절망, 고통, 좌절, 무력감 등 각자의 이름을 가진 우울에 대하여, 파킨슨병을 앓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혜남은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라는 그녀의 아홉 번째 책을 통해 이렇게 썼다. 굳어 오는 근육을 감내하며 힘겹게 집필했을 터다.



“우울은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 중 하나다. (중략)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그러니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희망의 끈만 놓지 않으면 그 날은 반드시 온다. 다시 생생한 감정을 느끼고 나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두 발로 서서 발끝으로 다가오는 땅의 기운을 느끼고, 잠시 멈추었던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러니, 삶의 어느 순간에 우울과 만나게 되면 당황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인사해야 한다. 그래야 우울과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한 남자의 인생, 아이들의 미래가 아직 열려있다.


혹여 ‘아내를 잃은 남편이 한 달 만에 성형수술을 하러 가다니...’라고 생각하신다면 공감능력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건, 상(喪)을 당하면 식음을 전폐하고 곡(哭)을 하는 게 맞다는 엄숙주의에 다름 아니다. 긴 터널을 희망으로 견뎌내시길 빈다. 맛있는 것도 찾아 드시고, 아이 둘과 놀이동산도 가시고, 행복한 시간 더 많이 만드시고, 늘 컴플렉스였던 돌출입수술도 이번에 휴직한 기회에 이루어 내시길 바란다. 너무 성급한 이야기지만, 가족 모두에게 서로 힘이 될 따뜻한 인연이 언제 어디선가 나타날 운명인지도 모른다.


환자의 돌출입은 필자가 사라지게 할 것이다. 돌출입으로 늘 겪었던 마음의 상처도 내가 보듬어드릴 것이다.


급작스런 상처(喪妻)를 당한 아픈 상처(傷處)는 신께서 거두어 주시고, 아무 죄 없는 두 아이들의 앞날도 보듬어 주시길 기도한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2022년, 한국 및 대만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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